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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Dec 24. 2015

목요일의 작가 수첩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작가의 기록

요즘 나는 혼자다. 집이나 카페나 거리를 오가며,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커피를 마시고 혼자 글을 쓴다. 책에 들어갈 원고를 쓰고 있는데, 초반 2주 정도는 몇 글자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 부담감이 심했기 때문이다. 내 글이 활자화된다는 건 기뻤지만, 확신도 자신도 없기에 무시무시하기도 한 일이었다.


겨우 마음을 다잡고 글을 쓰고 있다. 아니, 마음을 놓고선 글을 쓰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확신도 자신도 없다. 하지만 그냥 평소에 하던 대로 마음을 놓고 쓰는 편이 났다고 생각했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그럴듯한 허세를 갖다 붙이거나, 지저분하게 글을 장식하다 보면 나 자신에게 가장 부끄러울 것 같았다. 그 ‘마음을 놓는 것’이 가장 어렵지만 어쨌든 나의 마음가짐은 그렇다.


브런치 활동을 포함해서 꾸준히 글을 쓰기 시작한지 5개월쯤 되었다. 그동안 나는 좀 변했다.


나는 말이 줄었다.

일부러 약속을 자주 만들지 않고 혼자만 있다 보니, 딱히 대화를 나눌 사람도 없거니와 누군갈 만나도 수다스럽게 이야기하는 게 힘들어졌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글로 풀어내는 작업이 지금은 좋다.


나는 화가 줄었다.

글감을 떠올리면서 자연스럽게 내 과거를 더듬게 됐다. 이해보단 오해가 많았던 날들이었다. 나를 되돌아보니, 나는 부끄럽고 못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내가 상처를 주고 아프게 한 사람들이 종종 꿈에 나왔고, 되돌린 순 없지만, 혼자라도 그들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잘못은 저질렀지만, 그래서 인간적이었고 가여웠던 그 시절의 나도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나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혼자 밥을 먹거나 산책을 하면서 나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그중에서도 탈 것은 사람들을 관찰하는 데 아주 좋다. 버스나 지하철처럼 보통 사람들이 타는 커다란 탈 것들이라면 더더욱. 터미널과 지하철 역사 안에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두껍게 껴입은 외투 안의 삶이 궁금한 사람들이 나타난다.


나는 사람들을 관찰했다가 캐리커처를 하듯, 짤막한 단어와 문장들로 사람들을 기록해두곤 했다. 타인의 인상과 타인과 타인이 부딪쳤을 때 일어나는 어떤 상황들. 정말 별거 아닌데도 머리로는 쥐어짜 낼 수 없는 사소한 순간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펼쳐졌다. 이를테면 이런 상황들.


노인들이 많은 종로3가역, 나는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내 앞엔 다리를 절뚝이는 할아버지가 한 발 한 발 힘겹게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때 할아버지가 들고 있는 종이가방 안에 무언가 반짝였다. 칼이었다. 너무도 적나라한 쇳덩이가 왠지 싸늘해, 나는 자꾸만 종이가방을 쳐다보았다. 연한 재질의 종이가방은 한쪽 모서리가 찢어져 덜렁거렸다. 나는 갑자기 종이가방이 부욱 찢어져 버리면 어쩌나 희한한 걱정이 들었다.


고장 난 에스컬레이터를 고치는 근로자 콤비는, 에스컬레이터 양쪽 손잡이 부분에 각자의 남색 외투를 나란히 걸어두었다. 한 사람은 아기처럼 한 다리를 뻗고 털썩 앉아서 드라이버를 돌렸고, 또 한 사람은 그보다 한 칸 더 내려가 한쪽 무릎을 꿇고서 쇠붙이를 뜯어내고 있었다. 그들 앞엔 팻말 하나가 붙어 있었다. ‘조금 늦더라도 제대로 고치겠습니다’라고.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진짜 사람들은 이렇게나 무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책상 앞에선 도무지 상상해낼 수 없는 모습들이었다. 책상 밖의 풍경은 그랬다.



무주행 버스


얼마 전, 무주행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 젊은이라곤 나밖에 없었다. 신기한 일도 다 있지. 전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셨다. 모두 색색의 파카를 입고 짐 한 보따리씩 껴안은 채, 앞좌석부터 꽉꽉 채워 앉아계셨다. 내 옆자리에는 노부부가 앉았다. 버스가 출발하고 나는 잠이 들었다.


가물가물 눈을 떴을 때, 노부부는 무언가 열심히 읽고 있었다. 누추한 옷차림의 노인들이 희고 빳빳한 종이를 읽는 모습이 낯설었기 때문에, 나는 자꾸만 그들을 훔쳐보았다. 노부부가 읽고 있는 것은 편지였다. 연한 핑크색 하트와 꽃문양이 새겨진 편지지에는 커다랗고 빼뚤한 글씨가 쓰여 있었다. 손주들의 편지 같았다.


노부부는 오랫동안 편지를 읽었다. 다 읽은 편지는 서로 바꿔 다시 읽었다. 그것 역시 읽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침, 내 이어폰에서는 산울림의 '청춘'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나는 그 노래를 배경음악 삼아 노부부의 모습을 간직해 두었다.


모두가 잠든 버스 안, 앞자리 누군가의 코 고는 소리도 들리고 나지막한 텔레비전 소리도 들리고 버스의 옅은 소음도 위이이잉 들리는데, 노부부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편지를 읽고 있었다. 편지를 집어 든 노부부의 주름진 손, 좀처럼 깜박임도 없는 잔잔한 눈빛, 자연스럽게 올라갔다가 휘어지는 입꼬리, 편지를 읽는 노부부의 모습은 무척 인상 깊었다.


삼척행 버스


또 한 번은 삼척행 버스를 탔다. 아직 서울을 벗어나기 전, 바로 뒷좌석에서 어떤 할머니의 전화통화 소리가 들렸다.


"으응. 다행이래. 큰 병 아니라 하더라. 응. 응. 걱정 안 해도 된다. 야야, 전화해줘서 고맙다. 으응. 으응. 얼른 푹 쉬고 돈 벌러 가."  


하하. 웃음소리가 끊어지고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할머니는 창문 커튼을 걷어 젖혔다. 그리고 정적이 이어졌다. 나는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창문을 바라보았다. 창문 표면에 할머니의 얼굴이 반사되어 보였다. 할머니는 창밖을 바라보며 연신 눈을 깜박이셨다.


자동차와 건물들이 빽빽한 창밖의 서울 풍경과 그걸 바라보는 할머니의 얼굴이 투명하게 겹쳐졌다. 그 모습은 마치 필름 두 장이 겹쳐져 잘못 인화된 사진같았다. 나라면 이 사진을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하철 풍경


사람들이 가득 찬 역사에는 구세군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 앞에는 호피 무늬 가방을 멘 남자가 절뚝거리며 걸었다. 그는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서 힘겹게 무언갈 꺼냈다. 구겨진 천 원 한 장이었다. 그는 천 원을 구세군 자선냄비에 넣었다. 지나가는 사람은 많았지만, 선의를 베푼 건 그 하나뿐이었다. 나도 그냥 지나갔다. 부끄러움을 느꼈다.


지하철에는 제법 사람이 많았다. 아주머니 한 분이 양손에 짐을 들고 탔다. 그러자 앳된 얼굴의 여자애가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다. 아니야, 괜찮아. 손사래를 치는 아주머니 팔을 잡아끌며 여자애가 말했다. "짐 많으시잖아요. 앉으세요." 아주머니는 엉거주춤 자리에 앉았다. 여자애는 책을 꺼내 들었고, 아주머니는 머쓱한 듯 눈을 감으셨다.


두어 개의 역을 지나고 당산역, 지하철이 한산해졌다. 아주머니의 옆자리가 비었다. 그런데 아주머니, 번쩍 눈을 뜨시더니 여자애의 손을 잡아끌고 옆자리에 앉히셨다. 둘은 잠시 눈을 마주치고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곤 정면을 바라보았다. 마침 철교를 지나는 지하철 창밖으로 한강이 펼쳐졌다. 햇살이 쏟아졌다. 겨울빛은 따뜻했다.


지하철을 갈아타는 환승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시각장애인 할아버지가 막대기를 툭툭 움직이고 있었다. 코앞에 서 있지만,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디딜 박자를 몰랐다. 오가는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보았지만, 쉽사리 도와주진 못했다. 마침 나는 그 에스컬레이터를 타야 했기에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갑자기 놀라지 않으시도록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할아버지, 좀 더 오른쪽이요. 네, 거기요. 어깨를 좀 잡을게요."


나는 할아버지의 어깨를 잡고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딛도록 도와드렸다.


"땅에 닿을 때까지 여기에 서 계시면 돼요."


할아버지는 입을 꾹 다문 채 암말도 하지 않았다. 화난 듯한 얼굴엔 꼬장꼬장함이 묻어났다. 눈을 다치시곤 눈도 입도 마음도 굳게 닫으신 것 같았다. 물론 내 생각일 뿐이지만. 더 도와드리면 할아버지의 마음을 상하게 할 것 같아서, 나는 먼저 내려가 할아버지를 살폈다. 할아버지는 다행히 제대로 내려오셨다. 그리고 앞을 더듬어 걸어가셨다. 나도 가던 길을 걸었다. 자꾸만 돌아보고 싶어서 뒤통수가 간질간질했지만, 타인의 역할은 여기까지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대로 지하철 역사 안을 걸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서성이는 사람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 무언가를 파는 사람들, 멍하게 서 있는 사람들. 많은 사람을 바라보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사람들도 저마다의 사연과 삶이 있겠지. 모두가 착하지 않아도, 모두가 친절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꼭 보이는 얼굴이 전부는 아니니까. 무표정으로 종종걸음을 걷는 사람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서로 스쳐 가는 타인들에게 나는 무한한 애정을 느꼈다. 경이로움도 함께.


아마도 우린 이렇게 우주를 만드는 걸까. 나는 혼자라도 좋았다. 무수한 사람들 속에 포함된 하찮은 존재라도 좋았다. 나는 작고 작은 우주 알갱이가 되어 두둥실, 무중력으로 걷는 기분이 들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나서, 나는 이런 기분을 거의 매일 느끼고 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이름 모를 당신도, 무표정 뒤엔 따뜻한 심장이 뛰고 있다는 걸 알아요. 감사합니다.    

모두 따뜻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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