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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Dec 02. 2019

울 것 같은 마음을 그러쥔 밤에

<고유한 에세이> 3기, 순간의 기록들

1

첫 시간은 늘 어수선하고 쏜살같이 지나간다. <고유한 에세이>는 진행하는 글쓰기 수업 중에서 가장 성실하고 농밀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수업이기도 하다.


창비학당 <고유한 에세이> 3기 학인들과 첫 만남. 다시 찾아준 학인이 있었고, 세 번째로 나의 글쓰기 수업을 들으러 온 학인들도 있었다. 이 수업을 듣기 위해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온 학인도 있었고, 몸이 조금 불편하지만 용기 내어 자신의 글을 쓰러 온 학인도 있었다. 그런 마음들이 너무 뭉클하고 고마워서, 더 잘 이끌어 주고 싶었는데.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그런 마음이 되려 소란스러워 그러지 못했다. 그게 아쉬웠다.

혼자서만 오래 글 쓰던 학인이 처음으로 용기 내어 읽은 문장이 맴돈다. "이름이 있는 사람들을 이름 없게 만드는 모든 것으로부터 내가 붙잡고 싶은 이름." ㅡ 나에게 그런 이름은, 그런 존재는 무엇일까.


/ 191122 <고유한 에세이> 기록



2

이제는 아프다고 얘기할 때가 된 것 같은데... 나는 아프다는 말을 뱉는 게 무슨 큰 고해성사를 치르는 것 마냥 죄스러웠다. 아픈 몸이 부끄러웠던 게 아니다. 모두가 그렇게 힘들고 아파도 견디며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내 아픔이 크다고 소리 지르는 게 될까 봐 스스로를 깊은 침묵 속에 빠뜨렸다. 가장 여린 언어들의 무릎을 툭 꺾어버렸다.

- <고유한 에세이> 3기 수영님의 글 중에서


"수영님 이야기를 듣는데 너무 아팠어요. 지금도 말하는데 손이 막 떨리고 아리고 숨이 잘 안 쉬어질 정도로. 너무 아팠어요. 동시에 스스로가 너무 싫었어요. 저는 죽음하고 슬픔을 너무 많이 봐 버려서 눈물이 나와야 할 때 울 수 없는 병에 걸렸고. 그래서 그때 같이 울어줄 수 없는 내가 너무 화가 나서, 내가 너무 싫었어요. 수영님이 해주신 이야기, 정말 티 없이 아름다운 이야기였어요. 그래서 들으면서 다행이었어요. 내가 이 사람의 말을 잘 듣고 있구나 하고." 수영님의 글을 듣고 인영님은 울먹이며 말했다.


오늘 우리는 아주 소중한 순간을 함께했다. 살면서 몇 번이나 이런 순간을 마주하게 될까. 티 없이 아름답고 아프고 슬픈 사람의 글에 감응했다. 모두가 투명한 아픔에 귀 기울이던 순간, 같이 울던 순간, 잠시 천사가 머물다간 것 같았다. 이렇게 속삭인 것도 같다. 우리는 다시 살아갈 거야, 아름답게.


/ 울 것 같은 마음을 그러쥔 밤에,

191129 <고유한 에세이>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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