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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Aug 06. 2015

목요일의 줄리아페페

목요일, 나의 첫 번째 식물 줄리아페페

식물을 키워보기로 했다.  


고백하건대 나는 동물이든 식물이든 키워본 적이 없었고, 키울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다. 무언가를 키운다는 일은 덜컥 겁부터 났다. 내가 그것들을 잘 키울 수 있을까,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그 생명이 죽으면 끔찍하고 번거로울 것 같았다. 하지만 무슨 바람이 불어서였을까. 삭막한 거실에 생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큰 맘 먹고 식물을 키워보기로 했다.


시작은 야심 찼다.

동네 꽃집에 들러 초보자가 키우기 쉬운 식물들이 뭔지 물었다. 그리고 쑥쑥 잘 크는 튼튼한 식물들을 골라서 집에 데려왔다. 뱅갈고무나무와 스킨답서스, 줄리아 페페와 그냥 페페, 해피트리와 황금사철을 나란히 데려왔다. 집이 금세 초록초록 생기가 돌았다. 녀석들이 자리를 잡은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해졌다. 앞으로 잘 키워봐야지!


하지만 식물 키우기는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물은 언제 어떻게 얼마나 줘야 할지, 빛은 어떻게 얼마나 쐬게 해줘야 하는지, 바람은 또 얼마나 맞게 해줘야 하는지. 나는 갓 육아를 시작한 초보 엄마처럼 인터넷을 뒤적거렸다.


그렇게 관심을 가진 만큼 금방 정이 생겼다. 똑같은 풀인데도 내가 키우는 식물들은 더 예뻐 보였다. 식물도 얼굴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똑같은 종류라도 그 생김새와 모양이 다 다르고, 더 예쁜 것도 있구나. 나는 다른 풀들과 구별할 수 있는 나만의 식물이 생긴 것이 기뻤다. 한 그루씩 우리 집에 뿌리를 내린 식물들에 나는 정성을 쏟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곧장 거실로 향했다. 쏟아지는 햇빛을 향해 고개를 뻗고 있는 초록색 식물들을 보았다. 기분이 좋아서 저절로 웃음이 났다. 저녁에는 물을 주면서 식물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거나 말을 걸어보기도 했다.


굵고 꼿꼿한 줄기 위에 서로 어긋난 각도로 뻗어 나는 나뭇가지, 정교하고도 신비한 형태의 잎들과 자세히 보아야 드러나는 아름다운 패턴들, 연약하게 돋아나는 경이로운 새순들, 햇빛이 쏟아지는 쪽으로 기지개를 켜는 식물들.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 같아도 식물들은 매일 자랐다.


며칠 새 눈에 띄게 가지를 뻗은 식물들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아, 이래서 엄마들이 식물을 키우나 보다.



내가 가장 아꼈던 식물은 줄리아페페였다. 줄리아페페는 첫눈에 마음에 들었다. 일단 생김새가 예뻤다. 게다가 이름도 예뻤다. 페페, 페페, 줄리아페페.

내가 홀딱 반했던 미모의 줄리아페페

줄리아페페는 짙은 자줏빛을 띠는 매끈한 줄기 위에 아이보리색 줄무늬 이파리를 단 식물이었다. 도톰하고 통통하니 예쁜 모양의 잎이 세 장이나 네 장씩, 올망졸망 모여서 꽃처럼 피었다. 마치 연녹색 스트라이프 옷을 입은 것처럼 상큼하고 명랑한 녀석이었다.


그런데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줄리아페페가 죽었다. 겉보기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녀석은 시들지도 않았고, 잎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줄리아페페는 줄기가 똑 떨어져서 죽었다.


나는 무척이나 속상했다. 식물이 죽어서 속상한 적은 처음이었다. 분명히 멀쩡했는데, 무슨 일일까? 나는 화분 속 흙을 살펴봤다. 물을 너무 많이 준 게 문제였다. 뿌리부터 줄기까지 썩어 있었다. 뿌리 썩은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비 온 뒤, 짓이겨진 풀밭에서 나는 냄새와 비슷했다. 고인 물가에 낀 역한 이끼 냄새 같기도 했다. 습하고 축축한 흙비린내가 짙었다.   



아, 죽은 식물 냄새는 이렇구나.



나는 너무 속상해서 머리가 서늘하고 몸이 욱신거렸다. 겨우 식물 하나 죽은 거로 유난 떠는 괜한 오버나 감상이 아니었다. 솔직한 내 마음이 그랬다. 나도 그런 내가 라울 정도였으니까. 한 달을 키운 식물이 죽어도 마음이 이러한데, 동물이나 사람이 죽으면 대체 그 마음은 어떨까.


나는 줄리아페페의 죽음에 대해 찾아보았다. 줄리아페페는 습한 환경을 좋아하지만 물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잎 안에 많은 물을 저장해 놓기 때문에 물을 많이 주게 되면 잎이 쉽게 물러 떨어진다. 무지한 데에다 의욕만 충만했던 나는, 너무 과한 사랑을 쏟아 줄리아페페를 죽이고 말았다. 오래 잘 키워주고 싶었는데 미안했다.

 

줄리아페페가 죽은 이후로 나는 강박적으로 식물들을 대하는 태도를 바꿨다. 물 주는 날을 정해서 일정량 물을 주는 일도 그만뒀다. 내가 글로 배운 이론으로만 다가가는 걸 식물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나의 실수는 계속되었다. 스킨답서스는 직사광선에 데어서 잎이 희끗희끗해졌다. 해피트리는 한쪽 가지만 햇빛 쪽으로 심하게 기울었다. 그래도 어느 식물 하나 시들진 않았다.


무관심은 선인장도 죽인다고 했다. 하지만 지나친 관심 역시 줄리아페페를 죽이고 말았다. 나는 식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식물도 사람과 같아서 볕 적당히 쐬고, 물 잘 마시고, 숨을 잘 쉬면 튼튼하게 자란다는 것을. 요즘 키우는 식물들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식물을 키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의미 있는 일인 것은 분명했다.



식물과 사람,
모든 생명은 사는 모습이 닮았더라.  



줄리아페페는 나의 첫 번째 식물로 남게 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반해서 키운 식물,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실수로 죽인 식물, 그래도 나에게만 특별히 예뻤던 식물. 얼굴도 예쁘고 그 이름도 예쁜 페페, 페페, 줄리아페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빛도 식물도 집도 따뜻한 이 시간, 이  공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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