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수리 Feb 19. 2020

걷지 못하고 멈춰서는 날들

그렇게라도 쓰고 싶어서요

누군가 내가 하는 일이 무어냐고 물으면 글을 써요,라고 말한다. 그런 말을 하면서도 그건 구체적으로 먹고사는 일처럼 느껴지지 않아 얼굴이 붉어지곤 한다. 대체로 완성이 먼 글을 쓴다. 써야 할 글은 넘쳐서 막막한데 하루에 글다운 글 한 편을 완성하지 못해 초조해진다. 내가 쓴 글은 언제나 마음에 들지 않고 쓸 때마다 나의 밑바닥을 마주하느라 나는 자주 의기소침해진다.


어떤 때의 나는 뻘을 걷는 절망한 사람 같고 어떤 때의 나는 잠들지 않고 뛰어다니는 어린아이 같다. 또 어떤 때의 나는 괴팍하게 늙어버린 노파 같다. 여럿의 내가 쓰는 글은 다 달라서 어떤 것이 나다운 글일까 고민하다가 저기, 내 글은 어떤 거 같아요? 더듬거리며 물으면 당신 글은 예뻐요,라는 대답에 가슴이 내려앉고 만다. 예뻐 보이고 싶어서 한껏 꾸몄군요. 나무라는 것 같다.


잘 쓰지 못한다면 꾸준히라도 쓰고 싶어서 매일 글 쓸 시간을 다. 새벽에 일어나 무언갈 쓰고 약속을 취소하고 무언갈 쓴다. 밥을 거르고 무언갈 쓰고 아이들을 기관에 맡기고 무언갈 쓴다. 두 시간, 세 시간, 자꾸만 툭툭 끊어지는 시간마다 결국 그 무언가는 끝내 완성되지 못하고 가슴께에 묵직하게 얹혀서 몸과 마음을 차게 만든다.


시계를 확인하고 돌아보면 엉망인 방이 보이고 쌓인 설거지가 보이고 어둑해지는 집이 덩그러니 있다. 여전히 어렵다 느끼는 건 생활을 지키며 글을 쓰는 일이다. 어딘가로 떠나지 않고, 시간에 쫓기지 않고,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가족과 살림과 건강과 일상을 지키며 글을 쓰는 일. 그렇게까지 글을 쓰는 이유가 무어냐고 물으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저녁에 아이들을 돌봄 기관에 맡기고 세 시간을 벌었다. 글을 쓸 수 있다. 가기 싫다는 투정 말고 가만히 입을 다문 채 서운함을 참고 있는 네 살배기들 얼굴을 보다가 기어코 마음에 조그만 구멍이 뚫린다. 엄마는 뭐하는 사람이지? 엄마는 글 쓰는 사람이야. 고마워. 엄마 글 쓰고 올게. 헤어지고 근처 카페로 향하는데 그 조그만 구멍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샌다. 잠시만. 걷지 못하고 멈춰서는 날들.


누군가 묻는다. 당신은 무슨 일을 하는데요. 글을 써요. 왜 그렇게까지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마음으로 조그맣게 중얼거릴 뿐. 그렇게라도 쓰고 싶어서요.




장판에 손톱으로

꾹 눌러놓은 자국 같은 게

마음이라면

거기 들어가 눕고 싶었다


요를 덮고

한 사흘만

조용히 앓다가


밥물이 알맞나

손등으로 물금을 재러

일어나서 부엌으로


신미나 / 이마

매거진의 이전글 숨기고 싶은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쓸 수 있을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