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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Aug 08. 2015

토요일의 노란리본

우리가 세월호를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이유

서울에 폭염특보가 내리고 긴급재난문자가 날아온 날이었다.


가장 뜨거운 한낮 오후 2시쯤, 나는 홍대입구역에 도착했다. 온몸에 달라붙는 더위에 나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개찰구를 나왔다. 그리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는데, 내 앞에 세월호 유가족이 서 계셨다. 세월호 미수습자 허다윤 양의 아버지 허흥환 씨였다. 땡볕 아래 커다란 피켓을 들고 서 계셨다. 피켓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세월호 속에 아직 가족이 있습니다.
조속하고 온전한 선체인양


아버님은 세월호 선체인양 촉구 피케팅을 하고 계셨다. 2월부터 지금까지 6개월째 매일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서셨다. 아버님은 그늘도 없이 온몸으로 직사광선을 받아 내고 계셨다.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피켓을 목에 걸고, 양손에는 노란리본과 팜플렛을 들고 계셨다. 아버님은 입술을 꾹 다문 채 정면을 응시하고 계셨다. 


아! 폭염보다 더 숨 막히는 무언가가 목구멍에 걸렸다. 나는 이어폰을 빼고 아버님께 다가가 인사를 드렸다. 아버님은 노란리본과 팜플렛을 건네주셨다. 드리고 싶은 말들이 많았지만, 쉽사리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눈인사와 함께 “힘내세요.”라는 말만 겨우 내뱉었다. 아버님은 감사하다며 미소를 지으셨다. 돌아서서 걸어가는 내내 마음이 먹먹했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사람들에게 무뎌졌지만, 

세월호의 진실은 아직 바다 속에 있다. 아직 세월호는 끝나지 않았다. 


따님 허다윤 양은 아직 세월호 안에 있다. 길거리를 오가는 모든 사람을 붙잡고 물어봐도 다윤 양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알고 있다. 아직 바다 속에 있는 아홉 명의 미수습자, 그 가족들의 마음은 어떨까.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고 살아남은 이들, 세월호 유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은 너무나 버겁다. 

여전히 의문투성이인 4월 16일, 그 진실을 마주하고 슬퍼할 겨를도 없이 유가족들은 조롱과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 어떤 청년은 단원고 교복을 입고 세월호 희생자를 어묵에 비하했고, 한 노인은 세월호 희생자 합동 분향소에 찾아가 다짜고짜 유가족의 뺨을 때렸다. 인터넷에는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을 비하하는 발언과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폭언들이 너무나도 쉽게 발견된다. 


어째서? 왜? 세월호에 대한 분노가 유가족들에게 향하는 건지, 유가족들은 생업을 포기한 채 1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이 땡볕 아래에 피켓을 들고 나서야 하는지, 그런데도 왜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지. 지금 이 현실은 안타까움을 넘어서 아주아주 부끄럽고 위태롭다.



예전에 문학평론가 한보희 선생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세월호 유가족과 관련해 인상 깊었던 이야기가 있어서 기억을 더듬어 옮겨 적어 본다. 


인간은 모두 죽습니다. 인간이 죽는다는 건 진실입니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죽음의 권리가 있습니다. 세월호의 진실을 알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죽음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의문사에서 모든 의문을 걷어내고, ‘죽은 이’들과 ‘살아남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이 순수하게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들이 죽음 앞에서 깨끗하게 슬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죽음이 일부이자, 또 삶의 일부입니다. 죽은 이들이 죽음으로써 존엄해질 수 있는 권리를 빼앗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모두가 죽음을 가진 존재입니다. 죽은 이들을 마주하고 순수하게 슬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인간은 죽음으로서 존엄해지고, 그래야 인간은 죽음을 기억하고 다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죽은 이들을 순수하게 애도하기 위해서라도,
살아남은 이들이 깨끗이 슬퍼하고 다시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세월호를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다윤 양 아버님께 받은 노란리본과 팜플릿


여러분,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달아 주세요.
세월호를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을 보여 주세요.

오늘도 땡볕 아래에서 홀로 외치는 다윤 양 아버님의 간절한 목소리가 뜨거운 거리에 녹아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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