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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Dec 31. 2019

피자나라에서 길을 잃은 치킨공주 같은 삶은 아닐지

창비 <이야기감성협회> 시크릿 스토리텔러와의 글쓰기

조금 많이 늦은 슬그머니 소식. 12월 초에는 창비학당X카페창비 <이야기감성협회> 3기 '시크릿 스토리텔러'로 다녀왔다. <이야기감성협회>는 매주 다른 주제로 시시콜콜하거나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

나는 깜짝 시크릿 스토리텔러로 방문해, 기태 빙고 유자 목캔디 엘리스와 같이 글 쓰고 이야기를 나눴다. 자신의 완벽주의 성향에 대해, 내 몸과 마음을 아끼는 방법에 대해, 너무 열심히 사는 삶에 대해, 조금 벙벙하게 놓여있는 상태에 대해.

특히 기태님의 글이 마음에 남았다. 그는 어느 날 자취방에서 '피자나라 치킨공주' 전단지를 보다가 이상함을 느꼈다고 했다. 왜 피자나라의 치킨공주일까. 15900원에 피자와 치킨을 주는 가게이름은, 피자나라와 치킨나라도 아니고 피자왕자와 치킨공주도 아니고 왜 피자나라의 치킨공주일까. 이상한 때에 이상한 곳에서 살고 있다는 억울한 감각이 느껴졌다고.

그러다 그는 지하철 ATM기 앞에서 고부관계로 보이는 이주민 여성과 할머니를 마주쳤다. 그들은 ATM기에서 돈을 인출하는 방법을 몰라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고. 기태님은 인출하는 것만 도와주고 무뚝뚝하게 그들을 지나쳤는데 문득 그들이 '피자나라 치킨공주'같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내가 숨 쉬듯이 하는 일들이 모두 도전인 어떤 삶이 있다는 것. 세상은 모두에게 친절한 방향으로 작동하진 않으므로 키오스크에서 햄버거를 사거나 스마트폰으로 공과금을 내거나 배달앱으로 할인을 받아 치킨이나 피자 따위를 시키는 것. 그 모든 게 낯선 외국 같은 삶. 그건 어떤 삶일지. 피자나라에서 길을 잃은 치킨공주같은 삶일지."

그들에게 조금만 더 친절할 걸 그랬다며 기태님은 글을 마쳤다. 사소한 문장에서 비롯된 사유의 글이었다. 글에는 타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담겨 있어서 뚝뚝한 문체에서도 따스함이 느껴졌다. 독자들이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글이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두 시간 이야기를 나눈 것뿐인데도 부쩍 가까워진 사람들. 하도 웃어서 양볼이 얼얼하던, 너무 따뜻해서 볼이 발그레지던 12월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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