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의 무쿠이우무

12살 소녀 무쿠이우무의 <눈물>

by 고수리

며칠 전, 한 소녀가 쓴 글을 읽었다. 중국 쓰촨성 오지 마을에 살고 있는 12살 무쿠이우무라는 소녀가 쓴 글이었다.


아빠는 4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아빠는 저를 끔찍이 아껴주셨죠. 엄마는 늘 제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셨어요. 엄마도 돌아가신 아빠를 무척이나 그리워하셨던 것 같아요. 어느 날 엄마가 병이 들었어요. 저는 병원이 있는 읍내(시창현)로 엄마를 모시고 갔어요. 돈을 다 썼지만, 엄마는 계속 아팠어요. 너무 아파서 일어나시질 못했습니다. 저는 ‘엄마, 제가 만든 음식 드시고 어서 일어나세요. 일어나시면 또 맛있는 걸 해드릴게요’라고 했어요. 그렇지만 엄마는 점점 더 아팠습니다. 저는 누워있는 엄마의 손을 씻어 드렸어요. 엄마는 ‘얘야, 집에 가자꾸나. 여기가 편치 않구나’라고 하셨습니다. 엄마와 저는 집으로 돌아왔어요. 며칠 뒤 저는 음식을 만들고 엄마를 불렀어요. 대답이 없었어요. 엄마는 이미 하늘나라로 가셨던 거예요. 교과서에서는 대만에 일월담 호수가 있다고 해요. 호수의 물은 엄마를 그리워하는 딸의 눈물로 가득 채워져 있다고 했어요.


<눈물> 무쿠이우무_ 한겨레 기사에서 발췌


무쿠이우무는 엄마가 돌아가신 이야기를 300여 글자의 짧은 글로 썼다. 이 글은 교실 벽에 걸려있다가 자원봉사를 하던 교사가 인터넷에 올리면서 알려졌다. 인터넷에 퍼진 이 글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수필’로 회자되면서 중국인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소수민족 이족(彛族) 언어를 쓰는 무쿠이우무에게 중국어와 한자는 외국어와 다름없다. 소녀는 서툰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더듬더듬 써 내려갔다. 운이 좋게도 나는 중국어를 배웠기 때문에 원문을 보고 제대로 의미를 살려서 읽을 수가 있었다. 소녀의 글을 다 읽고 나서 나는 뭔가에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미사여구 하나 없이 깨끗한 문장으로 쓰인 글에는 무쿠이우무의 그리움과 버거움, 슬픔과 삶이 다 들어 있었다. 무쿠이우무는 나보다 훨씬 뛰어난 작가였다.


나는 부끄러웠다. 나의 글이 길어지고 있었다. 주렁주렁 매달리는 미사여구와 주절주절 길어지는 변명들, 그것들로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싶었던 나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왜 글을 쓰는 걸까?


최근에 나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많은 사람에게 내 글이 읽힌다는 사실은 매우 기뻤지만, 두렵고 또 부담스러웠다. 내가 쓴 글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는 건, 마치 나 혼자만 발가벗은 채로 앞에 나서는 느낌이었다. 사적인 비밀과 생각, 어쩌면 사는 모습까지도 홀랑 다 보여주는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누군가가 비난할 여지가 있는 글에는 자기검열이 심해졌고, 한 편의 글을 마무리하기 어려웠다. 고양이 그림을 그려놓고 호랑이라고 봐주길 바라는 마음도 어느 정도 있었다.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고통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왜 글을 쓰기 시작했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내가 왜 글을 쓰기 시작했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는 아주 개인적인 이유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스무 살 때부터 내 이야기를 썼다. 어둡고 슬프고 아픈 이야기들을 공개적으로, 한풀이라도 하듯이 엄청나게 적어 내려갔다. 그동안 꽁꽁 숨겨놨던 내 상처를 어떻게든 처리를 해야 살 것 같았고, 앞으론 아무한테도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철벽 과잉방어이기도 했다. ‘나 이런 사람이니까 건드리지 마!’라는 경고와도 비슷했다. 어린 날에 자기연민과 치기가 나를 그토록 뾰족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때 내가 악에 받쳐서 글을 쓰고 나를 드러냈던 이유는 ‘살고 싶어서’였다. 나는 내 모습으로 나답게 제대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시기를 지나온 지금, 질문을 심플하게 바꿔야 할 것 같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나는 유명한 작가가 되거나 책을 출간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럴만한 실력도 안 된다. 그런 사람이 왜 계속 글을 쓰려는 걸까. 부담감과 두려움을 안고서 불편한 마음으로 왜 굳이 이 고생을 하는 걸까.


나는 살아가는 동안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글로 남기고 싶다. 어떤 글이든 쓰고 싶다. 누군가는 재밌어했으면 좋겠고, 누군가는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내가 12살 소녀 무쿠이우무의 글을 읽고 감동하고 내 삶을 돌아본 것처럼, 누군가도 내 글을 읽고 인생의 한순간은 감동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동안 나에게로만 향했던 고민과 질문들을 이제 바깥으로 돌려서 나는 세상에 말을 걸고 싶어졌다.


왜 글을 쓰냐는 질문에 나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살고 싶어서’라고 대답하겠다. 세수를 하고,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고, 돈을 벌고, 놀고, 먹고 살아가는 동안에도 나는 살고 싶어서. 가치 있게 살고 싶어서 글을 쓴다. 하나뿐인 험난하고 귀중한 삶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누군가에게는 내가 훌륭한 작가로 남았으면 좋겠다.



어떤 편견도 없이 무쿠이우무의 글을 읽었던 독자들에게 이제 12살 소녀 무쿠이우무의 진짜 이야기를 전한다. 중국의 한 오지마을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 소녀 무쿠이우무는 가난하다. 이제 아빠도 엄마도 없는 고아가 되었다. 무쿠이우무는 마찬가지로 고아인 조카와 살고 있다. 돼지를 치고 감자밭을 일구며 조부모를 모시고 산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무쿠이우무의 16살과 15살 언니, 오빠는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났다. 그리고 10살, 5살짜리 남동생들은 자선단체가 주선한 학교에 다니려고 160㎞ 떨어진 시창현으로 떠났다.


무쿠이우무는 앞으로 대단한 행운을 만나지 않는 이상은 계속 그렇게 살 것이다. 그럼에도 이 소녀는 단단히 버티고 오늘 하루도 잘 살아낼 거라고 나는 믿는다. 자신의 상처를 담담히 써 내려간 용기와, 슬픔은 일월담 호수에 흘려보내고 다시 살아가는 의연함이 그걸 증명한다. 눈물은 넣어두고 돼지를 치고 감자밭을 일구며 또 살아갈 12살 무쿠이우무. 소녀는 나에게 작가이다. 내가 그렇게 되고 싶은 훌륭한 작가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토요일의 노란리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