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소울푸드

기억하고픈 사랑의 풍경

by 고수리

여러분은 딱 하루만 살 수 있다면 마지막 만찬으로 무얼 먹고 싶으신가요? 깨끗한 마음으로 고등어와 미역국을 좋아하는 저는, 고등어와 미역국으로 차린 소박한 밥상을 먹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물음이 무척 강력했던지, 주변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는 하나 둘 기억 속에 소울푸드를 고백해주었습니다. 딱 하루만 살 수 있다면 마지막 만찬으로 나는, 떡만둣국, 엄마의 김장김치, 냉이된장국, 보리굴비, 김치전, 카레 등등. 어린 시절 먹고 자란 음식들이 어느새 마음속 따스한 소울 푸드로 자리 잡고 있더라고요. 할머니만 만들 수 있어서, 엄마만 만들 수 있는 음식이어서 이제는 먹을 수 없다는 서글픈 대답을 자주 듣기도 했습니다. 저희 남편은 곰곰 생각하더니 ‘굴쪽파전’이 먹고 싶다고 하더군요.


"어렸을 때, 겨울이면 우리 할매랑 엄마가 굴쪽파전을 부쳐줬거든. 우리집 굴쪽파전. 방바닥에다가 신문지 깔고 큰 프라이팬 하나 두고서 굴쪽파전을 하나씩 부쳐 먹는 거야. 기름 두르고 먼저 자르지 않은 긴 쪽파를 바닥에 하나씩 깔아. 그리고는 그 위에 밀가루 반죽 물을 아주 얇게 펴주는 거야. 마지막으로 굴을 툭 툭 던져주고는 지글지글 부치면 돼. 다 부친 굴쪽파전, 뜨거울 때 쪽파 결 따라서 주욱 길게 찢어서 굴에다가 쪽파를 돌돌돌 감아서 한입에 먹는 거야. 그게 너무 먹고 싶다. 우리 할매가 진짜 맛있게 부쳐줬었는데. 할매 보고 싶다.”


어려서부터 스무 살 때까지 할머니와 함께 자란 남편은, 지금도 입맛이 꼭 할머니 같습니다. 인스턴트 음식이랑 군것질을 싫어하고, 피자랑 햄버거보단 된장국이랑 생선구이에 입맛을 다시는 사람. 남편과 저는 시골 입맛이 닮아서 집에서 자주 밥을 지어먹습니다. 책에 썼듯이 제가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우리집 미역국은 모두 남편이 끓여주었지요. 할머니 밥을 먹고 자라서 일까요. 남편이 음식에 간을 내는 걸 보면, 저어이 경상도 산골 어디쯤 사시는 구수한 할머니의 손맛이 나곤 합니다.


그런 남편이 먹고 자란 굴쪽파전. 쪽파를 돌돌돌 감아서 먹는 굴쪽파전이라니. 저는 한 번도 굴을 그렇게 먹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상상만 해도 너무 맛있을 거 같아서, “오빠, 마침 이맘때가 굴이 제철이잖아. 우리 어머님께 굴쪽파전 부쳐달라고 하자!”며 시부모님 집에 갔습니다. 양손에는 굴이랑 쪽파를 한가득 사들고 “어머님, 굴쪽파전 부쳐주세요.”하고 문을 두드렸습니다. 어머님이 참 좋아하셨어요. 아직도 그걸 기억하고 있구나. 할머니 음식을 기억하고 있구나. 하고요.


바닥에 신문지를 넓게 펴고 프라이팬을 가운데 두고선 온 가족이 둘러앉았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가 동그라니 둘러앉아 북적북적한 모습. 아이들은 무언가 분주하고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덩달아 신이 났던지, 소리를 지르며 총총 뛰어다니며 미끄덩한 굴을 신기해했습니다.


“반죽물이 제일 중요해. 계란은 풀면 안 돼. 부침가루도 말고. 밀가루에 소금간만 해서 깔끔하게 반죽물 만들어 부치는 게 제일 맛있단다.”


어머님은 드디어 굴쪽파전을 부치기 시작했습니다. 기름을 올리고 쪽파를 나란히 깔고 반죽물을 붓자, 지글지글. 고소한 냄새와 소리가 그야말로 잔치 같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굴을 툭 툭 툭. 남편에게 들었던 레시피 그대로 어머님은 굴쪽파전을 부쳐주었습니다.


“우리집에선 겨울만 되면 굴 한 보따리 시켜다가 이렇게 부쳐 먹고는 했지. 그런데 레시피를 다 기억하고 있다니 신기하다야. 할매가 반죽물 얇게 진짜 잘 부쳤지. ‘요고 맛있다. 하나만 먹어봐라.’ 하고선 굴에 쪽파 돌돌 감아서는 너 따라다녔지. 근데 너 되게 웃긴다. 어릴 때는 굴쪽파전 해주면 맛없어, 맛없어 하면서 겨우겨우 먹더니. 이제는 겨울 되면 그게 막 생각나니? 어른 다 됐네.”


마흔이 넘은 아들을 보고도 어른 다 됐다며 기특해하는 어머님의 모습이 어쩐지 낯설지 않았습니다. “딸, 애기야, 밥 먹었나.” 매일 묻는 우리 엄마가 생각났거든요. 저도 두 아이가 쑥쑥 자라 서른 되고 마흔이 되어도, 아마 엄마들처럼 애기라고 생각할 테지요.


아무튼, 쪽파 돌돌 감아 초간장에 폭 찍어먹는 굴쪽파전, 저도 먹어보았는데요. 어찌나 고소하고 감칠맛이 돌던지요. 아삭아삭한 쪽파가 물컹한 굴의 식감을 도로로 감싸 안아주면서 바삭한 밀가루 부침과 버무려지는데, 감동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몰카당한 굴의 식감이 별로인지 밀가루 부침만 옆에서 주워 먹었지만요. 온가족이 마지막 굴쪽파전까지 야무지게 부쳐 배불리 먹었습니다.


아마도 이제 저는 겨울마다 굴쪽파전 만들어 먹을 것 같아요. 남편의 할머니 때부터 해 먹던 음식을, 저도 아이들도 함께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상하지요. 기분이 좀 묘해요.


그러니까 생각해보면요. 마지막 만찬으로 먹고 싶은 음식.

그건 아마도 마지막으로 기억하고픈 사랑의 풍경,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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