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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Aug 13. 2015

목요일의 을

목요일, 을의 연애에 지친 그녀에게

메시지를 읽고도 답장이 없는 그,

전화한다고 했으면서 전화가 없는 그,  

얼굴 보기로 해놓고 자꾸만 일이 생겼다는 그.


얼마나 바길래 대답 한 번이 없는지, 얼굴 한 번을 보여주질 않는지. 그의 갑질에 무작정 기다리고 있는 당신은, 을이다. 그를 위해서는 기꺼이 모든 시간을 내어주는 당신, 연애에선 시간이 더 많은 자가 손해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방구석에서 우울해하고 있을 당신에게 한마디만 하자.


당신은 바빠져도 괜찮다.


외로움과 열등감 같은 감정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상대적이다. 아주 사소한 감정이라도 시간이 많은 당신에겐 쓰나미가 되어 몰려온다. 별별 극단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집어삼키고, 당신은 매력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하찮은 존재가 되어 가라앉는다.


그때 당신의 세계는 세 평짜리 방 한 칸에 불과할 만큼 비좁고 답답하다. 그리고 텅텅 비어 있다. 행복이나 즐거움 같은 아주 소중한 감정들은 케케 묵은 먼지처럼 쌓여만 있을 뿐. 당신은 기다리는 것 말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인정해야 한다. 당신과 당신의 시간이 만든 세계다.



이따가 전화할게.


. 일방적으로 끊긴 그의 전화는 '이따가'도 벨이 울리지 않는다. 초조하게 시계를 들여다봐도 겨우 삼십 분이 지났을 뿐이다. 대체 얼마나 바쁘길래 연락이 없는지 당신은 신경을 곤두세운다. 애가 탄다. 째깍 째깍. 그에게 기울어진 당신의 시간은 길고 더디게 흐른다. 영원 같은 긴긴 시간, 희망 고문으로 마음이 괴롭다. 결국, 당신이 먼저 걸지 않는 한 그에게서 전화는 오지 않는다.


이런 연애. 단호히 말하건대, 당신은 아니다. 당신은 그저 을이고 을이며 을이 될 뿐이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외로워. 그 좁아 터진 방구석에 박혀 있을 게 아니라, 어서 방문을 열고 나가기를 권한다. 머리를 바꿔보고 화장을 짙게 해보든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블랙으로 차려입고 또각또각 시크하게 걸어 보든가. 낯선 장소에서 사람들을 만나 보든가. 당신은 잠시 사치스러워도 되고, 나빠져도 괜찮다. 예뻐지는 게 가장 좋겠다. 그게 가장 후련하지 않은가.


버릴 놈은 버리고 제대로 달콤한 향수나 골라 우아하게 뿌려보는 게 당신의 삶을 더 낭만적으로 만든다고 본다. 남의 취향 말고 오로지 당신의 취향으로 말이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될 것 같다고 너무 부끄러워할 것도 없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타인에게 무심하니까.


당신의 감정을 우습게 여기고 갑질 하는 남자는 기다리지 마라. 대답 없음도 대답이다. 그는 이미 당신에게 ‘노’라고 대답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주 비겁하고 치사한 방법으로. 그러니 그 아까운 시간을 오로지 당신 것으로 만들어 보길 바란다.


당신은 조금 더 바빠져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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