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조용히 눈이 내리던 그날을 생각한다. 엄마 혼자 걷던 하얀 눈길을, 하얀 눈물을, 하얀 공기를, 하얀 세상을, 그리고 그날, 엄마의 얼굴을.
아버지와 헤어지고 우리 가족에겐 가난과 불행이 북풍처럼 들이닥쳤다. 혼자서 남매를 키워야 했던 엄마는, 작은 보습학원을 운영하긴 했지만 집을 마련할 만큼 충분한 돈을 벌 순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떨어져 살았다.
우리 가족에겐 집이 없었다. 대신 방이 있었다. 우린 마치 달팽이 가족처럼, 제 몸만 한 조그만 방을 한 칸씩 짊어진 채 뿔뿔이 흩어져서 살았다. 밤이 되면 나는 자취방으로, 남동생은 기숙사 방으로, 엄마는 학원 구석의 쪽방으로 기어들어가 동그랗게 몸을 웅크렸다. 작고 초라했던 각자의 방은 그나마 몸이라도 피할 수 있기에 감사한 방공호 같았다.
우리 중에서 엄마의 방이 제일 작았다. 저녁 일곱 시가 되면, 엄마는 학원의 모든 불을 끄고 문을 잠그고 나갔다. 그리고 새벽 세 시가 되면, 살금살금 계단을 걸어 올라와 다시 2층 학원 문을 열었다. 깜깜한 벽을 더듬거리며 문고리를 찾다가 싸늘한 방문을 열고 들어가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화장실도 세면대도 없는 차가운 방. 엄마는 찬 바닥에 몸을 눕히고 다리를 뻗었다.
우리가 흩어져 사는 동안 엄마는 낮에는 보습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돈방석’이라는 민속주점에서 막걸리를 팔기 시작했다. 그 작은 동네에서 학원 선생이 밤마다 파전을 부친다는 소문이 퍼질까 봐, 엄마는 밤만 되면 고개를 숙였다. 온몸에 기름 냄새가 눅눅하게 배고, 연기에 눈이 따가워도, 엄마는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도 파전을 부쳤다. 그래서 엄마는 밤마다 울었다. 힘들어서 울고 슬퍼서 울고 불쌍해서 울고 싫어서 울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 엄마는 잊지 못할 새벽을 걸었다.
새벽까지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엄마는 주점 문을 걸어 잠그고 거리로 나왔다. 텅 빈 새벽 거리에 눈 쌓이는 소리만 ‘싸박싸박’ 했다.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길에 총총 발자국을 찍으며 걸어가던 엄마의 머리 위로 조용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싸박싸박. 눈에 눈이 쌓이고, 눈끼리 조그맣게 부딪쳐 움직였다. 싸박, 싸박, 싸박.
쌓이는 눈에 온 세상이 새하얗게 빛났다. 후우. 내쉰 하얀 입김에 눈송이들이 팔랑거리며 춤을 췄다. 엄마는 홀로 눈길을 걸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바닥에선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났다. 앙상한 엄마의 몸무게만큼이나 가벼운 소리. 가로등 하나가 깜박이며 길을 비춰주었다. 하지만 그때조차도 몸에서 스멀스멀 새어 나오던 기름 냄새가 지독했다. 식용유 냄새는 끈질겼다. 머리카락을 아무리 빨아도, 손을 수십 번 씻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숨길 수 없는 가난의 냄새였다.
‘돈방석’. 경박하게 발음되는 허름한 간판을 쳐다보다가 엄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낡은 문짝에 걸린 싸구려 트리 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때였다. 갑자기 엄마의 눈앞이 흐려졌다. 세상이 희부옇게 사라져 눈이 먼 것만 같았다. 엄마는 고개를 떨궜다. 그러자 흰 눈 위에 눈물방울이 뚝, 뚝 떨어졌다. 눈 위에 점점이 깊이 팬 회색 자국이 서러워서, 엄마는 얼마나 울었는지. 흩뿌려진 눈물 자국 위로 뜨거운 김이 폴폴 났다.
‘그래도 살아야지. 새끼들 먹이려면 살아야지. 내가 살아야지.’
엄마는 이 이야기를 어느 날 미용실에서 꺼냈다. 나란히 앉은 우리는 돌돌 감아올린 머리에 헤어 캡을 뒤집어쓴 채였다. 커다란 펌 기계가 머리 위에서 위잉 돌아가고 있었다. 미용 가운 위로 얼굴만 쏙 뺀 엄마가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래도 살아야지. 새끼들 먹이려면 내가 살아야지. 혼자서 어찌나 울었던지. 왜 그렇게 울었을까 나도 몰라. 눈물이 얼마나 뜨거운지 김이 다 폴폴 나더라니. 딸, 정말로 눈은 그렇게 쌓여. 싸박싸박. 눈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니까. 싸박싸박 싸박싸박. 그 소리 들어본 적 있어? 참… 그땐 무슨 정신으로 살았는지 아직도 생각만 하면….”
엄마는 옷소매로 눈물을 꾹 찍어내며 헛헛하게 웃었다. 엄마가 말했던 그날로부터 십여 년이 지나는 동안, 엄마는 민속주점 ‘돈방석’을 처분했다. 학원이 잘 가르친다는 소문이 났는지 꽤 많은 아이들이랑 복작거리면서 산다. 다행히 작지만 따뜻한 집도 마련했다. 그 집에는 화장실도 있고, 세면대도 있고, 베란다도 있고, 방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버리라고 했건만 엄마가 버리지 않은 싸구려 돈방석도 있다. 주점 의자마다 놓여 있던 방석이었다. 엄마는 돈다발이 프린트된 돈방석을 집에 놓아두고는 엉덩이를 팡팡 들썩이며 그 위에 앉아보곤 했다.
미련스럽게 붙어 있는 돈방석처럼 우리 가족에겐 가난도 그렇게 붙어 있었다. 우린 쉴 틈 없이 일했지만, 가난을 버리진 못했다. 몇 번의 불행도 잊지 않고 찾아왔다. 그래도 우리는 견디고 울고 안아주고 등을 쓸어주고 눈물을 닦아주고. 그렇게 어우렁더우렁 살았다.
나는 지금도 종종 엄마가 걸어가던 눈길을 생각한다. 혼자 걷던 그 외로운 거리에서 내리던 눈은 엄마를 위로했다. 싸박, 싸박, 싸박. 눈에 눈이 쌓이고, 눈끼리 조그맣게 부딪쳐 움직이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누구에게나 죽을 것 같은 날들이 있고, 또 누구에게나 위로를 건네주고 싶은 선한 순간들이 있다. 외딴 방에서, 가난한 골목에서, 어느 새벽 눈이 내리는 거리 한가운데에서.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있는 이름 모를 당신에게 나의 온기를 나눠주고 싶다. 바람이 불고 밤이 오고 눈이 내리는 것처럼 자연스런 위로를 건네고 싶다.
그래서 나는 그날의 하얀 눈처럼 담백하고 따뜻한 글을 쓸 것이다. 손가락으로 몇 번을 지웠다가 또 썼다가. 우리가 매일 말하는 익숙한 문장들로 싸박싸박 내리던 그날의 눈처럼, 담담하게 말을 건넬 것이다. 삶처럼 지극히 현실적인,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위로의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