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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Aug 28. 2015

어두운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으니까

어떤 모임에서 나는 스물다섯 살 청년을 만났다. 그를 소개해준 지인이 미리 일러두었다. 내가 영상 분야에서 일한 경험이 있으니 조언을 해주면 좋겠다고. 그리고 그는 조금 남다른 면이 있으니 이해해달라고 덧붙였다.


정말로 청년은 조금 남다른 면이 있었다. “저는 영화 연출  공부하고 있습니다.”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 있던 그는, 사람 눈을 잘 마주치지 못했다. 아래로 향한 눈은 쉴 새 없이 사방으로 움직였다. 무표정한 얼굴에 꾹 다문 입술이 고집스러워 보였고, 어딘가 괴팍하단 느낌마저 풍겼다. 문어체로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는 모습은 마치 외운 대사를 그대로 내뱉는 연극배우 같았다.


우리는 한 시간쯤 대화를 나눴는데 대화라기엔 민망할 정도로 이야기가 뚝뚝 끊겼다. 그때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확실히 청년은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었지만 이상한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상대를 지나치게 조심스러워한 나머지 잔뜩 긴장한 채로 힘겹게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는 어떻게든 대화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고 있었다. 내가 글 쓰는 일에 관해 말했을 때였다. 청년이 불쑥 자기 얘기를 꺼냈다.


“저도 영화 시나리오를 써봤습니다. 그런데 글이 많이 어둡습니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되나요?”

“사람들은 어두운 걸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한번 읽어보고 싶은데요.”

“정말입니까?”


어두운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그렇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봤다. 표현 못할 복잡한 감정이 실린 눈빛이었다. 지금껏 아무도 이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해준 적이 없었구나.


청년을 보면서 20대 초반의 나를 떠올렸다. 제대로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내가 불행하고 우울하다고 생각했던 시기. 그땐 나도 어두운 글만 엄청나게 썼었다. 말도 생각도 행동도 어두웠다. 세상은 그저 깜깜하다고만 생각했으니까.


그런 내가 바뀐 계기는 정말 우연히 찾아왔다. 어느 날, 글을 올리던 블로그로 모르는 사람이 쪽지를 보내왔다. 자살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사람이었다.


“혼자 죽는 게 힘들면 우리 같이 죽어요.”


엄청난 충격이었다. 자살 사이트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죽음을 꿈꾸는 사람이 내게 말을 걸었다는 것. 정말로 큰 충격은 내가 마치 죽음을 꿈꾸는 사람처럼 보였다는 것이었다. 그제야 나는 내 안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어두운 글을 쓰고, 어두운 생각을 하고, 스스로 어둡다고 여기면서도 죽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나는 살고 싶었다. 하루하루 힘겨워도 어떻게든 살고 싶었다. 살아가야 할 실낱같은 희망을, 어둠을 밝혀줄 한 줄기 빛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나를 찾아온 건 빛나는 사람이 아니라 죽음을 꿈꾸는 사람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아. 내가 너무 깜깜한 나머지 방향을 잃었구나. 더는 어둠 속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겠구나. 그래서인지 나는 청년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스스로 자신이 어둡다고 인정하는 그가 찾는 것은, 어쨌든 빛이었을 것이다.


“시나리오 읽어보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 메일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정말 그래도 됩니까?”

“그럼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는 이메일 주소를 교환했다. 그는 누군가 자신의 작품에 관심을 두고 읽어준다는 사실만으로 들뜬 표정이었다. 반듯한 손 글씨가 적힌 노란 포스트잇을 바라보았다. 청년의 이름과 이메일 주소가 적혀 있었다. 미래의 명함 같았다. 누군가 그의 어둠을 알아봐 준 계기로, 그가 깊은 철학을 가진 영화감독이 된다면 정말로 좋겠다.


어두운 게 나쁜 건 아니다. 우리가 부정적이라고 느끼는 우울함, 죽고 싶다는 마음 같은 것들은 유독 이상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살아가는 누구나 한 번쯤은 어둠에 홀리고, 죽음을 떠올리기도 한다. 어둠은 해가 지면 찾아오는 짙은 밤처럼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 우리는 언제라도 어둠 속에 머무를 수 있고, 원한다면 그곳에서 내내 깊은 잠을 잘 수도 있다.

 

예전의 나처럼, 그리고 청년처럼. 어둠 속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괜찮다고. 다만 잠시만 그곳에 머무르라고. 어둠 속을 걷다 보면 어딘가에서 당신을 이끌어줄 빛을 만날 거라고.


어둠 속이 너무 희미해 잘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 달빛에도 걸을 수 있으니까. 



고수리 에세이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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