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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Nov 04. 2015

수요일의 우연한 손님

우리 집에 찾아온 세 마리 손님

종종 집에서 생각지도 못한 우연한 손님을 맞이할 때가 있다. 내게는 나름대로 인상 깊은 세 마리(?)의 손님이 있는데 문득 떠올라 소개해 본다.





첫 번째 우연한 손님 ‘나방 군’


내가 나방 군을 만난 건, 엄청난 열감기를 앓던 날이었다.

가을과 초겨울 사이, 일교차가 벌어지고 날이 쌀쌀해질 즈음이면 나는 반드시 감기에 걸렸다. 그날도 나는 지독한 감기에 걸려 대낮에 침대 신세를 지고 있었다.


우리 집 침실 커튼은 노랑에 가까운 베이지색이었다. 그래서 해가 쨍쨍하게 뜬 대낮에 커튼을 치면, 오히려 해 질 녘 일몰 때와 같은 로맨틱 무드를 선사했다. 감기에 걸린 나는 대낮인데도 커튼을 꽁꽁 닫아두고는 해 질 녘 로맨틱 무드를 즐기며 자다깨다를 반복했다.


나는 감기약에 취해 비몽사몽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커튼 사이로 무언가 검은 그림자가 휙,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푸르르 푸르르 커튼 구석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 두리번거리면 또 조용했다. 그리고 다시 침대에 누우면 휙, 휙. 검은 그림자가 지나가고 또다시 푸르르 푸르르 무언가 헤집고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솔직히 나는 조금 쫄았다. 내가 하도 고열에 시달려서 이제는 귀신까지 보는 건가. 은근히 귀신에 약한 나는 정말로 겁이 많은 쫄탱이였다. 쫑긋 귀를 곤두세우자 또 한참 동안은 조용했다. 등골이 싸늘하고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때였다. 또 휙, 휙, 검은 그림자가 커튼 위를 지나갔다. 나는 깜짝 놀라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고 숨을 죽인 채 조용히 다가가 커튼을 걷어 젖혔다.



푸르르르르 푸르르르르



진짜로 내 주먹만 한 나방이 족히 초당 50번의 날갯짓은 거뜬한 속도로 날개를 휘젓고 있었다. 무슨 나방이 이렇게 위협적이야. 나방은 방정맞은 날갯짓으로 창문에 제 머리를 들이박으며 푸드덕대고 있었다. 내가 태어나서 본 나방 중에 제일 크고 튼튼한 나방이었다. 그래서 나는 젊은 ‘나방 군’이라고 불러주기로 했다.



나방 군을 잡는 일은 정말 힘들었다. 옛날에 엄마한테 나방 날개에서 떨어지는 나방 가루에는 독이 들어있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나방 가루가 눈에 들어가면 실명할 수도 있대. 이런 무시무시한 이야기. 그게 정말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방 가루가 무섭기도 하거니와, 손으로 나방 군을 잡을만한 용기도 없거니와, 최대한 나방 군을 고이 살려 보내주고 싶은 마음에. 나는 투명한 비닐봉지를 들고 왔다.


그리고 나는 나방 군과 사투를 벌였다. 잡으려는 자(엄밀히 말하면, 잡아서 놓아주려는 자)와 도망가려는 곤충(?)의 끈질긴 사투였다. 젊고 커다랗고 튼튼한 나방 군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보통 나방들은 무언가 다가오면 도망가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하지만 나방 군은 위협적으로 날개를 퍼덕거리며 내게 돌진했고, 나는 몇 번이나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한참 만에 겨우 나방 군을 비닐봉지 안에 무사히 넣었을 땐, 나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다시 오른 열에 세상이 핑그르르 돌았다. 비닐봉지 안에 들어간 나방 군은 무쟈게 시끄러웠다. 할 수만 있다면 비닐봉지를 뚫고 나올 기세였다.


그래도 내 딴에는 나방 군을 8층에 놓아주면 너무 높아서 날아다니지 못할 거란 오지랖에, 펄펄 끓는 몸뚱이를 이끌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까지 내려가 아파트 화단에 나방 군을 놓아주었다.  


나방 군은 빛의 속도로 사라졌다. 그제야 나는 궁금해졌다. 나방 군은 어떻게 아파트 8층까지 올라온 거지? 참으로 젊고 튼튼한 청년 나방일세.


최근에 나는 아파트 화단에 노니는 벌새를 발견했다. 처음엔 내가 놓아준 나방 군인가. 비슷하게 생겨서 뚫어져라 살펴봤는데, 벌새가 더 통통하고 날갯짓이 훨씬 날쌔며 방정맞았다. 아무래도 둘이 비슷하게 생겼는걸. 생김새와 날갯짓으로만 보면, 어쩌면 그 둘은 먼 사촌 관계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우연한 손님 ‘참새 양’


내가 참새 양을 만난 건, 2012년 7월 19일 아침이었다. 그때 일기로 기록해 두어서 정확히 날짜를 기억한다. 그날 아침, 나는 피곤했는지 무의식중에 울리던 알람도 끄고 늦잠을 잘 뻔했다. 그런데 나는 짹짹 새소리에 눈을 떴다.


짹짹?

정말로 내 머리맡에 참새 한 마리가 짹짹거리고 있었다.



어머나, 세상에!
이렇게 자그맣고 어여쁜 참새가
여길 어떻게 들어온 거니?



나는 마치 디즈니 만화영화 속에 백설공주가 된 기분이었다... 는 건 개뻥이고,

엄청나게 놀라서 문자 그대로 으악!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나 침대에서 뛰어 내려왔다.


참새는 침대에서 콩콩 내려와, 방안에서 거실까지 막 날아다니다가 방바닥을 우아하게 걸어 다녔다. 작은 발로 총총총. 그야말로 우아한 참새 양이었다.



그때 나는 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래서 곧장 동생 방으로 달려가 동생을 마구 흔들어 깨웠다.


“우어어. 새,새. 저기 새. 참새.”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내 동생 말로는 그때 내가 아주 난리 부르스를 췄다던데, 내 동생은 되게 쿨했다. 동생은 부스스 일어나더니 에이씨, 에이씨 연신 새몰이 장단을 내뱉으며 베란다로 거칠게 참새 양을 몰았다. 그리고는 아, 몰라몰라. 폭풍 짜증을 내더니 다시 침대에 쓰러져 딥슬립에 빠졌다. 이런 인정머리 없는 동생 같으니라고.


우리 집 베란다에는 짐이 한 가득이었다. 남동생들은 왜 그렇게 택배 상자를 소중히 모으는지 모르겠다. 암튼 베란다는 남동생이 소중히 차곡차곡 모아둔 택배 상자들로 참새 양이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참새 양은 그대로 택배 상자 속으로 총총총 사라졌다.


앞서 말했지만, 엄청난 겁쟁이에 쫄탱이인 나는 참새 양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택배 상자들을 조심스럽게 하나씩 치워주고, 베란다의 창문을 모두 다 활짝 열어주고, 혹시나 모를 참새 양의 탈출실패를 위해 쌀 한 움큼과 물 한 컵을 놓아두고는 출근했다.


출근하는 내내, 참새 양이 얼른 친구들 품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5층이었던 우리 집에 참새 양은 어떻게 들어온 걸까. 창문에는 방충망이 있었는데. 아직도 미스테리하다.






세 번째 우연한 손님 ‘무당벌레 씨’


무당벌레 씨는 가장 최근에 만난 손님이다.

무당벌레 씨를 만난 그날은, 나 혼자 자야 하는 날이었다.


저녁, 거실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데 어디선가 탁, 탁. 소리가 났다. 어디서 들리는 소리지? 나는 한참을 두리번거렸는데 알 수가 없었다.


다시 또 밥 한 숟갈을 뜨니 탁, 탁. 소리가 났다.

나는 일어서서 무슨 소리인지 거실을 둘러보았다.


생각보다 선명한 소리는, 거실 천장 틈새에서 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맨질맨질한 빨간 등을 가진 무당벌레 한 마리가 이곳에 날았다가 저곳에 날았다가 하면서 놀고 있었다. 몸집이 너무 작아서 단번에 보이지 않았던 거였다.


무당벌레는 아주 작고 또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곤충이라, 정중히 ‘무당벌레 씨’라고 불러주기로 했다.



우리 집에 화분들이 있어서 찾아온 건가? 그런데 어떻게 8층까지 올라왔지? 신기하면서도 무척 반가웠다. 어렸

을 때 시골에서 무당벌레를 보면서 놀았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무당벌레 씨는 내가 혼자 밥을 먹는 동안 심심하지 않도록 탁, 탁. 소리를 내며 이 벽과 저 벽을 날아다녔다. 물론 기어 다니는 시간이 더 많았다. 나는 지난번에 나방 군처럼 고이 잡아 놓아드리고 싶었지만 벌써 깜깜한 밤이었다.


시간은 흘러, 자정이 되었다.

나는 무당벌레 씨를 깜빡하고는 침대맡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때 문득, 집안이 너무 조용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쓸쓸함이 찾아왔다.   


오늘은 왠지 좀 쓸쓸한걸.


그때 조용한 집안에 탁, 탁.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 무당벌레 씨!


침대 스탠드만 불을 밝혀둔 터라, 집안은 온통 깜깜했다. 게다가 무당벌레 씨를 발견한 거실에서 침실까지는 무당벌레 씨의 기준으로는 꽤 먼 거리였다. 그런데 무당벌레 씨는 어느새 침실에 들어와 탁, 탁. 날아다니며 놀고 있었다.


무당벌레 씨도 쓸쓸했구나. 그날 밤, 나는 무당벌레 씨가 이 벽과 저 벽을 날아다니는 소리를 들으며 책장을 넘겼다. 혼자가 아니었다. 새끼손톱만 한 손님 덕분에 나는 까만 밤이 외롭지 않았다. 무당벌레 씨가 날아다니는 소리를 들으며 배시시 웃던 나는 왠지 즐거웠다.


다음 날, 무당벌레 씨는 황금사철 작은 잎사귀 위에서 발견되었다. 나는 무당벌레 씨를 고이 잡아, 나방 군을 놓아주었던 1층 아파트 화단에 놓아주었다. 고마웠다고 인사라도 건네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무당벌레의 먹이를 검색한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무당벌레는 살아있는 진딧물을 먹고 산단다. 까다로운 식성이라 무조건 살아있는 진딧물만 먹는다고. 그럼 우리 집 화분에 진딧물이 산다는 거야?  



무당벌레 씨, 다시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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