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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Nov 05. 2015

히키코모리의 아침

애써 스스로 사라지려고 하지 마

우울한 청춘의 어느 날, 나는 히키코모리가 되기로 결심했다. 선명한 이유는 없었다. 내게 엄청난 사건이 생겼다거나 대단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감기에 걸린 것처럼 우울한 날들이 지속되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지긋지긋한 세상과 일상, 사람들과 멀어져 오로지 혼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듯, 그때 나도 그랬다. 내 젊은 날이 우울했고 인간관계가 어려웠다. 사회생활이 힘들었고 생계가 버거웠다. 불안과 고민은 미래를 짓눌렀고 돈과 경쟁에 완전히 지쳐버렸다.


그렇다고 심각하게 죽고 싶어 엉엉, 우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살고 싶었다. 간절하게 살고 싶었지만, 막상 방문 밖으로 걸어 나가 살아낼 자신이 없었다. 문고리를 잡고도 차마 방문을 열고 나갈 수 없던 하루, 나는 히키코모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혼자 사는 히키코모리 되기. 기간은 한 달쯤. 


작은 월세방에 살고 있었던 나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들을 정리했다. 아무래도 한 달을 틀어박혀 살려면, 미리 사두어야 할 것들이 많았다. 필요한 식량과 생필품 목록을 만들고, 계산서를 주욱 뽑자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나는 좌절했다. 혼자 사는 히키코모리, 그러니까 누군가 챙겨줄 이 없는 히키코모리는 힘든 일이었다. 홀로 생존의 문제에 맞닥뜨려야 했으니까.


일단 나는 돼지였다. 적어도 하루 두 끼는 해결해야 하는데, 새 모이만큼 적게 먹겠다고 해도 냉장고에 채워야 할 식량은 꽤 많았다. 생필품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나는 쓰레기였다. 모든 사물의 포장과 폐기물, 그리고 매 끼니를 먹고 난 후 쌓일 쓰레기들, 도무지 처리 불능인 음식물 쓰레기들, 쓰레기를 가득 채운 순간 역시나 커다란 쓰레기가 될 쓰레기봉투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내 방은 악취 나는 쓰레기장이 될 게 뻔했다.


식량과 생필품, 쓰레기보다 더 중요한 게 생수였다. 물이 없으면 살 수가 없는데. 한 달 동안 마실 생수는 몇 통이나 필요할까? 식량과 생필품, 생수들을 산다고 치자. 그 비용은 어떻게 감당할 것이며 그것들은 또 어떻게 집으로 가져올 것인가? 그리고 청소는? 빨래는? 공과금은? 집세는? 생각지도 못한 변수들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럼 현실적인 문제는 잠시 패스. 먹고 자는 건 둘째 치고 깨어 있는 동안 방에서 할 일들을 생각해봤다. 그때 나에겐 스마트폰도 없었고, 컴퓨터도, 인터넷도 없었다. 좁은 방에 최대한 짐을 줄여 살아야 했기 때문에 소장 책도 없었다. 손바닥만 한 방에서 세상과 통할 수 있는 매체라곤 폴더 폰과 라디오뿐. 절망적이었다. 기다란 더듬이를 세운 낡은 라디오가 지직거리며 노래를 토해내고 있었다. 내 방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래 봤자. 내가 온종일 틀어박혀 있어 봤자. 나를 찾을 사람은 방세를 독촉할 집주인밖에 없었다. 쓰레기가 뒹굴고 악취가 풍기고 집주인의 성난 초인종이 울려 퍼질 작은 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낡은 라디오를 듣는 일뿐이었다.


그만. 하던 일을 던져두고 침대 위에 쪼그려 누웠다. 외로운 내 모습을 상상해봤다. 세상의 종말에서 홀로 살아남은 최후의 히키코모리. 그럼 나는 지금보다 괜찮을까. 그렇게 터무니없는 상상에 잠겨 있다가 잠이 들었다.


사실 나는 두려웠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까 봐. 모두가 나를 잊어버릴까 봐. 아주 많이 두려웠다. 스스로를 가둔다면 외롭지 않으리라는 건 내 환상일 뿐이었다.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내게는 사라질 용기, 잊혀질 용기가 없었다. 나는 히키코모리가 될 자격조차 없었다.


양유연 <어느 날>


얼마나 오래 잤을까. 잠에서 깼을 때 창밖은 어스름했다. 저녁인지 새벽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침대 위에 작은 창문을 열었다. 겨울바람이 쾌쾌한 방 안을 헤집는 동안, 나는 이불을 두른 채 가늘게 몸을 떨었다.

 

밖에는 새날이 오고 있었다. 그리고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얀 눈이, 어쩜 소리도 없이 내리고 있었다. 발자국조차 없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깨끗한 눈이 조용히 쌓이고 있었다. 창밖으로 손을 뻗어 그림 같은 눈송이를 잡아보았다. 눈송이는 금세 거품처럼 녹아 사라졌다. 


가만히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고요한 새벽. 내리는 눈은 흔들림 없이 침착하고 조용했다. 나는 추운 줄도 모르고 오래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윽고 아침, 나는 운동화를 신었다. 운동화 끈을 고쳐 매는 사이, 발바닥에 온기가 돌았다. 걸어 잠갔던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한 발, 한 발. 쌓인 눈을 밟고 걸었다. 뒤를 돌아보니 바닥에 내 발자국만 찍혀 있었다. 발자국은 다시 소리 없이 덮이고 깨끗이 사라졌다. 내 머리에도 어깨에도 발등에도, 그리고 속눈썹에도 눈이 내렸다. 눈은 살갗에 닿자마자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렸다. 완벽한 깨끗함이었다. 뭉클했다.


애써 스스로 사라지려고 하지 마. 

나는 지금도 사라지는 중이야.



고수리 에세이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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