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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Sep 12. 2015

토요일의 카세트테이프

Happy birthday to you

때는 바야흐로 2002년 9월, 딱삔으로 똑단발을 바싹 올려 묶은 까맣고 쪼끄마한 여자애는 전라북도 익산에서 엄청난 문화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미륵사지 삼층석탑만 덩그러니 서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익산은, 완전 도시였다. 건물도 높고 차도 많고 도로도 3차선까지 있었다. 학교에 들어서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중, 여중, 남고, 여고가 커다란 캠퍼스 안에 함께 자리 잡고 있었다. 잘 정리된 화단에는 꽃이 만발했고, 학교와 학교 사이를 잇는 운동장에는 깔끔한 스탠드가 매끈하게 뻗어있었다. 마치 대학교 캠퍼스처럼 넓고 크고 세련된 모습이 놀라웠다. 일단 학교 건물 스케일에서부터 압도당한 여자애는 저절로 침을 꿀꺽 삼켰다.  


교무실에 들러 반을 배정받았다. 여자애는 자꾸만 치마 춤을 내렸다. 급히 맞춘 교복은 펑퍼짐하니 영 맵시가 나지 않았고, 발목까지 댕강 올려 신은 흰 양말은 촌스럽기 그지없었다. 가방끈을 부여잡고 종종걸음으로 선생님을 따라가는데, 꽂히는 시선들로 뒤통수가 따끔따끔했다. 1-6반.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웅성거리던 교실이 조용해졌다. 여자애는 부들부들 떨면서 교단 위에 섰다. 그리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 나는 강원도 삼척에서 온 고수리라고 해.”


그렇다. 그 촌빨 날리던 까만 여자애가 바로 나였다. 자기소개를 했을 뿐인데, 갑자기 반 애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마치 내가 엄청난 개그라도 친 것처럼 폭풍 웃음이 우르르 몰려왔다. 왜 그러지? 내가 뭘 잘못했나? 나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재빨리 자리를 찾아 앉았다. 반 애들이 동물원 원숭이를 보듯이 실실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뭐야, 도시애들 무서워.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고 눈물이 찔끔 났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울지 마, 미안해. 말들이 튀어나왔다.


“아니야, 괜찮아.”


나는 애써 웃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애들이 다시 또 박장대소를 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왜 웃는 거지? 도시애들 이상해. 나는 눈물을 꾹 참고 고개를 푹 숙였다.


잠시 후, 담임쌤이 나가고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두발 자유화였던 그곳 들은 무척이나 예뻤다. 긴 생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와 찰랑거렸고, 얼굴도 하얗고, 키도 쑥쑥 컸다. 머리칼에도 얼굴에도 윤기가 좔좔 흘러서 다들 귀티가 났다. 그리고 전라도지만 사투리를 안 썼다. 오히려 아이들 말투가 표준말에 가까워서 깜짝 놀랐다. 게다가 호기심이 왕성했다. 전학생을 둘러싸고  이것저것 캐물었다. 도시애들은 스스럼이 없구나. 굉장히 직설적이야. 그때 아이들 틈에서 키가 우뚝 크고, 되게 센 언니처럼 보이는 여자애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전학생, 너 이따가 나랑 같이 집에 가자.”


부스스한 머리를 휘날리는 여자애는 카리스마가 넘쳤다. 지금으로 치면 영화 <니>의 왕언니 '춘화'와 같은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우리가 동갑이라니. 혹시 이 반 짱이 아닐까. 왜 집에 같이 가자는 거지? 사실 난 많이 쫄았다. 그 여자애가 바로 신기원이었다. 역시나 이름도 되게 카리스마 있었다.  






여기까지가 기원이와 나의 첫 만남의 재구성이다. 사실 난 내가 전학 온 날 울었던 것도 기억하지 못했고, 처음 말을 걸었던 게 기원이가 맞는지도 가물가물하다. 최근에서야 기원이랑 수다를 떨다가 내가 전학 온 날 울었고, 우리가 하굣길을  함께하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고작가, 난 너랑 있었던 추억으로 월화수목금토일, 2주는 이야기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월요일의 가정실, 화요일의 양호실, 수요일의 전학.”


“전학은 또 뭐야?”

“너 전학 왔을 때 생생하게 기억 나. 애들이 너 들어오자마자 예쁘다고 그랬거든. 근데 인사와 동시에 네 입에서 강원도 사투리가 나오니까 다들 놀란 거지. 네 말투에 빵 터졌어.”


“내가 강원도 사투리 썼었어?”

그때 사투리 심했어. 암튼, 애들이 엄청 크게 웃으니까 넌 당황했는지 자리에 더니 울었어.”


“내가 울었다고?”

“응, 너 울었어. 그래서 애들이 엄청 미안해했지. 그때 네가 웃으면서 ‘아니야, 괜찮아.’ 하는데 또 강원도 사투리가 나오는 거야. 그러니 애들은 또 웃음이 터져 버렸지.”


난 왜 하나도 기억이 안 나지? 우리가 집에 같이 갔던 것만 기억나.”

“나도 우리가 친해진 계기는 잘 몰라. 근데 언제부턴가 맨날 같이 있더라고.”


생각해보면 오래된 베프들언제 어디서 어떻게 친해졌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첫 만남도 친해진 계기도 가물가물하지만 희한하게도 우린 여태 친하다. 어쩌면 그냥 태어날 때부터 베프로 태어난 것 같기도 하고. 기원이와 내가 그랬다.


영화 <써니>의 나미와 춘화. 나와 기원이는 함께 있으면 이런 느낌이었다.


기원이는 첫인상과는 완전히 다른 친구였다. 조용하고 소심한 편이었던 나와는 달리, 기원이는 호방하고 끼가 넘치는 친구였다. 사교성도 좋고 의협심도 강했다. 또 어딘가 언니 같은 멋짐과 리더 기질이 있어서 언제나 교실을 휘젓고 다녔다. 내가 구석에서 꼼지락대고 있으면 기원이가 내 손을 잡아끌고 나갔다. 언제나 명랑하게 먼저 다가오는 기원이 덕분에 우리는 고교 시절을 참 재밌게 보냈다.


사실 열일곱 살은 나에게 결코 행복한 시기가 아니었다. 울긋불긋 여드름처럼 민감한 질풍노도의 시기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열일곱 살이 되었을 때, 내 인생에는 여러 가지 불행들이 닥쳐왔다. 그 연쇄적인 불행에 이끌려 나는 생뚱맞게 전라도 익산에 똑 떨어졌고, 무척이나 두렵고 외로웠다. 외딴곳에 나 혼자라는 사실이 아주 무서웠다. 하지만 어린애처럼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나는 어둡고 조용해졌다. 그저 아무도 모르게 냉가슴을 끙끙 앓느라 애어른이 다 되었던 시기가 바로 열일곱 살이었다.


그때, 나의 세한 사정도 모르지만, 그냥 곁에 있어 주었던 친구가 기원이었다. 2학기에 전학 온 내가 마땅히 들어갈 동아리가 없자 우린 함께 연극부를 만들어 버렸다. 때로는 야자를 째고 가정실과 양호실을 전전하며 눈물 콧물 흘리며 비밀 이야기도 나눴었다. 새 학년이 되어 반이 갈라졌을 때도 쉬는 시간마다 찾아와 괴롭히는 애 없냐, 무슨 일 없냐. 언니처럼 물어봐 주던 친구가 기원이었다. 생각해보면 기원이는 내 사정은 잘 몰랐지만, ' 여린 내 친구를 지켜줘야겠다!' 그런 뜨거운 의리가 있었나 보다. 기원인 강철 같은 의리녀였다.

   

기원이는 나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컸다. 고개를 들고 내 옆에 기원이를 쳐다보고 있노라면, 나는 왠지 든든하고 안심이 됐다. 친한 친구라고 미주알고주알 다 알 필요는 없었다. 기원이는 나의 상처를 들춰내려고도 하지 않았고, 그냥 항상 내 옆에 서 있었다. 우린 서로가 그런 친구였다. 왠지 마음이 땡기는 대로, 옆에 있고만 싶은 친구였다.






시간이 흐르고, 2003년 4월 20일, 야자 시간이었다. 옆 반에서 살금살금 찾아온 기원이가 내 책상에 카세트테이프 하나를 말없이 놓고 갔다.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이 테이프 상자에 붙어있었다. 나는 카세트테이프를 워크맨에 넣고 플레이를 눌렀다.


나나 나 나나 나나나나. 룰라의 ‘3! 4!’가 흘러나왔다. 워크맨 세대였던 우리는, 당시에 좋아하는 노래들을 모아서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서 듣는 게 유행이었다. 마침 기숙사 생활을 시작해서 노래를 찾아 들을 환경이 아니었던 나에게, 기원이가 좋은 노래들 녹음해서 선물했나 보다 생각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노래를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귓가에 기원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고수리의 친구 신기원입니다. 이 방송은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방송입니다. 오늘 생일을 맞이한 나의 사랑하는 친구 고수리. 너를 위해서 이 방송을 만들었어.”


내 눈이 땡그래졌다. 이어서 다른 친구들의 축하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수리야, 생일 축하해. 꼬실장, 생일 축하한다. 생일 축하해, 수리수리 마수리!


“친구들의 메시지 잘 들으셨나요? 우와, 수리 양은 좋겠어요. 이렇게 많은 친구가 수리 양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있으니 말예요. 그럼 이어서 고수리 양의 신청곡, 비쥬의 ‘누구보다 널 사랑해’와 SES의 ‘달리기’ 들려 드릴게요.”


푸하하. 신기원, 진짜로 널 어떡하면 좋니. 기원이는 노래와 멘트를 오가며 능청스럽게 디제이처럼 했다. 카세트테이프의 플레이 타임은 꽤 길었다. 10년이 지난 일이라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가 좋아했던 노래 대여섯 곡, 친구들 메시지, 그리고 기원이의 시낭송과 엔딩 메시지까지. 아마도 20분은 훌쩍 넘었을 것이다.


모두가 조용한 야자 시간에, 내 귀에만 내 친구 기원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엔딩곡으로 권진원의 ‘Happy Birthday To You’가 흘렀고, 기원이가 진심 어린 속마음을 읊조렸다. 우리 엄마도 까먹는 내 생일인데, 누군가에게 이렇게 찐한 생일 축하를 받는 건 처음이었다. 나는 훌쩍훌쩍 울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기원이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더 눈물겨웠다.


“야, 그때 내가 얼마나 힘들게 테이프 만들었는지 알아? 너한테 티 안 나게 좋아하는 노래 물어보느라 힘들었지. 노래를 하나하나 다 모았단 말이야. 그리고 공부하는 척 몰래 써둔 대본을 며칠째 품에 가지고 다녔어. 녹음하던 날에는 가족들이 잘 때까지 기다렸어. 그리고는 카세트 두 개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녹음을 했지. 하나는 녹음용, 하나는 노래 플레이용. 말도 마. 마이크도 없어서 카세트 하나에 입술 갖다 대고선 오글멘트를 녹음했다구. 버벅대면 다시 하고 또다시 하고. 대체 몇 시간이나 걸렸는지 몰라.”


그렇게 기원이가 열심히 만든 카세트테이프였는데, 평생 가장 소중한 생일 선물이었는데. 정신머리 없는 나는 그만 테이프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온 군데 샅샅이 뒤져 보아도 카세트테이프는 찾을 수가 없었다. 신기원 DJ의 카세트테이프는 어디 간 걸까?


나는 며칠 전에야 그 행방을 알게 되었다. 반전은 놀라웠다. 구형 마티즈를 끌고 다니던 엄마가, 차에서 기원이의 카세트테이프를 몇 년 동안이나 들었던 것이었다. 너무 많이 들은 나머지 나중에는 테이프가 늘어나 더는 들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럼 카세트테이프라도 남겨두었으면 좋으련만. 올해 엄마가 차를 바꾸는 사이에, 카세트테이프는 마티즈를 타고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엄마가 그걸 왜 들어?”

“왜 긴, 좋은 노래가 많더라고. 그리고 기원이가 목소리가 참 고와.”

“멘트까지 다 들은 거야?”

“그럼. 기원이가 아주 교양이 있는 애야. 팝송도 참 좋아하더라고.”


그때야 엄마가 말하는 팝송이 여명의 ‘Try To Remember’였다는 게 떠올랐다. 또 하나 플레이리스트 추가. 꽤 알찬 플레이리스트였다.



♬ 신기원 DJ의 ‘카세트테이프’ 플레이리스트

룰라 - 3! 4!
SES - 달리기
비쥬 - 누구보다 널 사랑해
조장혁 - 체인지
안재욱 - 포에버
여명 - Try To Remember
권진원 - Happy Birthday To You



“기원아, 나중에 네 얘기도 써줄게.”  

응! 나 써 줘. 제목은 '토요일의 카세트테이프'.”

“오오, 제목 좋다!”

고작가, 난 너랑 있었던 추억으로 월화수목금토일, 2주는 이야기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깔깔대며 웃는 우리는 서른 살이 되었다. 그동안 기원이가 선물해 준 카세트테이프는 12년의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늘어나고 망가져 사라지고 말았다. 카세트테이프처럼, 우리의 첫 만남과 우리가 처음 나눈 대화와 우리의 플레이리스트와 우리의 추억들도 가물가물한 기억 너머로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아쉽지 않다. 서로가 성긴 기억을 더듬어 우리의 이야기를 다시 엮어가는 것처럼, 여전히 만들어갈 이야기는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2주가 뭐야, 이야기는 평생 만들지 뭐. 우리 호호 할머니가 되어서도 ‘토요일의 경로당’ 같은 이야기 만드는 거 어때? 그냥 태어날 때부터 베프로 태어난 것 같은 기원이와 나. 앞으로도 우리는 월화수목금토일 행복할 거다. 고맙고 사랑한다, 신기원.







+) 이 글은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글입니다. 9월 12일, 오늘 생일을 맞이한 나의 사랑하는 친구 신기원. 너를 위해서 이 글을 썼어. 기원아,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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