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눠주고 지켜주고 싶은 마음으로

밥 잘 챙겨 먹으라는 당부

by 고수리

스물 후반. 몸도 마음도 많이 아팠던 어느 밤에 할머니 꿈을 꿨습니다. 꿈에서 할머니는 건강했던 모습 그대로 자글자글 웃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내가 미처 마음을 전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밥을 차려주었고, 지친 나에게도 고등어를 발라 주었습니다.


애기야, 밥 잘 챙겨 먹으라.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어요. 우리 할머니는 꿈에서도 고등어를 구워주네. 할머니 꿈이 어찌나 생생했는지. 새벽에 일어나 적어두었던 오래된 글이 초고가 되었습니다. 이 글은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바다처럼 짰다>의 표제작이자,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글이기도 합니다.


돌아보면 그 시절에 저는 무척 바쁘고 불안하고 삭막하고 가난했습니다. 나를 위해 밥을 챙겨먹는 일이 시간낭비처럼 느껴지던 때였지요. 한 번은 이런 날이 있었어요. 야근하고 늦은 밤 지하철에서 내렸는데 꼬로로록. 배가 고팠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날 밥다운 밥을 하나도 먹지 못하고 못했더라고요. 그때 갑자기 고등어조림이 너무 먹고 싶어졌어요. 정말로 갑자기요. 집에 엄마가 보내준 김치가 있으니까. 고등어조림을 해먹자! 갑자기 결심했습니다.


마침 집 근처에 대형마트가 있어서 떨이로 싸게 파는 고등어를 발견했습니다. 눈이 탁하고 생기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딱 봐도 싱싱하지 않은, 노르웨이에서 온 고등어였는데 제값보다 반이나 더 쌌어요. 어차피 쪼려먹을 테니 싱싱하지 않아도 상관없지 않을까 싶어서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언젠가 엄마가 어떤 요리든 대파랑 청양고추는 꼭 넣어야 한다고 말했던 게 생각나서 대파를 꽃다발처럼 들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세상에, 너무 매콤하고 맛있겠다. 한밤중에 고등어조림을 만들어 먹을 생각에 무척 설렜지요. 집에 도착해서는 아껴 먹던 엄마 김치를 탈탈 털어 냄비 바닥에 깔고, 고등어랑 재료들 깨끗이 손질해 담고서 불을 올렸습니다. 대에충 엄마 어깨너머로 본 레시피를 더듬어 고등어조림을 만들었습니다. 보골보골 끓고 있는 냄비를 보니 정말 그럴싸했지요.


햇반을 데우고 완성된 고등어조림을 냄비째 들고 와 뚜껑을 열었습니다. 와, 이거 엄마 꺼랑 비슷한데! 혼자서 고등어조림을 해먹다니 어찌나 뿌듯한지요. 부푼 마음으로 고등어조림을 한 입 맛보았습니다. 그리곤 그대로 뱉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비린내가 너무 심해서 한 입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싱싱하지 않은 재료는 음식 전체를 망쳐버리고 만다는 걸 알았지요. 그러자 돈 얼마 아끼겠다고 오래된 고등어를 산 나도, 그걸 파는 도시에 마트도 그냥 다 너무 서럽고 서글퍼서 화가 나는 거예요. 냄비 째 고등어조림을 버리며 울었습니다. 기념할만한 슬픈 고등어였습니다. 책 속에 다른 글 '혼밥생활자들의 집밥'에서는 혼밥에 대해 이런 생각을 적어두었어요.


사람은 살면서 한 번쯤 홀로 서야 한다. 사 먹고 시켜 먹는 음식들에 질리면 오래된 나의 맛을 찾게 된다. 알아서 혼자 밥을 지어 먹게 된다. 엄마가 일일이 가르쳐준 적 없어도 나의 혀가 기억하는 그 맛을 찾아낸다. 내 간에 딱 맞는, 먹어본 그리운 음식들. 집밥을 지어 먹는 일은 시간과 정성이 드는 일. 밥상을 차리면서 나를 먹여 살린 누군가의 노고를 깨닫는다. 누가 차려준 밥상을 편히 받아들고 투정부리던 내가 부끄러워진다. 내가 먹을 밥 정도는 스스로 ‘맛있게’ 지어 먹고 살아간다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 하루 세끼 먹고 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나이가 되면, 내가 지어 내가 먹는 집밥이 커다란 유산임을 알게 될 것이다. 수백 번 수천 번 우리에게 밥을 지어 먹인 엄마가 전해준 것이었다.
- 고수리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바다처럼 짰다>


태어나 처음으로 만들어본 고등어 요리는 대실패였지만, 이제는 고등어구이도 고등어조림도 꽤나 맛있게 뚝딱 지어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가 먹을 밥 정도는 스스로 맛있게 지어 먹고 살아간다는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여러분은 혼자서도 밥 잘 챙겨 드시나요? 아직도 저는, 나를 위한 밥을 지을 때에는 자주 실패한 요리를 하곤 하는데요. 혼자 먹을 거니까 대충 아무거나 해먹지 뭐. 소홀한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에요. 그럴 때마다 밥 잘 챙겨 먹으라던 할머니와 엄마의 당부를 생각합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나눠주고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나를 향한 그 다정한 마음들을 기억하며, 혼자라도 씩씩하게 고등어를 구워 먹는 어른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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