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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가 언니가 필요할 땐 연락해 줘

by 고수리

유영아, 언니가 벌써 마흔이야.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간다. 얼굴도 웃음도 어쩜 기억 속 그대로인데 시간은 훌쩍 20년쯤 흐르고 둘 다 애엄마가 되어 있었다.


대학 후배를 다시 만났다. 두 학번 후배였던 유영이는 만나는 접점도 그리 많지 않았지만 내가 좋아했던 동생이었다. 잘 웃고 무던하고 사람들 잘 챙기고 야무졌던 친구, 얜 어디서 뭘 해도 잘할 거야 싶은 미더운 후배였다. 연락 없이 지내던 어느 날, 언니 책 잘 읽고 있다며 유영이가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우리 만나자. 만나서 얘기해. 그게 오래전인데 아이들 방학이 되어서야 만났다.


언니가 '당신의 스무 살'이란 주제로 청탁원고를 썼거든. 근데 20년이 지나니까 그때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더라. 네 기억 속에 난 어떤 사람이었어? 물으니 유영이가 대답한다. 언니는 그때도 그냥 언니였고, 제가 언닐 좋아해서 따라다녔죠. 그러게. 너도 그때도 그냥 유영이었어. 단순한 대답에 웃었다. 언니가 쓴 모든 책을 읽었어요. 비슷한 시기를 살아가기 때문인지 이상하게도 언니가 쓴 글이 하나하나가 제 맘 같아서 기분이 이상한 거 있죠. 유영아, 우리 이제 같이 나이 들어간다. 그게 참 좋네.


대학시절, 시험기간인 내 생일날 유영이가 학교에 미역국 도시락을 싸와서 챙겨준 적 있었다. 난 그게 두고두고 고마웠다. 외롭다 힘들다 하던 시절에도 내게 사랑과 마음을 나눠준 좋은 이들이 있었기에, 훗날 나도 그런 사람이 된 거 같다. 그땐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많이 못 사줬던 밥도 커피도 사주었다. 비 오는 거리를 유영이랑 우산을 나눠 쓰고 같이 걸어다녔다. 헤어지는 길에는 꽉 껴안아주었다.


유독 여자 후배들이 마음 쓰인다. 많은 여자친구가 결혼하고 아이들 낳아 키우는 사이에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나도 그래봤기에 너무 잘 안다. 출산과 양육으로 이어지는 긴긴 시간을 홀로 어떻게 보냈을지. 관계의 공백과 무딘 연락으로 서로를 기억할까 주저하며 그저 조용히 응원하고 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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