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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Nov 29. 2023

25년 만의 모교 방문

작고 아름다운 모교 도서관에서

엄마와 이모들, 그리고 내가 졸업한 모교에 강연을 다녀왔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자 학교가 한눈에 들어왔다. 운동장을 빙 둘러 별관으로 향했다. 학관과 별관을 잇는 구름다리를 지나가면 음악실과 과학실, 도서관이 있었다.


청소년 소설을 습작할 때, 이상하게도 중학교 곳곳이 떠올라 여길 배경으로 쓰곤 했다. 과학실과 음악실, 구름다리와 운동장 스탠드, 그리고 도서관. 미숙한 웃음 뒤에 숨겨둔 위태로운 비밀 같은 것들. 조금은 우울한 명랑함을 안고 있던 시기였기에 그랬던 걸까. 반장이었기에 심부름과 문단속을 하러 혼자 구름다리를 건너 별관을 드나들 때면 어쩐지 으스스하지만 신비로운 몽상에 잠기곤 했다.


25년 만에 도서관 문을 다시 열고 들어서자 흑백에서 컬러의 세계로 들어서는 기분이 들었다. 작은 도서관이 환하고 따뜻하고 편안했다. 3년 전 발령 오신 두 사서 선생님이 손수 꾸미셨다고 했다. 알고 보니 두 사서 선생님도 이 학교를 졸업한 나의 10년 후배였다.


교사독서동아리 선생님들 대상으로 한 글쓰기 강연. 학급 종례를 마치고 삼삼오오 모인 선생님들과 학교를 지키는 보안관님까지 함께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유년과 습작기를 거쳤는지, 어떻게 시간 내서 읽고 쓰는지, 어떻게 아이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이끌어 낼 수 있는지. 나의 10대 독자들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어떤 책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도. 고등학생 때 학교 도서관에서 내 책을 읽었다가 삶의 태도가 바뀌었다고, 그래서 윤리교사를 꿈꾸고 있는 오랜 독자의 이야기도 해주었다. 강연이 끝나고 도덕 선생님이 오셔서 그랬다. "저는 내년에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는데요, 그 청년이 선생님이 되면 좋겠어요. 분명 좋은 교사가 될 거예요."


강연을 마치고 도서관을 둘러보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몇 겹으로 응축된 시간을 통과해 다시 돌아온 나. 도서관 문을 열고 열다섯 살 고수리가 들어올 것 같았다. 꿈꾸는 것 같았다.


"선배님, 가시죠." 생글생글 웃는 명랑한 후배 선생님과 땅거미 지는 운동장을 걸어 나왔다. 학교 건물들을 둘러보며 곳곳에 담긴 추억들로 수다 떨었다.


"우리 학교 진짜 언덕이잖아요. 저 교문 앞에 서서 복장불량 잡아내고. 저 선도부였었어요."

"무서우셨다, 선배님! 저희 때는 한겨울에 언덕이 꽝꽝 얼어서 밧줄 타고 올라오고 그랬어요."

"에이, 솔직히 그건 뻥이다."

"아니, 진짜예요. 진짜 그랬다니까요."

"저기 학교 밑에 문구사 하나 있었는데. 인기가요 카세트테이프들 팔고요."

"계문사 아직도 있어요, 선배님."

"맞아! 맞아, 이름이 계문사였어요. 25년 전에도 있었는데!"

"아직도 있어요. 학생들 없을 때 저 계문사 가서 사탕 사 먹고 그래요."


언덕길을 내려오자 푸른 어둠에 잠긴 학교가 보였다. 우리는 잠시 학교를 올려다보았다.


신기해요. 신기하죠.

좋네요. 참 좋아요.


시간을 걷다가 언젠가 다시 돌아올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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