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하루만 살 수 있다면 먹고픈 음식
한 번쯤 그런 생각해보지 않나. 딱 하루만 살 수 있다면 마지막 만찬으로 무얼 먹고 싶은지. 나는 고슬고슬 밥 지어 노릇하게 구은 고등어랑 잘 익은 김치 올리고, 폭 끓인 미역국 따끈하게 담아 밥상을 차리고 싶다. 가족들과 동그랗게 모여 앉아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배부르고 따뜻할 것 같다. 고등어만큼이나 미역국을 좋아한다.
그토록 좋아하는 음식이라기엔 미역국 생김새는 참으로 볼품없다. 탁한 청록색 국물에 검푸른 미역뿐. 종종 고기나 생선, 마늘 건더기가 있긴 하지만, 그것들조차 그리 근사해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나는 미역국에서 할머니의 바다를 본다. 해초가 너울거리는 짙고 탁한 바닷물. 그 아래를 헤엄치며 할머니가 가장 많이 잡아 온 건 미역이었다.
봄바람 불어오는 미역철이면 바닷마을이 온통 들썩거렸다. 할머니는 그때가 제일 바빴다. 일찍이 일어나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서 미역을 뜯었다. 성게 망사리보다도 굵은 그물로 짠 아주 커다란 망사리에다가 미역을 가득가득 실어 오면, 동네 사람들이 죄다 나와서 일을 나눴다. 한쪽에서는 미역을 이고 지고 옮기고, 한쪽에서는 미역을 빨고, 한쪽에서는 미역을 널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커다란 솥에 불을 지펴 미역국을 끓였다. 집집마다 아이들까지 붙어서 일을 도와야 했을 정도로 미역철에는 온 동네가 떠들썩했다.
“미역철에는 물질만 하면 끝이 아니야. 물먹은 미역 찬물에다가 옮기고 굵은소금 뿌려 대여섯 번은 빡빡 치대고 빨아야 깨끗하고 부드러워져. 깨끗하게 빤 미역은 물기 꽉 짜서 빨래 열듯이 하나하나 빨랫줄에 여는 거지. 그렇게 바닷바람에 꾸덕하게 말려서 내다 파는 거야. 혼자서는 절대 못하지. 해녀들이 미역을 해 오면 동네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나와서 다 도왔단다. 엄마는 정말이지 봄바람이 제일 싫었어. 바닷바람은 겨울보다 봄에 더 힘들거든. 어찌나 세차고 춥던지 절로 눈물이 막 삐져나왔다니까. 그렇게 고되고 바쁜데 밥 차려 먹을 정신이 어딨겠니. 다 같이 미역국 한 솥 짜갑게 꼬아서 나눠 먹고 그랬지. 다들 일이 힘드니까, 사는 게 힘드니까 짜갑게 먹어야 버텼어. 바다선 짠맛이 사는 힘이야.”
엄마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구불구불한 할머니네 마을에 미역을 이고 지고 나르고 빨고 널고 끓이는 조그맣고 성실한 사람들이 내려다보이는 것 같았다. 서로서로 도와가며 사이좋게 나누던 바닷마을 사람들. 종일 바깥에서 일하다가 미역국 한 솥 끓여 한 그릇씩 나눠 담고 훌훌 밥 말아 김치랑 후루룩 먹는 풍경이, 일은 고되지만 짭짤하고 푸근한 잔칫집 같다.
들기름에 달달 볶지 않아도, 생선이나 소고기를 넣지 않아도, 다진 마늘도 쓰지 않고 소금 간도 하지 않아도, 갓 뜯은 미역을 미역귀까지 통째로 넣고 끓이면 사골뼈처럼 뽀얗게 국물이 우러났다. 미역 본연의 맛이 그렇게나 맛있었다고 엄마는 줄곧 그리워했다. 그래서인지 대대로 전해오는 할머니와 엄마의 당부.
“미역국은 말이야. 곰국 꼬아내듯이 무조건 폭 꼬아내야 해.”
반드시 ‘꼬아낸다’고 말하는 할머니와 엄마 특유의 악센트가 나의 꼬로록한 허기를 탁 때린다. 미역국이란 자고로 곰국 꼬아내듯이 푹 꼬아내는 것이 우리집 미역국 비법. 그 시절 커다란 솥에다가 미역이랑 집된장만 넣고서 폭 꼬아 먹던 미역국이, 몇 날 며칠 찌개처럼 짭짤하게 꼬아 먹던 미역국이, 우리집 미역국이 되었다. 생긴 걸로 치자면 젤로 못생긴, 뻑뻑하고 거무죽죽한 된장미역국이었다.
까닭은 모르겠지만 미역국에선 그 집 고유의 맛이 난다. 똑같이 미역 달달 볶아 끓인 국인데도 집집마다 맛이 다 다르다. 그 안에 들어간 재료들이 다르고, 또 얼마나 많이 볶느냐, 얼마나 많이 넣느냐, 얼마나 많이 끓이느냐에 따라 묘하게 맛이 달라진다. 유래부터 남다른 우리집 미역국은 소고기나 우럭이나 조개가 주인공이 아니라, 오로지 미역.
우리집 미역국은 엄마의 무심한 손길과 긴긴 시간으로 만들어졌다. 불린 미역을 들기름에 달달 볶다가 쌀뜨물 붓고 굵은 멸치 툭툭 던져 넣고 된장 풀고서 약불에다가 몇 시간 폭 꼬아낸다. 그러면 뻑뻑하고 걸쭉한 찌개 같은 된장미역국이 밥상 위에 찰방 놓인다. 거기다 밥 말아 먹으면 몇 날 며칠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아무튼 나는 할머니와 엄마의 미역국을 먹으면서 매일이 생일인 어린이처럼 기쁘고 튼튼했다지.
아이들을 낳고 모유수유를 하던 1년 동안은 미역국을 주식으로 먹었다. 임신했을 때도 자주 끓여 먹었으니까 그해에는 못해도 1,000그릇은 넘게 먹었을 것이다. 모유수유 할 때는 맵고 짜게 먹으면 안 되니까 담백한 소고기 미역국을 먹었다. 그 역시도 엄마의 방식으로 뭉근히 폭 꼬아낸 미역국이었다.
내가 쌍둥이를 낳던 날, 엄마는 오지 않았다. 어차피 조리원으로 바로 갈 것이었고, 겨우 얼굴 한 번 보려고 왕복 여덟 시간이나 걸리는 먼 길을 엄마가 오가는 게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엄마는 날마다 바쁘게 엄마의 일을 하고 있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었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만 확인하기로, 서로의 바쁜 날들 잘 보내고 반갑게 만나기로 했다. 그때 엄마가 해준 말이 마음에 남았다.
“딸.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 엄마는 엄마의 일이 있어. 엄마의 삶을 살아야 해. 힘들겠지만 너는 잘 해낼 거야. 봄바람에 처음 딴 미역도 여러 번 치대고 빨아야 부드러워진단다. 당장은 힘들더라도 키우다 보면 나름의 요령이 생기는 법이야. 너는 이제 엄마가 된 거야. 마음 단단히 먹고 강해져야 한다. 사랑한다, 딸. 애기야.”
아이들을 낳고 50일쯤 지나서야 엄마는 올라왔다. 바리바리 챙긴 반찬들이랑 짯짯한 마른미역을 한아름 들고서. 집에 도착한 엄마는 나와 아이들을 와락 안아주고는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 사위를 불렀다. 엄마의 미역국 레시피를 전수받은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남편이었다.
“이맘땐 남이 해준 밥이 제일 맛있단다. 사위가 조금만 고생해서 끓여줘.”
엄마는 사위를 불 앞에 불러 세우고는 미역국 끓이는 법을 전수해주었다. 미역을 물에 불리는 법, 들기름에 달달 볶는 법, 그리고 약한 불에서 은근히 오래 끓이는 법.
“미역국은 곰국 꼬아내듯이 무조건 폭 꼬아내야 해.”
덕분에 아이들 낳고 나서 먹은 미역국은 모두 남편이 끓여줬다. 장모님 레시피를 전수받아 폭 꼬아낸 미역국. 그렇게 남편이 한 솥 끓여놓고 출근하면 나는 매 끼니 챙겨 먹었다. 따뜻한 미역국을 먹을 때마다 어쩐지 마음까지 몽글몽글해졌다. 누군가 나를 위해 끓여준 미역국에는 오래오래 폭 꼬아낸 무언가가 들어 있었다.
아이들이 세 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나는 이른 아침에 의식을 치르듯 조용히 미역국을 끓였다. 바다 깊은 곳에서 너울거리던 미역이 따뜻한 미역국 한 그릇이 될 때까지는 여러 손의 정성과 시간이 깃든다. 문득 할머니와 엄마, 엄마와 나, 나와 아이들로 이어진 긴 인연이 새삼스러웠다. 이상하고도 아름다웠다. 한소끔 부르르 끓인 국을 뭉근히 데우느라 국자로 천천히 휘저으며 나는 어떤 이름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주었다. 갓 지은 밥과 함께 이 국을 먹이고 싶은 사람들이 나에게는 있었다.
미역국에는 분명 무언가가 들어 있었다. 특별하거나 평범한 우리의 모든 날에, 우리를 낳고 키우고 살린 그 맛. 오랜 시간 폭 꼬아낸 그 맛. 다름 아닌 사랑의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