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가 있어
아이의 입소를 결정하고 입학을 기다리던 중 코로나 확진자가 폭증했다. 설마설마하던 확진자 수는 일 20만 명을 돌파했고 과연 이대로 입소를 하는 것이 맞는가 불안해졌다. 여태까지 보내지 않았는데 굳이 보낼 필요가 있나 자고 일어날 때마다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한참을 고민 끝에 이게 피한다고 될 문제인가 싶어 눈 딱 감고 원비를 내긴 했지만 내고 나서도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아이가 갈 놀이 학교는 보통의 어린이집과는 달리 첫날 1시간 여의 입학식을 제외하면 별도의 적응기간이 없다고 했다. 상담할 때도 그 부분이 의아해서 몇 번을 물었지만 원의 방침이라고 했다. 원장 선생님의 말로는 부모마다 사정이 다르니 누구는 참관을 하고 누구는 하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더 혼란을 줄 수 있어서 코로나가 아니어도 부모 참관은 어렵고 별도 적응 기간도 원래 없다고 했다. 9시부터 3시까지 바로 풀타임 등원. 아이가 정 견디지 못하면 원에서 가정으로 연락을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아이를 믿어주라는데 나는 걱정 투성이었다. 온통 저 하나 바라보고 우쭈쭈 해주는 어른들 사이에 있던 아이가 낯선 환경도 모자라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 반나절을 보내야 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다들 그렇게 한다니 괜찮은 건가 싶기도 했다.
입학을 이틀 앞둔 시점, 코로나로 인한 입학식 취소 연락이 왔다. 당장 그 어떤 적응기간도 없이 버스를 타고 풀타임 수업을 한다는 거다. 과연 이 아이가 할 수 있을까 걱정 불안 초조. 유튜브에서 주워들은 건 있어서 2주 전부터 인스타그램도 보여주고 저녁마다 좋은 곳에 갈 거라고 말해주고 친구들이랑 신나게 놀 거라고 말했지만 아이는 내 말을 전혀 듣지 않는 듯했다.
그리고 입소 날 아침.
아이는 아침부터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고 옷을 입었다. 시터 이모와 엄마 아빠가 모두 있는 아침 풍경이 낯설었을 터. 저를 둘러싼 어른들을 보며 아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시간은 흘러 버스가 올 시간이 되었고 아파트 단지 입구에는 내가 몰랐던 풍경이 있었다. 노란 버스들이 줄줄이 들어오고 아이와 엄마 또는 아빠가 손을 잡고 저마다의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등원 버스가 도착했고 상황이 파악되지 않은 아이는 버스를 타려고 하지 않았다. 들쳐 안고 버스에 앉혀 안전벨트를 채웠고 아가가 어버버 하는 사이에 버스가 닫혔고 곧 떠났다. 생각할수록 참 잔인한 처사다. 난데없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저를 다 배신한 셈이다. 웬 낯선 차에 혼자 묶어두고 다 떠나버렸으니까. 그리고 도착한 곳에도 세상 아는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처음 보는 풍경이라니. 보내 놓고도 하루 종일 월급루팡 상태로 원에서 전화가 오지 않을까 초조한 상태였다. 점심시간에 원에서 걸려온 전화가 너무 반가웠고 밥을 잘 먹었다는 말이 이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물론 아이는 많이 울었다고 했다. 왜 아니겠어.
28개월. 11월 생이라 거저먹은 나이 덕분에 4살. 주위에 비하면 꽤나 늦은(?) 첫 등원인데도 이렇게 힘든데 대체 돌도 되지 않은 아이를 어떻게 보내나 싶었다. (보내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랬더니 차라리 어리면 낫지 얘는 알 걸 다 알아 힘들단다. 아예 더 늦게 보내거나 더 어릴 때 보다거나 지금이 가장 힘들다고. 내가 너보고 가라고 했니.. 네가 심심해했지. 육아라는 것이 늘 그렇든 정답은 없다. 내가 아는 건 어차피 한 번은 겪을 일이라는 것과 이왕 시작했다면 잘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는 것뿐.
첫날부터 강행군을 마치고 온 아이는 어딘가 멍한 표정이었다. 재택근무 덕택에 하원 버스를 마중 갔다 잠시 아이를 보고 왔는데 기분 탓인지 풀이 죽은 것도 같고 어쩐지 기운이 없었다. 얼굴에 못 본던 상처가 있어 물으니 차에서 울고 불고 난리를 치다 스스로 긁혔다고 했다. 원래 한 성질 하는 아가..이기도 하고 얼마나 놀랐으면 마음이 짠했다. 다행히 퇴근해서 본 아이는 정상 컨디션을 찾은 듯했으나 다음 날이 걱정이었다. 역시나 아이는 옷을 입기를 거부했고 시터 이모가 여차 저차 해서 강제로 태우기는 했으나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원 버스에 마중 나온 이모의 볼을 잡고 뽀뽀를 했다는 말에 어지간히 반가웠구나 싶었다. 더구나 등원 첫날부터 아이의 물건들이 바뀌는 사고가 나면서 나는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였고 믿고 기다려주는 듬직한 학부모는커녕 원에 전화를 해대는 학부모가 되어 있었다.(그렇다고 아무 때나 전화를 했다는 건 아니다) 보통의 경우는 알아서 잘하겠지, 혹은 이유가 있겠지 하고 넘기는 편이지만 아이 앞에서는 그게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가지 않겠다고 발버둥 치는 아이 앞에서 다들 그렇지, 적응하면 될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나보다 주위 사람들이 안절부절이었다. 시터 이모는 안쓰러워서 못 보겠다며 버스가 떠나자마자 눈물을 훔쳤고.. 무엇보다 나를 흔들리게 한 것은 아빠의 말이었다. 다 커서 갑자기 군대를 가도 낯선 곳에 있으면 불안한데 아이가 얼마나 무섭겠냐고. 비유가 이상한 것도 같지만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질질 끌면서 적응을 시킬 수도 없으니 시간이라도 줄여보자고 했다. 더구나 아이가 3시까지 밥을 먹지 못하는 것은 문제였다. 선생님들이 도와주시기는 하지만 아직 혼자 밥을 먹지 못하고 더군다나 낯선 곳에서 밥이 잘 먹힐 리가 없었다. 아침 죽은 거들떠도 안 보고 점심도 거의 먹지 못했단 말에 당분간은 점심시간이 끝나면 아이를 데리고 오기로 했다.
원장 선생님은 월요일이 가장 힘들 것이라고 했고 역시나 월요일, 아이는 아침부터 난리가 났다. 어르고 달래서 옷을 입히고 강제로 안아서 집을 나섰다. 말도 못 하는 아이가 얼마나 다급한지 "내려줘, 집에 가자."를 할 때 이게 맞는 건지 나도 혼란이 왔지만 돌아서는 것도 답이 아니기에 아이를 또다시 강제로 버스에 태웠다. 아침에 다급하게 들려준 애착 이불을 원에서도 꼭 쥐고 있었다는 말에 자책을 했다. 유튜브에서 기관 적응할 때 물건을 들려 보내 주라고 하는 걸 보면 뭐하나. 정작 까먹는 걸. 이제라도 보냈으니 다행이라고 정신승리를 하며 이제나 저저네 원에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는데 놀랍게도 아이가 버스에 타서 안 울었다는 것이다?! 3일 차에 확실히 강도가 약해졌고 오늘은 처음 선생님과 놀이도 했다는 말에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 1시에 데리러 간 할미를 보며 두 눈이 동그래져서 우와! 를 했다는 말을 들으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랍게도 4일 차에 아이는 아침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발버둥을 치지 않았다. 물론 눈물도 보이고 가기 싫다고 이모에게 꼼짝 않고 붙어있는 건 매한가지였지만 강도가 덜해졌다. 그것이 적응일 수도 있고 체념일 수도 있지만 뭐든 아이가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기는 했다. 내가 걱정이 차고 넘치는 걸 아는 원장 선생님이 보다 못하셨는지 보내주신 3초짜리 동영상에 온 집안 식구가 안도를 하는 웃픈 광경이라니. 영상 속 아이는 짧게나마 복도를 신나게 뛰고 있었다. 밥도 잘 먹고 속이 편한지.. 응아도 했다는 말에 웃음이 났다. 대체 이게 뭐라고 이렇게 어른들이 일희일비하는 것인가. 하기사 아이의 인생에서 가장 큰 일이지. 예방주사의 배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이 쓰라린 경험.
고작 4일 차.
아이가 적응을 해나가고 있다고 하기는 무리다. 여전히 눈물바람으로 납치를 당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조금이나마 놀이를 했다는 말에 스스로 위안을 삼아볼 밖에. 이왕 시작한 사회생활이라면 불안해하기보다는 믿고 단호하게 할 필요도 있으니까. 그러다가 정 안 되면 내 아이의 속도에 맞춰 중단하면 되니까-란 마음으로 우선은 아이 앞에서는 불안해하지 않아 본다.
여전히 적응 기간이 없는 것은 아쉽기는 하다. 그렇다고 30분, 1시간 적응할 때까지 시간을 늘려가는 걸 모든 부모가 감당할 수 없고 아이들의 빠른 적응을 위해 한 번에 하는 편이 낫다는 원의 말이 틀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그렇게 해왔고 아이들은 잘 적응을 했다고 한다. 다만 최소 3살 이상의 아이들이 가는 놀이학교의 특성상 기관에 다녔을 확률이 높고 내 아이의 기질에 따라, 혹은 나의 마음에 따라 조절하는 것도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되었든 목표는 아이의 행복한 기관 생활이니까.
아가는 첫 발을 내디뎠고 한동안, 아주 오랫동안 이 길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가끔 빗겨나갈 때도 있겠지만 아마 대부분의 시간을 사회 어딘가에 속한 상태로 살아가겠지.
아이의 적응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적어지다 없어질 것이고
스스로 모든 것을 헤쳐나가야 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올 것이다.
그리고 나의 역할은 그때까지 아이가 단단해질 수 있게 돕는 것이겠지.
당분간은 험난한 아침이 예상된다. 언젠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등원 버스에 올라타면 그것도 조금 아쉬울 것 같다만 지금은 아가가 그저 덜 울고 버스에 탔으면 하는 마음이다. 어떤 아이는 등원이 너무 좋아서 주말에도 간다고 한다는데 그것까지는 바라지 않고.. (나도 그랬던 적은 없는 것 같아서) 그저 즐겁고 행복한 곳으로만 인식해 준다면 너무너무 감사할 일이다.
하루빨리 그날이 오길 바라며 너의 시작을 응원해, 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