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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Jun 18. 2021

친애하는 나의 아드린느 씨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를 연주하는 당신에게

나에겐 작은 비밀이 있다. 오후 2시경이 되면 어김없이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가 들려온다. 우리 집 가까이 사는 누군가가 피아노를 연주한다. 그는 매우 끈기 있고 성실한 연주자임에 틀림없다. 날마다 음계를 틀리고 더듬거리면서도 끝까지 연주를 해내므로. 나는 오후마다 그가 연주하는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를 들었다. 그게 올해로 6년이나 되었다.


6년 전 겨울, 이사 온 집을 정리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노래가 들려왔다. 물결처럼 잔잔한 도입부가 나를 어린 시절 피아노 학원으로 데려다 주었다. 어딘지 모르게 애틋하고 아름다운 멜로디, ‘아드린느’라는 이름과 한 사람을 위한 ‘발라드’라는 제목이 주는 서정적인 정서 때문일까. 나는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가 울릴 때마다 러브레터를 엿보는 사람처럼 두근거렸다.


장애를 가진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바치는 노래라더라, 어느 아버지가 사랑하는 딸을 위해 만든 노래라더라, 떠도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몰라도 이 노래에는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집 가까이에서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가 들려왔다. 늘 같은 시간에 꼭 그 노래만을 연주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연주를 듣는 일이 어쩐지 소중해져, 나는 6년 동안 조용한 관객으로 지냈다. 나의 한낮을 특별하게 만들어준 작은 비밀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우리 층에 가까운 숫자를 누르는 이웃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조용하지만 예의 바르게 목례를 건네며 열림 버튼을 눌러주던 남자일까. “오래 걸어 다녔어. 광합성을 많이 해서 식물이 된 기분이야”라고 통화하던 여자일까. 낡은 자전거를 끌고 다니며 아기 엄마가 먼저 타기를 양보하던 뚝뚝한 할머니일까. 어디를 보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아이들을 마주칠 때면 미소를 머금던 할아버지일까.


한눈에 피아노와 어울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웃들을 살피며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를 생각했다. 단 하나의 노래를 매일 같은 시간에 연주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 걸까.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사람이, 모르는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언제부턴가 나는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를 연주하는 이웃을 ‘아드린느’라고 불렀다. 발라드는 먼 옛날 음유시인들이 노래하던 시에서 유래되었다지. 유려하진 않지만 서툴러도 꾸준하게 사랑의 노래를 연주해 온 아드린느에게. 오랜 시간 그의 연주를 감상했던 조용한 관객이, 발라드 같은 글을 써 보낸다. 친애하는 아드린느 씨, 서정과 낭만과 마음이 깃든 당신의 연주가 나에겐 매일의 시였습니다.




6월 18일자 동아일보 [관계의 재발견] 칼럼을 썼습니다. 어째선지 이번 글은 쓰면서 조금 울었습니다. 퇴고할 때쯤 들리던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 때문이었을까요. 저에겐 영화같은 나날들이었습니다. 예술의 아름다움을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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