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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Nov 12. 2015

목요일의 KTX

KTX에서 아아아 하품 귀 뚫기

오늘은 정말 소소한 이야기이다.


엊그제 전북 무주에 고등학생 진로특강을 갔다가 대전역에서 KTX를 타고 왔다. KTX는 일반 열차보다 두 배나 비쌌지만, 촉박한 시간에 쫓겨 나도 모르게 KTX 표를 결제해버린 터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즐거운 마음으로 KTX를 타 보기로 했다.


매끈한 몸체에 흰색과 파란색이 어우러진 KTX는, 역사로 들어오는 모습이 마치 스트라이크 프리덤 건담 ZGMF-X20A가 뛰어 들어오는 것 같았다. 이욜, 짱 멋져!


나는 멋쟁이 KTX에 올라탔다.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으면서 가고 있는데, 동생한테 전화가 왔다. 나는 아이퐁 6S 플러스 유저니까 이어폰을 낀 채로 전화를 받았다.


"누나, 강의했다면서? 이야, 출세했네."

"응, 진짜 좋았어. 애들 엄청엄청 귀여워!"


동생이랑 조잘조잘 한창 수다를 떨고 있는데, 갑자기 귀가 먹먹해지는 걸 느꼈다.

대관령을 넘어가는 버스를 탔을 때처럼 귀가 먹먹했다.


"땡지, 나 귀가 이상해."

"왜? 어디 아픔?"


"아니. 귀가 먹먹해. 하품하면 다시 괜찮다가 또 먹먹. 야, 지금도 그래. 아아. 아아아. 귀가 먹먹해. 이상해."

"야, 니 KTX 처음 타나."


"아니? 나 KTX 몇 번 타 봤는데? 세 번짼가? 나 많이 타 봤거든?"

"아 쫌 누나. 촌스러운 거 티 좀 내지 마. KTX 속도가 빨라서 그래."


"진짜? 속도가 빨라서 귀가 먹먹한 거야?"

"헐."


생각해보니 내가 KTX를 타 본 건, 이번이 세 번째. 앞서 두 번은 일하는 분들과 함께 오갔기 때문에 가는 내내 일 얘기만 했었다. 이렇게 혼자서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으면서 가는 건 처음이었다. 또 귀가 멍멍. 막혀버렸다.


"아아. 아아아. 신기하다 이거."

"아, 촌스러워. 누나, 어디 가서 강원도 처자라고 하지 마."


아아. 소리를 내면서 하품을 하니까 귀가 뻥 뚫렸다. 그러다가 이내 막히고 하품하면 다시 뚫리고. 이거 뭔가 재밌는데? 나는 아아아 하품 귀 뚫기에 재미가 들렸다. 전화로 듣고 있던 동생이 한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좋아. 작가 같아. 아주 순수해. 그만 끊는다. 바이 짜이찌엔. 뚝.  


나는 동생과 통화를 끝내고도 볼에 바람을 넣거나, 하품을 하면서 막힌 귀를 뚫으며 올라왔다. 참 재밌었다.  


너무 소소해서 죄송하다. 그런데 나는 정말 신기하고 재밌었다. 아아아 하품 귀 뚫기. 이 재미를 아시는 분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이거 정말 재밌지 않아요?


아아. 소리를 내다가 크라잉넛의 노래 ‘룩셈부르크’를 들었다. 아아 아르헨티나 룩룩 룩셈부르크. 크라잉넛 노래인지 노브레인 노래인지도 잠시 헷갈렸다는, 아아 정신없는 서른 살.


+) 기차에서 읽었던 KTX 매거진


기차에서 읽었던 KTX 매거진에는 아주 좋은 사진과 글들이 많아서 깜짝 놀랐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책 리뷰와 억새꽃이 만개한 '정선 민둥산' 풍경, 슬로시티 ‘청송’에 대한 아름다운 사진과 글들. 매거진을 만드는 사람들의 정성이 한 장 한 장 느껴져서 매우 좋았다.


또한, 외국인들을 배려해서 쉽고 친절한 문체를 사용하고, 기사 옆에 영어로 번역을 해두었는데. 나는 오히려 읽기 쉽게 쓴 글들이어서 더 담백하고 좋았다. 할 수만 있다면 정기구독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어쨌든 KTX를 타고 오는 내내, 촌스럽게도 아아 소리를 내면서 찰칵찰칵 조금 시끄럽게 굴었을 나. 다른 승객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정말 KTX는 여러모로 즐거운 ‘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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