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수리 Nov 03. 2015

화요일의 그녀

아름다운 그녀의 열여덟

넌 내가 예쁘다고 생각해?

그녀가 물었다.

응. 넌 정말 예뻐.

나는 대답했다. 당연한 말이었다. 햇살이 눈부시고 숲이 아름답고 일몰이 찬란하고 밤이 경이로운 것처럼. 그녀는 예뻤다.

아니야. 난 예쁘지 않아.  

아니야. 넌 정말 예뻐.

나는 대답했다. 그건 불변의 진리야. 덧붙이고 싶었지만, 너무 경박해 보일 것 같아 관두었다.

내가 열여덟 살 때, 정말 이상한 하루가 있었어.

그녀가 화제를 바꿨다.

이제부터 좀 긴 이야기가 될 텐데, 들어줄래?

물론.






맨날 웃으면서 넘기려고 하면 다 해결되는 줄 알아?라고 담임선생님이 말했어. 그날 아침에도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담임선생님에게 불려 가 혼이 나고 있었어. 선생님은 내게 호통을 치고선 주먹으로 머리를 때렸어. 그리곤 운동장을 뛰게 했지. 내 입에서 죄송합니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선생님은 나를 뺑뺑이 돌릴 생각이었나 봐.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너무 억울한 거야.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묵묵히 운동장을 뛰었어. 쇠 맛 비슷한 피비린내. 그런 게 목구멍으로 차고 올라오는데도 나는 꿋꿋이 뛰었지. 잘못한 게 없는데, 잘못했다고 말하는 건 옳지 않은 거잖아. 자존심도 상하고 말이야. 근데 선생님은 그런 내가 더 괘씸해 보였나봐. 손가락을 까딱하면서 나를 불러. 다가갔더니 또 한 번 주먹으로 머리를 때리더라. 야, 예쁘다, 귀엽다. 그러면 그냥 넘어갈 줄 알아? 세상은 네 생각만큼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야. 선생님은 소리를 질렀어.


왜 그런 거야?

몰라. 나는 알 수 없어. 왜냐면 그날 이후로 담임선생님을 볼 수 없었거든.


담임선생님은 정말 이상할 정도로 나를 싫어했어. 무슨 일을 하든 나는 선생님 눈 밖에 났어. 선생님은 영어를 가르쳤는데, 심지어 수업시간에 영어 지문을 제대로 못 읽는다는 이유로 나는 교실 밖에 나가서 손을 들고 있었어. 교실 뒤가 아니라, 교실 밖이야. 아예 수업을 못 듣게 한 거라고. 내가 손을 들고 있으면 담임선생님이 문을 열고 나와. 그리고 주먹으로 머리를 때렸어.


울었어?

아니, 웃었어.

왜?

잘못했다는 표정으로 맥없이 웃으면 대부분은 그냥 넘어가거든.

아, 그래서!

응, 그래서, 선생님은 맨날 웃으면서 넘기려고 하면 다 해결되는 줄 알아?라고 소리쳤던 거야.


아무튼 그때, 나는 운동장을 열댓 바퀴 돌았을 거야. 담임선생님이 다시 손가락을 까딱하면서 나를 불러. 네가 뭘 잘못한 줄 알겠어? 선생님이 물었어. 끝내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어. 난처했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묘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서 있었는데 선생님이 나를 빤히 쳐다봤어. 그리고 또 주먹으로 머리를 때렸어.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졌어. 나는 울었어. 울면서 소리쳤어. 제발 때리지 마세요. 장난으로라도 때리지 마세요.


그랬더니?

교실로 들어가라고 하더라.

기분이 어땠어?

비참했어.


나는 교실에 바로 들어가지 못했어. 비참했다고 했잖아. 알고 있어? 비참할 땐, 슬플 때보다 눈물이 훨씬 더 많이 나. 눈물샘이 터진 것처럼 마구 쏟아졌지. 나는 교실 앞 계단에 앉아서 울고 있었어. 끅끅거리면서 소리 죽여 우느라 온몸이 떨릴 지경이었어. 그때 아침 자율학습 감독선생님이 왔어. 생물선생님이었어. 20대 후반에 남자 선생님이었어. 선생님은 정말 이상할 정도로 나에게 관심이 많았지. 수업 시간에 노트필기를 할 때면 가끔 선생님의 눈길이 느껴졌어. 그래서 내가 선생님을 쳐다보면 선생님도 나를 쳐다보고 있었어. 보통은 말이야. 눈이 마주치면 피하거나 웃어버리거나 그렇잖아. 그런데 선생님은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어. 뭔가 할 말이 있는 것도, 어떤 감정이 들어있는 눈빛도 아니었어. 그냥 나를 보고만 있었어. 어떤 특정한 사물이나 미술품을 응시하듯이 그저 나를 보고만 있는 거야. 결국엔 내가 먼저 눈길을 피해버리고 말았지.


널 좋아했던 거 아닐까?

그런 걸까? 그런데 그 선생님은 유부남이었어.


왜 울고 있어? 생물선생님이 물었어.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어. 제대로 말을 못할 정도로 엉망으로 울고 있었으니까. 선생님은 한동안 울고 있는 나를 보고 서 있었어. 잠시 후, 선생님은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어. 그러더니 오른손으로 내 뺨을 들어 올렸어. 그리곤 가만히 내 눈을 바라보았어. 수업시간에 마주쳤던 그 눈빛이었어. 예쁜 애가 이렇게 울면 안 돼. 생물선생님은 말했어. 그리고 왼손으로 내 눈물을 닦아주었어. 속눈썹을 스치는 선생님의 손길이 느껴졌어. 부드러운 손길이었어. 선생님은 그렇게 한동안 내 눈을 빤히 쳐다봤어. 기분이 이상했어.


이상하네.

내가?

아니. 그 생물선생님이.

응. 이상했어.


그 날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이었어.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학교에 구급차가 왔어. 웅성대는 친구들을 틈으로 담임선생님이 보였어. 정신을 잃은 선생님이 구급차에 실려 가고 있었어.


무슨 일이야?

뇌출혈. 갑자기 쓰러지셨대.


정말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슬로우 모션으로 천천히 재생되는 그 광경을. 나는 지켜보고 있었어. 창가에 그냥 우두커니 서서.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어. 그렇게 점심시간이 끝났고 5교시는 국어 시간이었어. 그런데 이명이라고 하지?


응?

귀에서 계속 반복되는 소리가 울리는 거 있잖아.

응.

내가 그랬어. 삐요삐요. 왼쪽 귀에 울리다가, 오른쪽 귀에 울리다가. 계속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어. 귓가에서 작고 끈질기게.


국어선생님은 세련된 사람이었어. 마흔이 넘었는데도 나이가 무색할 만큼 예뻤어. 언제나 풀 메이크업에 스타일리시한 옷차림이었어. 나는 국어선생님의 손톱이 기억나. 길고 매끄러운 손톱, 깔끔하게 정리된 큐티클, 패턴 없는 누드톤 네일 컬러. 선생님은 몽당 분필은 절대로 사용하지 않았어. 수업 때마다 새 분필을 꺼내 들고 깨끗한 칠판 가득 필기하는 걸 좋아했어. 국어선생님은 그런 사람이었어. 정돈된 사람, 깔끔하게 관리된 미인. 그런데 딱 한 가지가 부족했지.


뭐가 부족했는데?

기품.


국어선생님은 말이 많았어. 해도 될 말과 해선 안 될 말의 경계가 없었어. 일단 그녀의 입을 거치면 모든 이야기는 그럴듯한 사실이 되는 거야. 소문 만들기를 좋아했고, 그걸 퍼뜨리는 건 더 좋아했어. 여선생님들 사이에 무리를 만들어 모임을 주선했고, 눈 밖에 난 사람은 학생들 앞에서도 까대기 십상이었지. 심지어 제자들의 프라이버시도 가십으로 만들기 일쑤였어. 새파란 학생들과 총각 선생님들을 서로 엮고, 비웃고, 퍼뜨렸어. 열여덟인 우리보다 더 심했어. 국어선생님은 예뻤지만 우아하지 않았어. 세련되게 치장했지만 기품이 없었어. 그래서 나는 그 선생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정말로 그런 선생님이 있어?

난 선생님이란 직업이 도덕적이란 말은 믿지 않아.


나는 창가 세 번째 자리에 앉아있었어. 국어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웅성대는 아이들을 조용히 시켰어. 그리고 두리번거리다가 나를 발견했지. 아니, 애초에 나를 찾고 있었는지도 몰라. 국어선생님이 말했어.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너희 담임선생님이 쓰러지셨어. 예쁘다고 오냐오냐 봐줬더니 기어코 일을 내는구나. 순간 교실은 조용해졌어.


네가 뭘 잘못했니?

내가 뭘 잘못했을까?


아주 잠깐 침묵이 머물다 갔어. 교실은 금세 활기가 돌았고 국어선생님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수업을 시작했어. 나도. 여느 때처럼 잘못했다는 표정으로 맥없이 웃으면서 넘어가면 되는 거였어. 하지만 나는 웃을 수가 없었어. 그냥 멍하니 칠판만 바라보았어. 삐요삐요. 아주 작고 괴로운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어. 그때부터였어. 이후로 나의 학창시절은 통째로 사라진 거 같아. 내가 어떤 애였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교통사고를 당한 것처럼. 어딘가 쾅, 세차게 부딪혀 산산조각이 난 것 같아. 내 모든 것이.   


상처받았구나.

그게 상처일까. 상처라는 게 이렇게 단 하루 만에 사고처럼 닥칠 수도 있는 거야?

응. 한마디 말로도 사람을 찔러 죽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해.


내가 열여덟 살이었던 그해. 우리 반은 담임선생님이 없는 유일한 반이 되었어. 뇌출혈로 쓰러진 담임선생님은 큰 수술을 받았고, 몇 년 후에야 다시 교단에 설 수 있었어. 눈물을 닦아 주었던 생물선생님은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고, 나를 쏘아붙였던 국어선생님은 여전히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


기분이 이상하네.

응. 정말 이상해.


나는 오랫동안 죄책감으로 살았어. 국어선생님이 공표한 덕분에 나는 담임선생님을 죽일 뻔 한 애로 낙인이 찍혔고, 나에 대한 무성한 소문들은 뭉게뭉게 퍼져나갔어. 결국 나중에는 나조차도 그렇게 믿게 되더라. 정말로 모든 게 전부 나 때문이라고. 그래서 졸업한 후에 나는 어렵게 담임선생님을 찾아갔어.


만나서 무슨 말을 하려고?

죄송하다고. 잘못했다고.

하지만 넌 잘못한 게 없지 않아?

그렇게라도 해야 내 마음이 좀 편해질 것 같았거든.


그런데 말이야. 담임선생님은 나를 기억하지 못하더라. 나한테 이렇게 예쁜 제자가 있었구나. 어눌한 발음으로 그렇게 말하면서 허허허 웃었어.  


잔인하다.







긴 이야기의 끝에 다다르자 그녀는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넌 아직도 내가 예쁘다고 생각해?

응, 넌 정말 예뻐.

난 그 말이 소름 끼치도록 싫어.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맞아. 너는 그냥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야.

나는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짤막하게 대꾸했다.


나를 때리고 만지고 멸시하고도 잘 지내는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용서를 구할 수 있을까.


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런 그녀의 얼굴은 쓸쓸해 보였다. 어딘가 슬퍼 보이는 그 얼굴은,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내가 그녀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있을 때, 그녀가 별처럼 영롱한 눈동자로 나를 마주 보며 조그맣게 속삭였다.


정말이지 비참해.

매거진의 이전글 일요일의 감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