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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Oct 12. 2015

월요일의 꿈

<빨간 지붕 위의 남매> 진짜 꿈이 된 나의 꿈 이야기  

작년에 나는 한겨레 아동문학 작가학교에 다녔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 숙제를 내주셨다. 생애 최초로 기억하는 꿈을 적어오라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나 해볼 수 있는 숙제 같았다. 나는 신이 났다. 그래서 연습장에다 손글씨로 꿈 이야기를 적었다.






나의 꿈 이야기


6살이나 7살 때 꿈이었을 것이다.

어렸을 때, 내가 가장 무서워했던 장소는 외할머니 집이었다.


외할머니 집은 강원도 삼척에 동해바다가 바로 펼쳐져 있는 ‘정라진’이라는 산동네였다. 산비탈에 옛날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 있었다. 할머니 집은 산동네에서 산허리쯤 위치해 있었다. 어른이 된 지금 찾아가보면 끝내주는 경치를 가진 백만 불 짜리 집이다. 하지만 어렸을 때는 그 집이 그렇게나 무서워서 자주 악몽을 꾸곤 했다.


할머니 집에는 어른 키만 한 턱이 있고 아래로 산동네 좁은 길이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당시에 할머니 집 앞집, 뒷집은 모두 흉가였다. 게다가 재래식 화장실이어서 나는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똥을 참았다.


나는 종종 할머니 집 아래턱으로 떨어지는 꿈을 꿨다. 어른 키만 한 턱은 낭떠러지로 변해서 끝도 없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재미난 꿈을 꿨다.

창문이 있는 작은 방에 있었는데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얼굴을 배꼼 내미니 집채만 한 사자 두 마리가 집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어린 시절 소심하고 겁이 많았던 나는 방에서 달달 떨었다. 하지만 철딱서니 없는 내 동생은 팔을 내밀고 사자들을 약 올렸다.


그런데 그때, 수사자 한 마리가 내 동생 팔을 덥썩 무는 게 아닌가? 그 광경을 보자마자 나는 어디서 용기가 솟았는지 커다란 나무 빗자루를 들고 와, 수사자를 냅다 후려쳤다.


“내 동생 팔 내놔. 이눔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두드려 패니 수사자가 동생 팔을 내뱉었다. 나는 동생에게 팔 한 짝을 다시 던져주고 씩씩거리면서 수사자를 노려봤다. 그 순간 수사자는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에라 모르겠다’ 낭떠러지로 몸을 날렸다.


이쯤 되면 이대로 끝없이 떨어지다가 꿈이 끝나는 게 맞다. 그런데 까마득한 낭떠러지를 한참이나 떨어지고 있으려니, 갑자기 등에서 큰 날개가 돋는 게 아닌가. 나는 날갯짓을 하며 하늘로 부웅 솟았고, 그대로 바다로 날아갔다. 그렇게 신나게 바다 위를 날았다.


그 꿈을 꾼 이후로 매번 낭떠러지에 떨어졌어도 날개가 돋아서 훨훨 날아다녔다.

나는 더 이상 할머니 집이 무섭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도 엄마는 혀를 찬다.


“네가 그래서 키가 고만한 거야!”


+) 신나게 초딩실력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쓴 숙제 <나의 꿈 이야기>


처음으로 써본 꿈 이야기는 너무나 재밌었다. 내게도 이런 풋풋한 동심이 살아있다니. 정말 놀랐다. 왜냐하면, 그 당시 나는 찌들 대로 찌든 어른이었기 때문이다.


작년 이맘때, 나는 일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아주 힘든 일들을 겪었다. 한번 주저앉자 헤어날 수 없는 슬럼프가 나를 짓눌렀다. 나는 바닥으로 바닥으로 가라 앉고만 있었다. 스트레스는 정점을 찍었고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예민하고 뾰족한 고슴도치 성격의 소유자로 변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도 이런 동심이 살아있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글을 쓰면서 해맑게 웃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즐거웠다.


꿈 이야기를 쓰면서 내 평생 절친한 친구였던 내 동생과, 바다를 친구 삼아 평생 해녀로 살았던 할머니가 떠올랐다. 나는 이 둘을 위해 동화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겨레 아동문학 작가학교에서는 졸업과 함께 문집을 만든다. 나는 이 꿈 이야기를 동화로 만들어서 문집에 실었다. 결국, '생애 최초로 기억하는 재밌는 꿈 이야기'는 '생애 최초로 고수리 작가가 쓴 동화'가 된 것이다.


그렇게 내가 쓴 생애 최초의 동화를 선보이려고 한다. 동화를 이렇게 밖에 못 쓴 이유를 대자면, 처음이라서. 몰라서. 어른이라서. 아이들만큼 동심이 부족해서. 등등. 백만 가지 핑계를 댈 수가 있다. 정말 부끄럽고 부끄럽고 또 부끄럽지만 누군가는 내 동화를 읽고 빙그레 웃었으면 좋겠다.






 +) 한겨레 아동문학 작가학교 47기 문집에 실린 나의 첫 번째 동화 <빨간 지붕 위의 남매>



빨간 지붕 위의 남매


바닷가 산동네에는 ‘빨간 지붕 집’이 있었어요. 그곳은 리리의 할머니 집이었죠.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좁다란 골목길을 뱅뱅 돌고 나서야 도착했어요. 빨간 지붕 집은 산꼭대기 벼랑 끝에 있었거든요. 파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아주 멋진 집이었어요. 하지만 낭떠러지 아래는 살짝 내려다보기만 해도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답니다.


여름방학이 되자, 리리와 남동생은 할머니 집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리리는 빨간 지붕 집이 무서웠어요. 이 동네에는 옛날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 있었는데요. 빨간 지붕 집의 옆집과 뒷집만, 아무도 살지 않았어요. 빈집에서는 날마다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지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똥을 누려면 똥간에 가야 했어요. 지독한 냄새가 풀풀 풍기고, 똥바닥이 훤히 보였지요. 잘못해서 똥바닥에 빠지면 어떡해요? 갑자기 화장실 귀신이 튀어나오면 어떡하죠? 리리는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똥을 참았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할머니는 바다에 물질하러 나갔고요, 남매는 방에서 그림을 그리며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어흥’ 소리가 들렸어요. 리리가 동생에게 물었어요.


“야, 소리 들었어?”

“무슨 소리?”


“어흥.”

“사자 울음소리?”


“무슨 사자가 ‘어흥’하고 우냐? 호랑이가 ‘어흥’ 우는 거야.”

“아냐. 사자도 ‘어흥’하고 울어, 누나.”

“에잇, 바보 같은 녀석.”


그때 또 한 번 ‘어흥’ 소리가 들렸지요. 동생은 후다닥 창문으로 달려갔어요. 그리고 소리쳤어요.


“누나! 사자가 왔어!”


리리도 창문 밖으로 얼굴을 배꼼 내밀었어요.

그때, 호두알 같은 사자의 눈이랑 똑 마주쳤지 뭐예요. 사자는 ‘어흥’ 울었습니다.


“엄마야!”

“누나, 봐봐. 사자도 ‘어흥’하고 울지?”


사자의 울음소리가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지금, 창밖에는, 집채만 한, 사자가, 서 있단 말이에요!


“너희가 이 집 주인이니?”

“아니. 여긴 우리 할머니 집이야.”


리리는 달달 떨면서 대답했어요.


“상관없어. 난 지금 배가 너무 고프거든. 너희를 잡아먹어야겠다.”


사자는 정말로 배가 많이 고픈지 ‘어흥’ 또 한 번 울었습니다.  


“너 입 냄새 진짜 고약하다.”


눈치 없는 동생은 코를 틀어막고, 몸을 배배 꼬았습니다.


사자는 동생을 척 째려보더니, “네 녀석부터 잡아먹을 테다!” 하고 입을 쩍 벌렸지요.

리리는 마음이 급해졌어요.


“잠깐만! 사자야, 우린 너무 작아서 맛이 없어. 이왕 먹으려면 어른들을 잡아먹어. 어른들은 키도 크고 뚱뚱해서 훨씬 맛있을 거야.”


리리는 사자를 타일렀습니다.

하지만 사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어요.


“세상에 어른들처럼 맛없는 고기가 없다구! 옆집 할망은 삐쩍 말라서 퍽퍽하니 간에 기별도 안 갔고. 뒷집 아방은 너무 뚱뚱해서 질기기만 했어. 그런데 보아하니 너희는, 토실토실하고 말랑말랑한 것이 아주 맛있겠구나.”


리리의 눈이 똥그래졌습니다. 옆집과 뒷집 사람들은 모두 사자에게 잡아먹혔던 거였어요.

그때, 철딱서니 없는 동생이 팔을 휘휘 내저으며 말했어요.


“바보 같은 사자! 넌 머리가 너무 커서 여기로 들어오지도 못해. 먹을 테면 먹어봐라. 메롱.”


동생은 겁도 없이 혀를 날름거리며 사자를 약 올리는 게 아니겠어요?


“야, 하지 마.”


리리가 동생을 말릴 새도 없이, 사자는 창문으로 머리를 쑤욱 들이밀었습니다. 부숭부숭한 갈기가 얼굴에 착 달라붙더니, 사자의 머리는 좁은 창문을 너무나도 쉽게 들어왔지요. 사자가 입을 쩌억 벌렸어요. 그러자 쇠창살 같은 송곳니가 나타났습니다. 사자는 동생의 팔을 덥썩 물었어요. 리리는 너무 놀라서 눈알이 다 튀어나올 뻔했어요. 동생의 팔이 댕강 잘려버렸거든요.


리리는 재빨리 마당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그리고는 개똥을 치우던 삽자루로 사자를 냅다 후려쳤습니다.


“내 동생 팔 내놔. 이놈아!”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을까요. 사자는 컥 하고 동생의 팔을 뱉어냈습니다.


“내가 진짜 너 땜에 못 살아. 얼른 팔 받아!”


리리는 팔 한 짝을 동생에게 던져주었어요. 그리고는 씩씩거리며 사자를 노려봤답니다. 난데없이 얻어맞은 사자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어요. 호두알 같은 눈알이 뿌직뿌직 갈라졌지요. 사자는 성큼성큼 리리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때였어요. 리리의 등 뒤에서 고슴도치처럼 생긴 것들이 날아왔어요.


“따가울 거다, 요놈아.”


리리를 따라 나온 동생이었어요. 할머니의 *망사리에서 성게를 꺼내 던진 것이었지요. 뾰족한 성게는 사자의 머리통을 데구루루 굴러다녔습니다.


“으악! 따가워.”


사자가 펄쩍펄쩍 뛰었어요. 그 틈에 리리는 망사리에서 복어 한 마리를 꺼냈어요. 복어의 똥구멍을 훅훅 불어, 탱탱한 몽둥이를 만들었지요. 그리고는 동생에게 오징어 한 마리를 던져주었습니다.


“사자 눈에다 대고, 오징어를 꾹 눌러!”


동생이 오징어 몸통을 누르자 새까만 먹물이 물총처럼 뿜어져 나왔습니다. 그 사이 리리는 사자 등에 폴짝 올라탔지요. 그리고는 복어 몽둥이로 사자를 사정없이 두드려 팼답니다.


“엉엉. 얘들아, 안 잡아먹을게. 그만해, 그만!”


사자는 검은 눈물을 펑펑 흘리며 사정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남매가 언제 고분고분하게 말을 들은 적이 있나요? 동생은 아궁이에서 뜨거운 부지깽이를 들고 와, 사자의 궁둥이를 푸욱 찔렀습니다.


“똥침이나 먹어라!”

“크아아아앙”


사자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낭떠러지로 떨어졌어요.

그런데 이런! 동생은 한 짝 팔로만 사자를 해치우는 데 열중하다 보니, 리리를 깜빡한 것이었어요. 사자 등에 올라탄 리리도 함께 떨어지고 말았지요.


“꺄아아아앙.”

“누나!”


동생의 목소리가 왕왕 울렸습니다. 사자와 리리는 까마득한 낭떠러지를 끝도 없이 떨어졌어요. 풍덩, 무거운 사자가 먼저 바다에 빠져버렸습니다.


‘구 년밖에 못 살았는데, 이렇게 죽는구나.’


리리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리리의 등에서 커다란 날개가 돋아나는 게 아니겠어요? 리리는 날갯죽지를 세차게 퍼덕거렸어요. 그러자 리리의 몸이 하늘로 부웅 솟았습니다. 순식간에 빨간 지붕 위로 날아올랐지요. 눈물 콧물이 범벅된 동생이 리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누나, 누나가 죽은 줄 알았어. 엉엉.”

“사내자식이 울기는...”


사실은 리리도 찔끔 울었답니다. 동생이 너무나 반가웠어요. 리리는 밥풀을 발라다가 동생의 팔을 붙여주었습니다.


“누나, 나도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늘을 날면, 기분이 아주 끝내줘.”


리리는 어른스럽게 말했어요.


리리는 동생을 등에 업고 바다로 날아갔습니다. 빨갛고 커다란 해가 수평선에 걸려 있었어요. 바다는 반짝반짝 금빛으로 빛났답니다. 남매는 처얼썩 파도 위를 날아올랐다가, 끼룩끼룩 갈매기 떼와 함께 날았다가, 노오란 구름 위를 날았어요.


호오~잇. 해녀들이 휘파람을 불며 돌고래처럼 튀어 올랐습니다. 동그랗게 떠오른 할머니의 *테왁이 넘실넘실 춤을 췄지요.


“할머니, 안녕!”


남매는 입을 모아 소리쳤어요. 할머니는 바닷속을 헤엄치느라 듣지 못했지만요.


신나게 바다를 쏘다닌 남매는 빨간 지붕 위에 앉았습니다. 그곳에서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았지요. 새빨간 자두 같은 해는 앵두만큼 작아지더니, 바다 속으로 퐁 사라졌어요.


“누나, 기분이 아주 끝내줘!”


남매는 까맣게 탄 얼굴로 마주 보며 히죽 웃었습니다.

멀리서 할머니가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남매는 얼른 지붕에서 미끄러져 내려왔어요.    


“아이고망, 이게 뭔 일이라?”


할머니가 집에 왔을 땐, 똥삽이랑 부지깽이가 나뒹굴고 있었어요. 성게랑 오징어랑 복어가 팔딱대고 있었고요.


“너네! 또 싸웠고망?”

“할머니, 배고파요.”


남매는 쪼르르 달려와 할머니의 품에 안겼어요.

할머니는 바다에서 잡아온 물고기로 맛있는 저녁밥을 지어주었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남매는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습니다. 동생이 꺼억 트림을 했어요. 둘은 마주 보고 킥킥 웃었답니다.  




* 망사리 :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을 담아두는 그물주머니를 말해요. 해녀들이 물질할 때는 망사리를 테왁에 매달아 사용해요.

* 테왁 : 크고 잘 익은 박 속을 긁어내고 구멍을 막아서 만든 물건이에요. 해녀들은 바다에 둥둥 뜨는 테왁을 가슴에 얹고 헤엄치지요.







사진으로 보는 <빨간 지붕 위의 남매>


+) 강원도 삼척 정라진 외할머니 집이 있는 산동네.  

저기 옛날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 있는 동네, 산 중턱에 리리네 할머니 집이 있다.


바닷가 산동네에는 ‘빨간 지붕 집’이 있었어요. 그곳은 리리의 할머니 집이었죠.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좁다란 골목길을 뱅뱅 돌고 나서야 도착했어요.


+) 분홍색 외할머니 집. 빨간 지붕은 새로 공사를 해서 덮었다.

할머니네 집 아래 턱은 엄청나게 높다고 생각했는데 어른이 되어 보니 엄청 낮았다. 리리가 무서움에 떨며 내려다보거나, 날개가 돋아나 날아올랐던 낭떠러지는 사실은 이렇게나 낮았더랬다.


빨간 지붕 집은 산꼭대기 벼랑 끝에 있었거든요. 파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아주 멋진 집이었어요. 하지만 낭떠러지 아래는 살짝 내려다보기만 해도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답니다.


'구 년 밖에 못 살았는데, 이렇게 죽는구나.'
리리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리리의 등에서 커다란 날개가 돋아나는 게 아니겠어요? 리리는 날갯죽지를 세차게 퍼덕거렸어요. 그러자 리리의 몸이 하늘로 부웅 솟았습니다. 순식간에 빨간 지붕 위로 날아올랐지요. 눈물 콧물이 범벅된 동생이 리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화장실 입구와 작은 방 창문.

똥 싸기가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워서 열심히 똥을 참아야 했던 재래식 화장실 입구. 그리고 이어서 오른쪽에 작은 창문은 리리의 개구쟁이 동생이 사자를 약 올리다가 팔을 잡아 먹혔던 그 창문이다.


리리는 빨간 지붕 집이 무서웠어요. 똥을 누려면 똥간에 가야 했어요. 지독한 냄새가 풀풀 풍기고, 똥바닥이 훤히 보였지요. 잘못해서 똥바닥에 빠지면 어떡해요? 갑자기 화장실 귀신이 튀어나오면 어떡하죠? 리리는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똥을 참았답니다.


“바보 같은 사자! 넌 머리가 너무 커서 여기로 들어오지도 못해. 먹을 테면 먹어봐라. 메롱.”
동생은 겁도 없이 혀를 날름거리며 사자를 약 올리는 게 아니겠어요?
“야, 하지 마.”
리리가 동생을 말릴 새도 없이, 사자는 창문으로 머리를 쑤욱 들이밀었습니다. 부숭부숭한 갈기가 얼굴에 착 달라붙더니, 사자의 머리는 좁은 창문을 너무나도 쉽게 들어왔지요. 사자가 입을 쩌억 벌렸어요. 그러자 쇠창살 같은 송곳니가 나타났습니다. 사자는 동생의 팔을 덥썩 물었어요.


+) 할머니 집에서 내려다본 풍경.

해가 뜨고 질 때 바다는 온통 황금빛으로 변한다. 어렸을 때 내려다보던 저 아래는 그렇게나 아름다웠다. 아침에 일어나면 눈곱도 안 떼고 평상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리리의 할머니가 테왁을 끼고 물질을 하던 바다, 리리가 동생을 등에 업고 날아가던 바다가 저기다.


“누나, 나도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늘을 날면, 기분이 아주 끝내줘.”
리리는 어른스럽게 말했어요.
리리는 동생을 등에 업고 바다로 날아갔습니다. 빨갛고 커다란 해가 수평선에 걸려 있었어요. 바다는 반짝반짝 금빛으로 빛났답니다. 남매는 처얼썩 파도 위를 날아올랐다가, 끼룩끼룩 갈매기 떼와 함께 날았다가, 노오란 구름 위를 날았어요.


+) 그리고 영광의 주인공들. 리리와 개구쟁이 남동생.

우리는 두 살 터울이라서 정말 뜨겁게 싸웠고 정말 뜨겁게 놀았다. 우리는 전교생이 50명이 채 안 되는 초등학교에 다녔다. 학교에 가려면 꼬마걸음으로 40분은 걸어가야 할 정도로 완전 시골 깡촌에 살았다. 집이 겨우 네다섯 채 밖에 없는 동네에 친구라곤 우리 둘 밖에 없었다. 둘이서 개울가에서 수영하고, 훌라후프 돌리고, 경운기 얻어 타고, 개구리 잡고, 연탄 깨고 놀았다. 그나저나 내 동생은 저 청모자를 정말 정말 좋아했나 보다. 사진마다 꼭 저 모자를 보물처럼 쓰고 있다. 내가 시집 가기 전까지도 나랑 동생은 둘이 같이 살았다. 거의 28년을 붙어있었던 우리는,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 사이좋은 남매이자 친구이다.


 




<빨간 지붕 위의 남매>를 시작으로 나는 일 년째 아동문학을 쓰고 있다. 장르는 조금 변했다. 동심(童心) 대신 사춘심(思春心)으로 나는 청소년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었다.


일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였는지 되돌아보니, 나는 청소년기가 그랬다. 그때의 나처럼, 오늘 하루도 단단히 버티고 살아낼 친구들을 응원하고 싶었다. 나는 그 마음을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


꿈이야 크지만 나는 아직 정식으로 등단한 작가는 아니다. 일개 작가 지망생이다. 보란 듯이 쑥쑥은 아니지만 느릿느릿 조그마한 성과들을 이뤄내고 있다. 언젠가 동화도 함께 쓸 생각이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뿐만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동화도 쓰고 싶다. 브런치를 통해서 에세이와 다양한 종류의 글들도 꾸준히 쓰고 싶다.


나는 지금이 어느 때보다 아주아주 즐겁고 행복하다. 밥 먹을 시간, 잠 잘 시간이 아깝고 눈 깜빡하면 훌쩍 지나가버리는 하루 24시간이 소중해 죽겠다. 길을 걸을 때도, 사람을 만날 때도, 심지어 꿈에서도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아른거린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정신없이 몰입해보았던 게 언제일까



생각해보니 나는 지금이었다. 내가 우연히 적었던 건 어릴 적 꿈 이야기였지만, 그래서 나는 서른 살에 진짜 꿈이 생겼다. 조금 늦었지만 이제야 그 꿈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고 있다.


마냥 곱지만은 않았던 주변의 시선들도 한결 너그러워졌다. 요즘 뭐하며 사냐고 묻는 지인들도 글을 쓴다고 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는  스물여덟이 된 개구쟁이 내 동생은 언제나 울 누나가 최고라며 엄지 손가락을 척 내민다. 남편은 방 한 칸을 아예 고작가 작업실로 만들어줄 정도로 나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다. 무엇보다도 창작의 고통과 돈벌이를 걱정하며 전공도 일도, 작가일은 반대했던 엄마가 이제는 나를 고작가라고 부른다.


동화와는 상관없는, 터무니없이 먼 길을 돌아왔어도 나는 알고 있다. 모든 건 어렸을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나는 아이였고 티 없이 순수하고 무지막지하게 즐거운 동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기억들과 내 삶의 경험들이 조화롭게 맞물려서 나는 동화를 쓰게 되었다.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준 삶이 고맙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모든 사람이 잊어버린 채 살고 있는 어린 날의 기억과 꿈을 엿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들을 알 수만 있다면 난 참말로 멋진 동화를 하루에 한 편씩은 쓸 수 있을 텐데.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아이였고 동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삶 속에 저마다의 동화 한 편씩은 가지고 있다.


언젠가 청소년 소설 작품 중에서 고수리 작가의 글을 발견한다면, 지나치지 말고 꼭 한 번만 읽어줬으면 좋겠다. 정말로 그런 날이 오기를 야무지게 꿈꾸면서. 파이팅 넘치는 나의 마음이 고대로 담긴 2014년 12월 24일의 메시지를 전한다.  






2014년 12월 24일.

오늘은 6개월 동안 고군분투했던 한겨레 아동문학 작가학교 47기 종강일이었다. 난생처음 내 작품을 쓰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합평했던 꿈같은 시간이었다. 세련되진 않지만 우리 기수가 힘을 모아 첫 문집을 만들었다. 47기 문집을 받아 들자 발끝부터 밀려드는 폭풍감동! 오구오구, 금쪽같은 내 새끼♡


학교는 종강이지만, 작가 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서른 살엔 동화작가 등단을 목표로, 아니 꼭 등단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평~생! '전 우주적, 전 지구적, 전 생명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는 열정적인 작가'가 될 테다. 음하하하!

이렇게 가슴 뛰는 때가 또 언제 있었나 싶다. 밥벌이는 따로 있지만, 내 평생을 함께 할 꿈을 찾아서 아주 기쁘다. 밥보다 꿈, 꿈보다 밥이 아닌 밥 먹고 꿈꾸는 작가 인생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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