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 그런 제목의 노래가 있다. 경쾌하고 몽환적인 멜로디 끝에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 하고 속삭이는 가사가 노래의 전부다. 나에게는 이 노래가 조금 특별하게 느껴지는데, 오랫동안 카메라 뷰파인더를 응시하며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지나간 내 꿈에 카메라를 가져간다면, 찍어오고 싶은 꿈의 장면이 있다.
막연히 작가가 되고 싶어서, 그간 쌓아온 경력을 그만두고 방송작가가 되었다. 스무 살부터 내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대학 언론 피디로 일했고, 신문사와 광고회사에서 피디 경력을 쌓아 왔던 사람이 갑자기 경력과 봉급을 모두 포기하고 방송작가로 전향한 것이다. 계획된 미래는 아니었다. 정말 간절한 꿈은 너무 멀고 대단해 보여서 쉽게 말하지 못하듯이 조용히 품어온 나의 오랜 꿈은 작가였다. 그래도 할 줄 아는 일이 방송일이니 방송작가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우연히 <인간극장>에서 취재작가로 일을 시작했다. 겪어보니 방송작가는 글을 쓰는 작가는 아니었다. 아이템을 찾고 사람을 취재하고 장면을 구성하고 이야기 전달을 돕는 내레이션을 쓰는 작가, 그러니까 한마디로 사람의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였다. 취재작가로 일하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런데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만났다. 매일 전화를 걸어 대화를 나눴다. 나를 소개하고 안부를 묻고 일상을 나누고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매일 카메라로 찍어온 영상으로 사람을 보았다. 일어나 출근하고 일하고 대화하 고 움직이는 사람들의 사는 현장을 대본으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전화기에 의지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카메라를 통해 누군가의 일상을 지켜본다는 건, 뭐랄까. 순전하게 그 사람을 믿어주는 일이었다. 한 사람을 찍는 카메라는 그 사람의 편이라서 그 사람의 얼굴과 말, 표정과 몸짓 모두 애정을 담아 바라보게 했다. 나는 만나본 적 없이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나 취재 일을 하면서 깨달았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없다는 걸. 타인의 마음을 가늠하는 일, 타인의 이야기를 발견하는 일이 너무 어려웠다. 확신했던 사람에게 허울뿐인 위선적인 면을 발견하거나, 알수록 무례하고 오만한 사람을 마주할 때면 어김없이 실망하고 자책했다. 그건 사회생활과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이 제일 어려웠다. 어째서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없까. 다큐 경력이 오랜 선배 피디에게 물었다.
“저는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것 같아요. 어쩌죠?”
“지금 너는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게 맞아. 너만 보고 있으니까.”
그는 말했다.
“그런데 그래야만 해. 그때는 나를 먼저 제대로 봐야 해. 돌아보면 나도 20대에는 치열하게 나에 관해 생각하느라 주위를 살펴볼 여력이 없었어. 나만 보고 있으니까, 누구를 만나도 자꾸 실패하는 거야. 그러다 서른, 마흔이 되고 나니 한 걸음 물러서서 다른 사람이 보이기 시작하더라. 관계도 일도 마찬가지야. 그래도 걱정할 것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나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파악하고 나면 다른 것들이 선명하게 보여. 여러 번 실패해봐야 진짜가 보여. 너무 서두르지 마.”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서른 중반이 된 지금에야 이 말의 의미를 선명히 알 것 같다. 비단 사람 보는 눈뿐일까. 사랑 보는 눈, 꿈 보는 눈, 삶 보는 눈 모두가 그렇다는 걸. 나를 먼저 제대로 마주 본 후에야 다른 것들이 보인다.
<인간극장>에서는 5부작 다큐 미니시리즈를 만들기 위해 한 사람의 일상을 6,000분 동안 찍었다. 취재작가는 취재원과 아이템을 관리하며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서너 달까지 사전 취재를 했다. 출연자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끌어내기 위해서 피디와 촬영감독은 20여 일 동안 출연자와 함께 지내며 영상을 찍었고, 메인작가와 취재작가는 6,000분의 영상을 확인하고 프리뷰하며 일상의 기록에서 씬들을 찾아 구성했다. 전문 방송인이 아닌 보통 사람의 감정과 삶을 다루는 일은 언제나 조심스럽고 진지했다. 자칫 작은 실수로 한 사람에 대한 이해가 오해로 변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취재작가로 1년 반을 일했다. 입봉을 앞두고 마지막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막판 편집 기간 일주일은 사무실이 도서관처럼 고요했다. 담당피디와 메인작가는 편집실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방대한 영상기록을 뒤져가며 한 컷 한 컷 붙였다 잘랐다, 하루가 지나도 어제 그 자리 그 자세, 핼쑥한 얼굴로 커피 한잔만, 부탁하는 모습이 며칠을 갔다. 편집 마지막 날, 담당피디와 메인작가가 편집실로 나를 불렀다.
어두운 편집실에는 엄청난 피로와 긴장이 감돌았다. 나도 일주일 동안 쪽잠을 잔 터라 너무 졸렸다. 깜빡하면 잠들어버릴 것 같아서 그냥 서 있겠다고 말했다. 편집기에 눈을 고정한 피디의 담배 한 개비가 피우지도 않은 채 타들어 갔다. 나란히 편집기 모니터를 바라보는 메인작가의 커피도 그대로 식어갔다. 그리고 컷. 어때? 그럼 이 의도를 살릴 수가 없어. 다시. 오케이. 이런 대화들이 오갔다. 숨죽여 보고만 있는데도 입술이 바짝 말랐다. 나는 벽처럼 가만히 서서 선배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여기가 가장 중요한 장면이야. 고 작가, 어떻게 붙일까?”
갑자기 두 사람이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나는 갑작스러운 주목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제가요? 응. 네가 하자는 대로 할게.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평생 수의를 짓던 팔순의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는 몹시 아끼던 아들을 제 손으로 지은 수의를 입혀서 먼저 떠나보냈다. 그 죽음이 가슴에 맺혀서, 한 번도 아들의 묘에 찾아가지 않았다. 피디와 촬영감독이 묘소를 찾아 주변을 정리하고 예를 드리고 돌아온 날, 어머니는 겉절이를 담그고 있었다. 아들뻘인 피디와 촬영감독에게 먹어보라며 겉절이를 내밀었다. 한 번도 살가운 적 없었던 무뚝뚝한 출연자였다. 피디와 촬영감독은 얼떨떨하게 어머니가 내민 겉절이를 받아먹었다. 흔들렸지만 카메라는 그 장면을 찍었다. 슬픔과 고마움이 묘하게 뒤섞인 얼굴과 몸짓으로, 어머니가 마음을 여는 장면이었다.
“잘은 모르지만요. 저는 이 장면은 좀 더 지켜보다가 줌 되기 전에 컷했으면 좋겠어요. 카메라는 떨리지만 그냥 담담하게 보여주면 어떨까요.”
그래 볼까. 피디가 내 말대로 영상을 붙이고 잘랐다. 편집된 영상을 재생했다. 겨우 몇 초의 순간이 길게 느껴졌다. 메인작가가 말했다.
“잘했어. 가장 좋은 순간에는 그저 지켜보는 게 좋아. 감정이 드러나는 얼굴을 쉽게 클로즈업하지는 말자. 카메라는 찍히는 사람의 편이 되어야 해. 표정 말고도 많은 것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어. 그걸 볼 줄 알아야 해.”
편집기로 다시 시선을 돌린 메인작가는 이어서 툭 던져주듯 칭찬했다. “고 작가, 너 보는 눈이 생겼구나. 이제 작품 해도 되겠다.” 피디도 마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고생했다.”
고맙습니다. 나는 조그맣게 대답하고 다시 벽에 기댔다. 온몸이 저릿했다. 어두운 편집실에 모니터가 희게 빛났다. 안에는 우리가 사랑한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고, 밖에는 오해 말고 이해를 담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다. 꿈에 카메라를 가져간다면, 나는 그때의 우리를 찍어두고 싶다. 나의 표정은 아무리 어두워도, 클로즈업하지 않아도, 고스란히 드러났을 것이다. 뒷모습만 보이던 두 사람의 감정도 담담히 느껴졌을 테고, 우리 셋 사이에 오가던 속 깊은 이야기가 전해졌을 것이다.
내 꿈에 카메라를 가져가 보니 알 것 같다. 내가 본 꿈은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다. 극적인 요소는 없을지라도 흘러가는 거 살아가는 거 자연스럽게 따라가며 한 사람을 알아간다. 내가 겪은 일들은 어쩌면 다 우연이었을 텐데, 뒤를 돌아보면 모두 나를 위해 만들어졌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카메라로 세상과 사람을 찍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오래전부터 나 자신을 찍고 있었다. 나를 보고 나를 듣고 나를 만나며 길고 지루한 나날들을 담았고, 내 삶의 순간순간들을 구성하고 편집하며 살아왔다. 이제 는 카메라 뷰파인더 대신 눈으로 본다. 나는 전보다 눈이 좋아졌으므로. 사람 보는 눈, 사랑 보는 눈, 꿈 보는 눈, 삶 보는 눈. 제법 선명하고 너그러워져서 내가 보고 싶고 담고 싶고 믿고 싶은 것들을 글로 쓴다. 잘 보고 잘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쓴다.
멀고도 가까운 꿈. 겪어보니 꿈이라는 건 간결한 한 줄 정의가 아니고, 달성해야 하는 목적도 아니며, 끝나고 마는 엔딩도 아니었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꿈은 이루는 일이 아니라 이어가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소중하게 간직하는 꿈의 장면도 찬란하거나 극적이지 않다. “우리는 빛을 만드는 사람들이니까. 빛을 보려면 어둠 속으로 들어가야지. ”라던 어느 소설의 문장처럼 언제나 빛나는 뒤편에 있다. 어두운 편집실에서 다큐를 만들던 우리처럼, 어두운 밤 스탠드 아래 홀로 글 쓰던 나처럼.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어둠 속에서 묵묵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 글은 고수리 에세이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에 수록된 글입니다. 올해로 작가 생활 10년 차가 되었습니다. 어느덧 저의 긴 꿈을 돌아보는 글을 쓸 수 있는 시기가 되었네요. 극적이지 않을지라도 제 꿈은 계속해서 이어질 테고요. 어둠 속에서 만드는 빛을 누군가는 오래도록 읽어주었으면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