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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Aug 24. 2021

내가 가장 예뻤을 때

퉁명스럽고 멍청하고 나쁘고 우울하고 이상했던, 그때의 나에게

구름색 점토를 주물럭거린 것 같은 하늘이었다. 미세먼지 농도 나쁨. 채도가 낮은 풍경은 한 톤 차분했고 공기에선 먼지 냄새가 났다. 아무도 없는 거리를 걸었다. 익숙한 동네, 늘 다니던 길인데도 그날따라 낯설게 느껴졌다. 이상했다.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길고양이 한 마리가 느릿느릿 내 곁을 지나갔다. 나도 길고양이처럼 걸었다. 오래된 주택이 모여 있는 골목길을 느릿느릿. 가만히 걷다 보니 낯설다 싶다가도 익숙한 기척이 느껴졌다. 불현듯 데자뷔를 깨달아버린 사람처럼 나는 알아차렸다. 아. 여기는 일본 거리구나.


스물셋의 나. ‘일본 거리’를 걷고 있었다. 일본 거리는 일본이 아니라 중국 다롄에 있었다. 10개월 동안 유학했던 항구도시 다롄은 오랫동안 러시아와 일본의 조차지였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었다. 훗날에도 이국적인 건축물과 조경이 남아 독특한 풍경을 품고 있었다. 러시아인들이 살던 지역이 마트료시카가 진열된 관광지로 되살아난 ‘러시아 거리’와는 달리, 고위 관리직 일본인들이 머물다가 패망 후에 빠져나간 일본 거리는 그대로 죽어버렸다.


죽어버린 거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일본어 간판이나 일본어 노래도, 호객하는 상점도, 생활하는 사람도 없었다. 담장 밖을 넘지 않는 나무들과 가지런한 보도블록, 그리고 오래되고 단정한 주택들뿐이었다. 부유한 일본인이 머물던 주택들은 서구적이었고 깨끗하고 예뻤다. 아마도 이 거리의 이름을 모른다면 스위스 거리나 프랑스 거리, 혹은 벨기에 거리라고 불러도 믿을 터였다. 이름은 일본 거리였지만, 그곳은 일본이 아니었고, 나는 일본이 아닌 곳에서 일본 거리 같지 않은 일본 거리를 걷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나는 일본 거리를 좋아했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어서, 거기는 아무것도 아니어서 좋았다.


가까이에는 ‘얼통 공원’이라는 자그마한 호수 공원이 있었다. 다롄 기상대 언덕길을 내려와 일본 거리를 가로질러 얼통 공원에 이르는 산책을 자주 했다. 홀로 걷는 시간이 좋았다. 이국에서 또 다른 이국적인 거리를 걷는 동안, 겹쳐진 나라들의 어느 말 하나도 알아들을 줄 모르는, 멀고 먼 이방인의 기분이 좋았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는 완전히 혼자였다.


자신의 가난과 불행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완벽하게 숨어 버린다. 모든 시도와 관계,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실은 도피에 가까운 유학이었다. 수능을 완전히 망쳐버렸지만 재수를 할 형편은 되지 않았다. 중국어를 배워두면 취업에 유리할 거라는 떠밀림에 중국어에 성조가 있는지도 모른 채 중국어과에 진학했다. 월화수목금토일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시원을 전전했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버느라 여행은 떠나본 적 없었다. 밥 먹고 술 마실 돈이 없어서 바쁜 척 친구들을 피했다. 먹고 자고 노는 일은 모두 사치처럼 느껴져서 연애를 할 때에도 죄책감을 느꼈다. 나는 모든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며 절박하게 살았는데도. 그런데도, 언제나 돈은 없었고 미래는 막막했다.


방문을 붙잡고도 한 발짝도 나설 수 없었던 내가, 걸려온 전화를 보면서도 통화 버튼을 누를 수 없었던 내가, 한낮에도 커튼을 치고 끝없는 잠에 빠져들었던 내가, 고장 난 거라는 걸 알지 못했다. 아니, 알았지만 어떻게든 살아가야 했기에 모른 척했다. 건강하지 않은 방식으로 서서히 나를 파괴하며, 나를 잠식한 불안과 우울을 멍청히 바라보던 스물셋. 줄줄 울면서 “나 너무 아파.” 소리 내어 깨달은 어느 밤에 나는 무작정 휴학을 결심했다. 모은 돈을 탈탈 털어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도시로 떠났다.


나는 나를 데리고 떠나왔다. 옷도 책도 거의 없이 트렁크 하나에 나를 꾸깃 담아왔다. 도착한 곳에다 트렁크를 열자 내가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아무도 나를 모르니까 숨을 필요가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다시 태어난 사람처럼 살았다. 무리 지어 소문내길 좋아하는 여자애들에겐 퉁명스럽게 젠체했다. 나를 좋아하는 남자에겐 쌀쌀맞고 못되게 대했고, 내가 좋아했던 남자에겐 멍청하고 불쌍하게 굴었다. 말이 잘 안 통하는 외국인들에겐 귀엽고 웃긴 애가, 그나마 마음을 털어놓는 친구 서넛에겐 진지하고 우울한 애가 되었다. 사람에게 자주 반했고 또 자주 지겨워했다. 짝사랑도 하고 데이트도 했다. 다른 언어를 쓰는 남자애와 마주 앉아 눈을 빤히 쳐다보는 순간이 좋았다. 그러다가도 명랑하게 헤어졌다. 그 애들은 나를 어떤 애라고 생각했을까.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배역을 맡게 된 배우처럼, 나는 모두에게 다 다른 사람이 되었다.

 

(c) Dy Duyen


그곳에서 나는 책도 읽지 않고 영화도 보지 않았다. 글도 쓰지 않고 연락도 하지 않았다. 나만 아는 장소와 나만 아는 사람과만 관계 맺으며 간결하게 지냈다. 수업 시간에는 낯선 나라 친구들과 낯선 언어로 대화했다. 중국어와 일본어, 불어와 러시아어, 독일어와 몽골어로 안녕, 반가워, 좋아해, 예쁘네, 고마워, 웃기잖아, 바보야, 잘 가. 이런 말들을 배워서 더듬더듬 말해보다가 헤어지는 일이 즐거웠다. 혼자인 시간에는 밖으로 나가 오래 걸었다. 일본 거리를 지나 얼통 공원 호수 언저리를 몇 바퀴나 돌 때까지. 해가 저물어 풀과 나무와 물속에 깜깜한 밤이 내릴 때까지. 활짝 펼쳐본 열 손가락이 어둠에 물들어 투명하게 느껴질 때까지. 나는 나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다.


나의 가난, 나의 불행, 나의 우울, 나의 마음. 그럼에도 꿈꾸는 나의 희망 같은 것. 희망을 생각하자 밤도 미래도 깜깜하지 않았다. 어느새 내가 희망과 가까워졌다는 걸 알아챘다. 어디에도 숨지 않고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는, 나의 삶을 살고 있다는 실감. 사는 게 버겁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이 모든 것이 내가 떠났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까 이 떠남은 여행도 유학도 도피도 아니었다. 나의 걸음으로 떠나온, 첫 번째 시도였다. 관계와 책임에서 벗어나자 비로소 생생한 감정을 가진 나라는 사람이 드러났다. 나는 변한 것이 아니었다. 모두 내가 가지고 있던 진짜 모습들이었다.


나는 내가 좋아졌다. 투명했으므로. 세상이란 배경에 물로 그린 그림처럼 투명하고 깨끗한 나를, 나만은 알아볼 수 있었다. 퉁명스럽다고 못된 걸까. 멍청하다고 나쁜 걸까. 나쁘다고 옳지 않은 걸까. 우울하다고 이상한 걸까. 이상하다고 엉망인 걸까. 퉁명스럽고 멍청하고 나쁘고 우울하고 이상한 나. 그런데도 숨지 않고 밖으로 나와, 걷고 사귀고 사랑하는 나라는 사람이 예뻤다.


흐린 구름색 하늘과 채도 낮은 풍경이 먹먹하고도 차분했던 도시. 초봄이면 매연과 꽃가루 때문에 희부옇던 다롄의 공기. 바다를 품고 있어 멀리서도 느껴지던 미미한 바다의 기운. 오래 빼앗겼던 시간에 스며 있던 슬픔의 정서. 조용하고 단정한 주택들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던 거리. 죽은 집 같아 보이는데 어쩜 이리도 깨끗할까 바라보던 하얀 벽. 마음에 두고 날마다 올려다보던 커다란 버드나무. 연인들이 서로를 안고 더듬던 비밀스런 밤의 호숫가. 그 풍경들을 홀로 걷던 스물셋의 나. 일본에는 가본 적도 없으면서 일본 거리를 걸으며 일본 시인의 시를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아주 불행했고 나는 아주 바보였고 나는 무척 쓸쓸했다.” 끝내는 내 마음대로 덧붙이는 것이었다. 나는 가장 솔직했다.


유학에서 돌아온 나는 다시 이전에 생활로 돌아갔다. 중국어는 늘지 않았고, 자격증도 따지 못했다. 여전히 돈도 시간도 미래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나’라는 주어를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등을 펴고 상대의 눈을 응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유학생활이 어땠냐고 묻는 이들에게는 이렇게 대답했다.


“没事. 메이 쓰.” 


아무 일도 없었어. 아무 일도 하지 않았어. 아무도 없던 시간, 아무도 모를 시간을 보냈지. 나는 아무도 아니었고, 나는 그저 나였어. 그래서 没事. ‘일이 없다’고, ‘무사하다’고. “괜찮아요.”라는 의미의 기초 중국어로 대답했다.


이제는 떠나온 거리를 걷는다. 그곳과 겹쳐 보이는 풍경과 먼지 섞인 바람을 쐬며, 잠시라도 그때를 붙잡으려는 사람처럼 조심히 걷는다. 어느새 시간도 길고양이처럼 지나가 버렸다. 느릿느릿, 그러다 무심하게도 훌쩍.


보고 싶다. 까맣게 잊어버리고 지내다가도, 어느 날 문득 선명히 떠오르는 거리가 있다. 아니, 보고 싶어서 생각하는 얼굴이 있다. 물방울처럼 투명하게 혼자인, 스물셋의 내가 거기에 톡 떨어져 있다.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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