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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Sep 09. 2015

수요일의 가해자

어느 가해자와 어머니의 이야기

학교폭력 특집 방송을 준비하던 때였다. 스튜디오 녹화가 코 앞인데 작가들은 학교폭력 사례자를 섭외하지 못했고, 메인작가님은 어떻게든 방송에 출연할 사례자를 데려오라는 특명을 내렸다. 그러던 중 제보 게시판에 ‘제 아들은 학교폭력 가해학생이었습니다’라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메인작가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가해자’ 부모라. 그야말로 대박이라며 반드시 출연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취재전화를 내게 맡겼다. 나는 덜덜 떨면서 전화를 걸었다. 학교폭력 가해학생 A군의 사연은 이랬다.



원래 A군은 중학교 시절 학교폭력 피해자였다. 학교폭력에 시달려 공부에 흥미를 잃은 A군은 실업계 고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A군은 스스로를 방어하고자 험악한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폭력 사건에 휘말린 A군과 친구들 무리는 학교폭력 운영 위원회에 서게 되었다. 경찰관과 공무원, 그리고 학교 관련 활동을 하는 부모를 둔 친구들은 가벼운 봉사활동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가난한 자영업자 자녀인 A군만 달랐다. A군은 300원을 빌린 것조차 금품 갈취 혐의가 되고, 자신이 가담하지 않은 친구들의 다른 혐의까지도 모두 뒤집어쓴 채 전학통보를 받았다. 받아주는 학교는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A군은 자퇴를 선택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더 충격적인 사실이 있었다. 그동안 A군은 이들 집단 내에서 심각한 폭행을 당해왔던 것이었다. 학교폭력은 돌고 돌아, A군을 학교폭력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만들었다.


 

한 시간이 넘는 긴 통화에서 어머님은 이게 다 자신이 잘못 가르친 탓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아들 A군은 분명히 잘못했고,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사소한 장난이라도 피해학생에겐 상처가 되었을 것이라며 진심으로 사죄하고 싶다고도 했다. A군 역시 후회의 눈물로 사죄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어머니는 학교에 불신이 생겼다고 했다. 폭언을 동반해 뻔뻔하게 대응했던, 힘 있고 목소리 큰 가해학생 부모들의 자식들은 여전히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지난 4년간 학교폭력의 그늘에서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던 A군에게는 아무도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상처가 크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왜 A군에게만 이러한 통보를 내렸는지 어떠한 설명도 해주지 않았고, 건의 메일을 보낸 교육청에서는 ‘일차적으로 가정교육의 책임이 크다’라는 답변만 왔다고 했다.


결국, 어머님은 울음을 터뜨리셨다.


“내가 먹고살기 바쁘다고 자식새끼 하나 제대로 키우질 못했어요. 우리 아들이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사실도 몰랐고, 그것 때문에 또 나쁜 길에 빠질 줄은 몰랐어요. 다 제 탓입니다. 그런데 작가님, 이제 우리 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어른들과 학교에 더 큰 상처를 받은 우리 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죠? 이게 다 돈 없는 애미 탓입니다. 전부 다 제 탓이에요.”


어머님은 한참을 우셨다. 나는 그저 들어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긴 통화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은 방송 출연을 원치 않으셨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든 사례자를 섭외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의 의사를 받아들였다. 통화를 마친 후, 나는 “출연하지 않으시겠대요.”라고 제작진에게 말했다. 아니, 출연도 안 할 거면 제보는 왜 해? 그리고 넌, 바빠 죽겠는데 출연도 안 할 사람 전화를 왜 그렇게 오래 붙들고 있어? 나는 메인작가님께 아주 호되게 혼이 났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나는 A군과 어머님이 방송에서 또 한 번 상처받으실까 봐 걱정이 됐다. ‘가해자’라는 꼬리표가 대박 아이템이라는 메인작가님의 말에도 동의할 수 없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 가해학생 부모 모임에 참여한 미자할머니


나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가 생각났다. 영화 속에서 손자를 경찰에게 넘기고 '아네스의 노래'를 적어 내려가며 사죄했던 미자할머니가 아니라, 돈과 권력으로 사건을 덮고 아무렇지 않게 자식들을 학교에 보냈을 다른 가해학생 아버지들이 궁금했다.  


그 학교와 자식과 가족들은 다음 날도 학교에 가고, 공부를 하고, 밥을 먹는지. 만일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모르는 아이들이 부모와 똑같은 어른이 되고, 그 끔찍하고 교활한 일상을 그대로 살아간다면. 누군가는 다치거나 죽거나 사라질 수도 있다. 분명 비극이다.


지금쯤이면 스무 살 청년이 되었을 A군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친구들과 어른들, 그리고 학교에 상처를 받았다고 해도 잘못을 진심으로 사죄한 당신은 선한 사람이라고. 훌륭한 부모님이 당신을 그렇게 키우셨다고. 그리고 당신은 가해자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충분히 이 세상을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어두운 날은 털어내고 바르게 살아가길 바란다고. 말하고 싶지만 열일곱 살이었던 그가, 그때 그 냉혹한 현실에서 제대로 살 수 있었을지.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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