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과제를 채점하는 일주일은 그렁그렁한 마음으로 걷는다. 131개의 글이 아니라, 131명의 인생이 내게로 온다. 에세이는 1인칭 사실의 문학이고 때문에 나는 131명 생의 맨 얼굴을 마주하는 첫 독자가 된다. 인생은 기쁨보단 아픔이, 희망보단 절망이 가득하다. 너무 많은 슬픔과 죽음이 있다. 보이지 않아 홀로 쓸 수밖에 없는 이야기로부터 가난과 폭력과 편견과 고통을 견뎌온 고백들이 한 글자 한 글자 찌르며 다가온다.
익명의 공간에서 우정을 쌓아온 Z에게 '죽고 싶다'고 편지를 보냈던 A의 이야기를 읽었다. 결국 관계가 끊어지리라 생각했지만 그는 의외의 답장을 받았다. Z는 '인간은 서로 관계를 쌓으면서 서로의 인생과 목숨의 지분을 조금씩 나눠 갖는다고, 내가 갖게 된 네 목숨을 잃고 싶지 않으니 조금만 견뎌 달라.'고 답장했다. A는 살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몇 년 후, 이번엔 Z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다고 말했다. A는 하고픈 말들 고르고 골라 써서 일일특급으로 편지를 보냈다. 답장이 오리란 기대는 없지만 매일 우편함에 손을 넣는다. '우편함에 손을 넣으면, 내 편지로 위로받은 당신의 목숨 한 조각이 들어있지 않을까'하고서.
2년 전 내 수업을 들었던 A의 글이었기에, 그가 '죽고 싶다' 생각했던 고통의 이유를 나는 알고 있었다. 그는 한겨울 뜨거운 붕어빵을 사고도 나눠 먹지 못하고 붕어빵이 다 식어버릴 때까지 품에 안고 찬 거리에 서 있었다. 돌아갈 자리가 없었다. '언젠가 훌훌 떠나 자기답게 혼자서 살아가세요. 그때를 위해 더 많이 읽고 쓰고 나를 돌아보길 바라요. 마음을 보냅니다.'라고 나는 답글을 남겼다.
훌훌, 2년이 흘러 다시 A의 글에 답글을 남긴다. '한 사람을 살리려는 조심스럽고도 간절한 글이 또 한 사람을 울려요. 어느새 당신은 죽고 싶던 인간에서 살리려는 인간이 되었네요. 한 사람에게 기꺼이 인생과 목숨을 나눠주면서도 우리는 살아있어요. 살리려 애쓰며 살아가요.'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지만 A는 나에게 빛나는 사람. '빛은 찌르는 손을 가졌는데 참 따듯하다'던 안미옥 시인의 문장을 선물하고 싶었다. 원치 않게 찌르는 손을 가지고 태어났대도 이 세계를 따듯하게 만져줄 수 있더라고 그를 보며 확신한다. 희망이란 그런 거야. 나는 A와 같은 마음으로 나머지 130명의 이야기를 읽는다. 그렁그렁한 마음을 끌어안고 한낮을 걸으며. 나는 어떻게든 너를 살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