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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Oct 08. 2015

목요일의 해결사

결론이 뭔데? 그래서 어떻게 해결할 건데?

그래서 결론이 뭔데?



이 말은 참 난감하다.

이건 바꿔 말하면 “그래서 어떻게 해결할 건데?”와 같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부터 나는 유능한 해결사가 되어야만 했다. 회의시간에 내 의견을 말할 때도, 보고서를 제출할 때도, 방송을 제작할 때도. 심지어 한 편의 글을 쓸 때도. 나는 결론, 즉 해결책을 제시해야 했다. 모든 일의 시작은 일의 해결과 함께 끝이 났다.


일의 능력이 해결 능력과 비례한다면, 나는 무능한 해결사였다. 해결책이 없으면 퇴근도 없다. 그래서 나는 무능한 해결사에 만년 야근생이었다.


답도 없는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나는 생각했다. 딱 두 가지 조건만 내게 주어진다면 난 정말로 멋지게 해결할 수 있는데. 적당한 시간과 진득한 탐구 과정. 딱 이 두 가지면 충분한데.


아침에 문제를 던져주고 오후에 뚝딱 해결책을 마련하란 일은, 겨우 일차 방정식을 배웠는데 오늘 삼차 방정식을 풀어내란 요구와 비슷했다. 그래서 내게 닥친 많은 일은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는 수학의 정석처럼 마냥 답답하고 어려웠다. 대충 임시방편으로 돌려막기 신공을 선보이며, 나는 어쨌든 일을 해내며 살아냈다. 참으로 일하기 어려운 사회였다.


그런데 인간관계도 어려워졌다.

언제부턴가 이익관계를 따지며 사람을 사귀게 됐다. 그래서 결론이 뭔데? 우리 어쩌자는 건데? 단시간에 사람을 판단하고 우리 관계를 매듭지어야 했다. 썸과 쿨을 오가며 단시간에 해결해야 하는 관계. 참으로 소통하기 어려운 인간관계였다.


스마트폰에 정신 팔린 상대방을 들여다보며 나는 생각했다. 딱 두 가지 조건만 내게 주어진다면 난 정말로 당신을 이해할 수 있는데. 적당한 시간과 진득한 탐구 과정. 딱 이 두 가지면 충분한데.


일을 해결하는 건 어렵다. 사람을 해결하는 건 더 어렵다. 그런데 일은 사람이 하는 거였다. 결국, 모든 일은 사람을 해결하는 데까지 가야만 끝이 난다. 좁은 마음과 막힌 생각을 열어 사람을 이해하는 데에 하루는 턱없이 부족하다. 시간. 뭣보다 우리에겐 시간이 간절하다.  


일도 사람도, 사회생활도 인간관계도.

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진득한 탐구 과정이 필요하다.


오늘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곱씹으며 나는 생각해봤다.

빠른 해결이 꼭 옳은 해결이란 법은 없다. 대부분의 재빠른 해결책들은 더 큰 문제를 불러일으키곤 했다. 매 순간이 임시방편, 요령 피는 해결사 말고. 오늘도 고군분투, 탐구하는 해결사가 이 시대에 필요한 진짜 해결사가 아닐까.


아, 일이고 인간관계고 다 어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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