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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Jan 29. 2020

숨기고 싶은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쓸 수 있을까요?

신세계아카데미 강남점 [한 달 만에 에세이 작가 되기] 후기

1


첫 만남. 비 내리는 궂은 날에도 모두 출석해주셔서 감사했다. 지난 강연 때 만났던 독자분도 계셨다.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았지. 고마워요.


오늘 만난 사람들 ㅡ 오래 일기를 써온 사람. 기억을 기록하고 싶은 사람. 순간의 감정을 붙잡고 싶은 사람. 나의 의미를 찾고 싶은 사람. 글쓰기로 나를 지키고 싶은 사람. 간절히 쓰고픈 마음들은 늘 내 마음을 붙잡는다.


30년 넘게 일기를 써온 사람은 우연히 30년 전 일기장을 발견하고 글수업에 왔다고 했다. 30년 전의 나를 만나는 기분은 무엇인지, 30년 동안 쓰는 마음은 무엇인지 헤아려보고 싶었다. 주어진 시간이 한 시간뿐이라 바쁘고 아쉽지만 4주 동안 힘차게 알려드려야지!  


200107 기록.


2


두 번째 시간. 쉰이 넘은 엄마는 소녀가 되고, 머리 희끗한 아버지는 아이의 어린 얼굴을 기억하고, 어른이 된 손녀는 할머니를 그리워한다. 저마다의 기억들이 한 편의 시가 되었던 우리의 시간.


나는 기억한다. 정오가 되면 창 밖으로 날아올라 윙윙거리던 벌떼들을. 해질 무렵 벌떼들은 사라진다. 그들은 추가 연장근무를 하지 않았다.

나는 기억한다. 입 주변이 벌게진 어린 아들의 모습을.

나는 기억한다. 오늘 아침에 핸드폰 알람까지 맞춰놓고 문자까지 보냈는데 학원에 안 가버린 첫째 아이에게 화를 냈던 것을. 이제 알람을 세 번 울리게 해야겠다.

나는 기억한다. 아픈 아롱이를 보며 늙는다는 것을 실감했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유리창을 두드리던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낮잠에 빠져들던 오후를.

나는 기억한다. 달동네에 살던 나는 학교가 늦어서 가파른 계단을 뛰어내려 갔었다. 계단이 높아서 넘어질까 봐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온몸이 긴장되었던 그 느낌을.

나는 기억한다. 엄마에게 파인애플을 잘라주던 날을.

나는 기억한다. 할머니가 해주신 감자채볶음을. 비 내리는 마당에서 밥과 함께 슥슥 비벼먹었던 아름다운 순간을.


200115 기록


3


세 번째 시간. 글쓰기에 대한 고민과 궁금함을 나눈 시간. 여덟 가지 질문들을 나누었을 뿐인데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첫 문장 쓰기가 어려워요. 글 마무리가 고민입니다. 묘사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글 쓸 때 생각이 너무 많아서 여기저기로 흘러가요. 다양한 표현을 쓰고 싶은데 어떡해야 할까요. 출판은 어떻게 하는 건가요. ㅡ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질문은, 숨기고 싶은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쓸 수 있을까요? 마음이 쓰여 최선을 다해 이야기해 주었다.


물론 나의 대답들이 정답은 아니다. 그저 쓸수록 어렴풋 알게 되는 것들. 내가 먼저 겪어본 어떤 것들. 그럼에도 수업이 끝나고도 모두들 쉬이 일어나지 못했다. 그래도 쓰고 싶은 마음 하나, 쓸 수 있는 용기 하나씩은 심어준 것 같아서 다행이다. 사실 그게 글쓰기의 절반이랍니다. 나머지는 절반은 간절함이고요. 이 기분 이 마음으로 모두들 오늘은 무엇이라도 쓰셨으면 좋겠다!


200121 기록

4


마지막 시간. 글감을 찾고 초고를 쓰고 퇴고를 거친 완성글을 읽고 나누었다.


항상 조용히 같은 자리에 앉아 수업을 듣던 송미님은 초고와 완성글을 나란히 프린트 해오셨는데 읽어보고선 아주 뿌듯했다. 초보자에게 유용한 첫 문장 쓰기, 더하고 빼고 다듬는 퇴고법, 세련된 문장 구성하기. 여러 시도를 거쳐서 일기 같았던 초고가 자신만의 글로 담백하게 완성되었다.


나는 한 번 읽어보시겠냐고 물었고, 송미님은 모두 앞에서 글을 낭독했다. 책 속의 문장을 가져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한때 앓았던 아픔에 관한 이야기였다. 활짝 드러내진 않았지만 오랜 망설임 끝에 한 걸음을 뗀 마음의 이야기. 송미님은 낭독을 마치고 "사람들에게 한 번쯤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말하며 홀가분하게 웃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고마워요." 우리는 박수를 보냈다.


'무조건 솔직하게 쓰세요'라는 말은 때론 강요와 부담이 될 수 있다. 모두에게 하고 싶은 진짜 나의 이야기는, 그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어려운 이야기인 경우가 많다.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 솔직한 나의 이야기를 하되, 나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어떤 문장에게서, 어떤 장면에게서, 어떤 사람에게서, 어떤 상상에게서.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완성시킬 수 있다. 나의 이야기를 쓰는 데에 사람들이 얽매이지 말고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그렇게 쓴 글이 곧 나의 문체가 되고 나다운 글이 된다. 우리 곁의 시와 소설과 동화와 노래들이 모두 그렇게 만들어졌다.


수업을 마치며 책 <문학하는 마음>에서 최은영 소설가의 말을 읽어주었다.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자기 세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그런 거 있잖아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자기에 대해 정직해야 하고요. 정직하지 않으면 자꾸 자신을 꾸며서 생각하게 되고, 그렇게 꾸며낸 자신의 모습을 믿게 되면 겉멋이 돼버리는 것 같아요. 자기 마음 안에 있는 좋지 않은 것, 얼마쯤 부끄럽고 싫은 것도 어느 정도 인정을 하고 보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래서 꼭 특별한 경험을 많이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그게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정말 중요한 건 정직하게 스스로를 아는 것이죠. 그래야 자기 관점으로 세계를 볼 수 있으니까요."


선생님들, 한 달 동안 감사했습니다.


200128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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