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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Aug 07. 2015

금요일의 지와 사랑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와 같은 사랑을 꿈꾸던 금요일

내가 26살 아가씨였을 때 기록했던 독서 수첩을 꺼내봤다.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었다. 2011년 2월, 26살의 내가 꿈꾸던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다. 오늘은 그때 썼던 글을 옮겨 보기로 했다.


만약 유년시절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거나, 숨기고픈 트라우마를 품은 채 사랑에 몰두하는 사람이라면, 또는 어딘가 결핍되거나 내 상처와 닮은 사람에게만 끌려 어둡고 고통스러운 사랑만 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진짜 내 모습은 꽁꽁 숨기고 오로지 완벽한 사랑에만 집착하는 사람이라면 이 글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그리 거창한 건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꼈을 무언가를 당신도 조금이나마 느껴봤으면 좋겠다.




헤르만 헤세의 <지와 사랑>을 읽다가, 나는 지하철역을 한참이나 지나쳤다. 주인공 골드문트에게 내가 투영되었고, 나르치스가 건네는 이야기들이 자꾸만 내 맘을 두드렸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맘에 드는 훈남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나는 쿵쿵대는 가슴을 부여잡고 <지와 사랑>을 읽고 있었다.


이 책의 원제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Narziss und Goldmund)>이지만 번역이 되면서 <지와 사랑>이라는 제목을 갖게 되었다. 나는 이 제목이 꽤 맘에 든다.


지와 사랑.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책은 지식인과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성적이고 냉철한 학자로 지성형 인간을 대표하는 나르치스, 에로스와 충동적인 예술 욕구 속에서 진리를 찾아 헤매는 감성형 인간 골드문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라는 두 인물의 우정을 통해서 이성과 감성의 대립, 정신과 자연의 구분, 선과 악의 갈등을 그려냈다. 학문적으로 접근하면 매우 어려운 이야기일 테지만, 막상 읽어보면 누구나 나르치스, 혹은 골드문트가 되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지하철역을 지나칠 정도로 내가 빠져들어 읽었던 부분은 나르치스가 골드문트의 트라우마를 들춰내고, 그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던지는 부분이었다.


"골드문트, 너에게는 정신과 자연, 의식과 꿈의 세계가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 너는 너의 유년 시절을 잊어버리고 있어. 네 영혼의 깊숙한 곳에서는 유년 시절이 너를 빼앗아 가려고 해. 네가 그것을 들어 줄 때까지, 너는 괴로워할 거야.  

     

... 나는 깨어 있다는 점에서만은 너보다 강해. 그 점은 너보다 우월하지. 그러니까 내가 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거야. 하지만 다른 모든 점에서는 네가 나보다 훨씬 우월해. 네가 너 자신을 발견하면 그 순간 너는 나보다 우월하게 되는 거야.

     

... 너와 같은 종류의 사람, 강하고 예민한 감각을 가진 사람, 영감을 가진 사람, 몽상가, 시인, 연애하는 사람, 그와 같은 사람은 우리들 다른 인간, 즉 정신적 인간보다는 대개 우월해. 너희들의 본성은 모성적이지. 너희들은 충실한 것 속에서 생활하며, 너희들에게는 사랑과 힘과 체험할 수 있는 능력이 제공되어 있어. 우리들 정신적인 인간은 가끔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고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충실한 것 속에 살고 있지 않고 메마른 생활을 하고 있어. 충실한 생활, 과실의 즙, 사랑의 뜰, 예술의 아름다운 나라는 너희들 것이지. 너희들의 고향은 대지이지만 우리들의 고향은 관념이야. 너희들의 위험은 감각의 세계에 빠지는 것이지만 우리들의 위험은 진공의 공간에서 질식하는 것이야. 너는 예술가지만 나는 사색가일 뿐이야. 그리고 네가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잠들어 있을 때 나는 황야에서 깨어 있어. 나에게는 해가 비치고 있으나 네게는 달과 별이 비치고 있고 너의 꿈속에는 소녀가 나타나지만, 나의 꿈속에는 소년이 나타난다."

     

- 헤르만 헤세 <지와 사랑>, 골드문트에게 조언하는 나르치스


간단히 학자와 몽상가 정도로 이 둘을 구분해 본다면, 정신적인 인간인 학자 나르치스는 예술가적 인간인 몽상가 골드문트에게 '너는 잠을 자고 있다. 정말로 깨어 있지 않다'고 충고하며 그의 가장 깊고 약한 곳에 숨어있는 상처를 들춰낸다. 우리가 트라우마라고 부르는 상처를 말이다. 그리고 조언한다. 트라우마를 망각한 채 살고 있는 현재에서 깨어나 진정으로 너를 발견하라고. 고매한 학자는 방황하는 어린 소년에게 '네가 깨어난다면, 나보다 우월할 것이다'라고 선뜻 말한다.


모든 사람을 끌어당기는 밝고 생기 넘치는 매력을 가진 소년, 골드문트에게는 사실 유년의 기억이 없다. 특히 한 사람,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사라졌다. 골드문트의 어머니는 행실이 바르지 못한 여자, 아버지를 정신적 파탄으로 이끌게 한 악한 존재로만 남았다. 아버지는 어린 골드문트에게서 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어머니에게서 이어받았을지 모를 악한 기억을 억지로 지워버리려고 애를 썼다. 골드문트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죄악이라고 생각했다. 부끄러운 어머니가 저지른 죄를 보상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한평생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 옳은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골드문트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러한 삶은 원래부터 주어진 자신의 세계라고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르치스의 조언은 골드문트를 세차게 흔든다. 골드문트의 영혼 깊은 곳에서는 불우한 유년 시절이라는 트라우마가 골드문트의 삶과 자아를 송두리째 빼앗으려 했던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나르치스의 조언은 이것과 비슷하다. 고통스럽지만 알을 깨고 태어나라고. 골드문트를 알아본 나르치스는 그의 내면의 상처를 건드리면서까지 그가 진심으로 깨어나기를 바란다.


나르치스의 조언은 골드문트에게 일생일대의 가장 큰 충격이자 고통으로 다가온다. 이 말을 듣고 난 골드문트는 정신적 공황에 빠져 쓰러진다. 그리고 한동안 심하게 앓는다. 하지만 앓고 난 후, 골드문트는 비로소 자신의 세계에서 깨어나게 된다. 어머니를 기억해내고 자신의 존재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골드문트는 수도원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골드문트에게 나르치스는 가장 닮고 싶은 존재, 하나의 별이었다. 나르치스는 깜깜한 하늘에 뜬 길잡이별처럼 골드문트를 옳은 길로 인도했다. 나르치스의 도움으로 비로소 알을 깨고 나온 골드문트는 그가 곁에 머물며 자신을 더 이끌어 주기를 원한다. 하지만 나르치스는 골드문트에게 단호하게 말한다. 나는 너를 인도할 수도, 또 함께 따라가 줄 수도 없다고.


수도원을 떠나기 전, 자신을 찾아온 골드문트에게 나르치스는 '너는 눈을 떴어, 너와 나의 차이, 영혼과 정신과의 차이를 인식했다. 너와 내가 무엇이 되든, 우리가 어떻게 되든, 네가 나를 진지하게 필요로 하는 순간에 나는 결코 너를 향해 마음의 자물쇠를 채우지는 않겠어. 우리들의 우정은 좋았었다.'며 이별을 고한다.


“너는 눈을 떴어. 지금은 너 자신도 너와 나의 차이를, 어머니의 혈통과 아버지의 혈통 사이의 차이를, 영혼과 정신과의 차이를 인식했다. 결국, 이제는 수도원에서의 네 생활이나 수사의 생활을 지향하는 네 노력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너의 아버지의 생각이었다는 것을 인식하겠지? 너의 아버지는 네게서 너의 어머니의 기억을 씻게 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최소한 어머니한테 복수만이라도 해보겠다는 결심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한평생 수도원에 있는 것이 너의 천명이라고 여전히 믿고 있지는 않겠지?

     

... 내가 네게 싫증 나지 않았다는 것은 네가 잘 알고 있지 않니. 이것 봐, 골드문트! 우리들의 우정은 좋았었어. 그 우정에는 어떤 목표가 존재했고 그 목표에 도달했으며 너의 잠을 깨워주었어. 나는 이 우정이 끝나지 않기를 원해. 그리고 그것이 또 한 번 거듭거듭 새로워져서 또 다른 목표에 도달하기를 바라는 거야. 하지만 현재로써는 아무런 목표가 없어. 너의 목표는 확실하지 않고 나는 너를 인도할 수도, 또 함께 따라가 줄 수도 없는 거야.

     

... 골드문트, 감히 나는 네게 말해 두겠어. 너와 내가 무엇이 되든, 우리가 어떻게 되든, 네가 나를 진지하게 필요로 하는 순간에 나는 결코 너를 향해 마음의 자물쇠를 채우지는 않겠어. 결코."

     

- 헤르만 헤세 <지와 사랑>, 골드문트에게 이별을 고하는 나르치스



나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관계가 우정 보다는 사랑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나르치스는 비슷하고도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의 차이를 인식했고, 골드문트가 옳은 길로 걸어갈 수 있도록 정신적인 충고와 자극을 주었다. 그 바탕에는 사랑이 깔려있었다.


내가 골드문트였다면 어땠을까. 내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내 깊은 상처를 들춰낸다면, 영영 숨기고 싶은 나의 가장 내밀한 트라우마를 끄집어낸다면. 골드문트와 마찬가지로 부끄럽고 수치스러워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만일 그 상대가 나를 가르치려 들거나 지배하려 했다면 나는 두말없이 그에게서 도망쳤을 것이다. 그리고 내 안에 남은 상처는 더 큰 흉터로 남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르치스는 달랐다. 나르치스는 골드문트의 고유한 성격과 삶을 존중해 주었다. 자기와는 상반된 성격의 소유자인 골드문트를 이해할 뿐 아니라 '어서 깨어나라. 네가 깨어나면 너는 나보다 우월하다. 너는 특별하다.'고 진심으로 조언했다. 사랑하는 이가 고통스러운 과거를 극복하고 제대로 살 수 있도록 그를 깨운 것이다. 골드문트에 대한 나르치스의 사랑은 감히 대단하다. 이후로도 나르치스는 수도원을 떠난 후 방황하는 골드문트를 평생에 걸쳐 사랑과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본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보며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 사랑의 형태가 이랬으면 좋겠다고. 나한테 절실한 사랑이 이거였다.


나는 <지와 사랑>을 읽는 내내 골드문트에게 완전히 몰입하였다. 상처가 있는 사람은 상처를 드러내는 것보다 숨기는 게 더 익숙하다. 상처가 더 깊숙이 숨을 수 있도록, 트라우마를 간직한 이들 중에는 오히려 밝고 매력적이고 완벽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빈 곳을 사랑으로만 채우려고 몰두한다.   


나도 그런 종류의 사람 중에 하나였다. 상처는 숨기고 사랑에 몰두했다. 나는 어딘가 결핍되거나 내 상처와 닮은 사람에게만 먼저 끌렸다. 그리고 진짜 내 모습은 꽁꽁 숨긴 채, 애인의 바람대로 또는 모두의 기대대로만 사랑을 쏟았다. 버림받을까 봐 전전긍긍, 완벽한 사랑에 집착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그 사랑에는 결국 내가 없었다. 나는 전혀 내 길로 나아가지 못했다. 고통스러운 사랑이었다.


이 세상에 당신과 나라는 두 개의 고유한 존재가 온전하게 살아있다는 사실, 우리가 서로 마주 보고 저울 위에 앉는다 해도 그 존재의 무게를 따질 수 없다는 평평한 사이, 서로의 차이를 인식하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사랑은 따뜻하다. 그 어떤 사랑의 형태보다도 애틋하고 절절하다. 너와 내가 무엇이 되든, 우리가 어떻게 되든, 당신을 이해하고 마음을 열어두겠다는 사랑이 있었다. 나는 그 사랑에 감동했다.

   

앞으로 사랑을 하게 된다면, 우정인지 사랑인지 모호할 정도의 진지한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 다만, 깊은 우정에 신뢰와 존경이 있어서 오랜 시간이 흘러도 거듭거듭 나아갈 길이 더 생겨나고 단단해지는 사랑이었으면 좋겠다. 나와 연인은 배울 점이 많은 사이였으면 좋겠다. 적당한 거리가 있는 사이였으면 좋겠다. 서로의 길을 응원하고 각자의 길을 걸어가더라도 결국 다시 만나는 사랑이었으면 좋겠다.


 너와 내가 무엇이 되든,
우리가 어떻게 되든,
'곁에' 보단 '나란히' 걸어 가는 사랑을 하고 싶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처럼 말이다.


그런 사랑이라면 언젠가 이별을 하더라도

“우리들의 사랑은  좋았었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헤르만 헤세.

내가 알고 있는 헤르만 헤세는 지성인 '나르치스'의 면모와 예술가 '골드문트'의 면모를 모두 가진 작가였다. 그가 곧 나르치스이자 골드문트가 아니었을까. 헤르만 헤세의 작품에는 그의 생각과 고민, 깨달음이 문장 문장마다 살아 있다. 헤르만 헤세가 유리알같이 영롱하고도 탐구적인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시대를 뛰어 독자들이 헤세의 글을 읽고 난 후, 감동받고 위로받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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