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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Dec 30. 2021

코끝 찡하도록 추운 날에 귤을 선물하는 마음

겨울에 좋아하는 귤의 따뜻함

귤의 계절. 찬바람이 불면 나는 귤을 선물하는 사람이 된다. 어쩌다 골목 어귀에서 마주친 귤트럭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누굴 만나러 가는 길엔 부러 동네 시장을 가로질러 귤을 사들고 간다. 앙상한 겨울 풍경 속에 빼꼼 보이는 말간 겨울 귤일랑 봄꽃송이만큼이나 예쁜 것이다.


귤. 동그란 귤. 발음해 볼수록 입술이 동그래지는 귤. 감싸 쥘수록 손바닥에 동그랗게 안기는 귤. 부드럽고, 말랑하고, 따뜻하다. 시장에서 찬바람을 쐬다가 데려온 귤은 차갑고, 책상에 올려둔 귤은 미지근하지만, 어째선지 나는 귤이 따뜻하다고 느낀다.


내가 생각하는 귤의 따뜻함이란 이런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에, 빈손은 좀 그렇고 상대가 부담스러워 않는 선에서 뭔가 주고 싶은데, 마침 귤트럭을 마주친다. 몇 천 원어치에도 제법 묵직하게 귤을 골라 담고서, 달랑달랑 귤봉지를 흔들며 반가운 사람을 만난다.


“귤이에요.” 불쑥 내민 귀여운 선물에 우리는 웃음을 터트린다. 귤 하나씩 꺼내 조물조물 만지다가, 말랑해진 귤껍질을 까고, 달달한 귤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헤어질 즈음 노래진 손바닥에선 귤냄새가 난다. 손을 흔들며 헤어지는 우리의 시간에도 귤냄새가 배어 있다.


코끝 찡하도록 추웠던 어느 12월에 나는 윤 언니를 만났다. 그때의 나는 사정도 마음도 몹시 추워서, 한겨울에도 발목을 드러낸 얇은 스니커즈를 신고 종종 걸어 다니던 추운 애였다.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이고 캐럴이 흐르는 상가 앞에서 언니는 무작정 나를 안아주었다. 언니가 어찌나 반가운지 두서없는 이야기를 쏟아내느라 나란히 걷는 내내 우리 사이엔 하얀 입김이 폴폴 났다.


언니는 따뜻한 밥을 사주었다. 긴긴 내 이야기를 참견 없이 들어주다가 괜찮다고, 다 괜찮아질 거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겨울이 좋아. 다음엔 봄이 올 거잖아. 수리야, 춥다. 따뜻하게 다녀.” 헤어질 때에도 언니는 나를 오래 안아주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포옹이란 말을 되뇌었다. 사람에게 품이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 일일까. 두 사람이 포개어져 온기를 나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일까. 언니의 말처럼 나는 괜찮아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언니였다.


“이거 가져가. 아까 트럭 지날 때 네가 맛있겠다고 한 게 생각나서.” 뛰어온 언니는 가쁜 숨을 고르며 까만 봉지를 내밀었다. 언니의 동그란 얼굴이 발그레했다. 부드럽고, 말랑하고, 따뜻한 마음. 묵직한 귤봉지를 건네받았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러니까 나는 윤 언니에게 배웠다.

코끝 찡하도록 추운 날에 귤을 선물하는 마음을.



12월 24일자 [관계의 재발견] 칼럼, 독자들에게 보내는 연말 선물입니다. 몸도 마음도 추운 날들이에요. 코끝 찡하도록 추운 날에 귤을 선물하는 사람이 되기를. 안아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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