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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북스 김희영 Jan 17. 2023

16년차 학원강사 엄마가 홈스쿨을 하는 이유는

나는 16년 차 학원 강사이고 작년에 퇴사를 했다. 사범대를 졸업 후 07년도부터 22년까지 학원 강사로 재직했다. 약 16년간 일을 하면서 수많은 아이들을 만났다.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는 그렇지만 나는 공부를 열심히 했고 성적이 좋았다. 고등학교 내내 상위권 학생이었다. 공부를 잘하면 좋은 점이 많다. 선생님들의 대우가 다르고, 나의 자존감이 높으며, 원하는 것을 얻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래서 공부는 '당연히 잘하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땐 '성적'을 우선시해야 한다. 기본적인 인성교육은 당연히 시키지만, 성적이 제일 중요하다. 아이들 성적을 올리지 못하는 학원 강사는 자격이 없다. 그래서 일하는 내내 아이들 성적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당연한 일이다. 나와 공부를 해서 성적이 오른 아이들을 보면 뿌듯했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미안했다. 성적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감당하며 일을 했다.


학원에서 수업할 때 나는 항상 예민했다. 아이들의 눈빛 변화를 재빠르게 알아채 모르는 부분을 캐치해야 한다. 아이들 전체를 살피며 한 명이라도 모르는 부분이 없도록 수업을 한다. 학교까지 갔다가 학원에 오는 아이들은 당연히 피곤해한다. 단 한순간이라도 집중력을 잃거나 졸리지 않도록 긴장을 가져가며 수업을 해야 한다. 그래서 늘 예민하게 아이들을 살펴야 했고, 아이들의 작은 실수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아쉬운 점들이 많았다. 내가 아이를 낳게 된다면 '이러이러한 것은 미리 가르쳐야지'하고 다짐한 것들이 많았다. 내 아이를 영재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 학원 강사를 하면서 똑똑한 아이들을 워낙 많이 만났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내 아이를 잘 가르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랬던 내가!! 지금 현재 '무학습 홈스쿨'을 지향한다. 올해 6살이 된 아이를 기관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돌보고 있다. 올해 유치원을 보낼지도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아이만 원한다면 유치원은 물론 학교도 보내지 않을 생각을 하고 있다.


16년간 사교육의 중심에 있던 내가 아이를 낳은 후에는 '무학습론자'로 변했다. 교육기관이 아닌 홈스쿨로 아이를 기르고 있다. 말이 좋아 홈스쿨이지 그 어떤 것도 가르치지 않는 '언스쿨'을 하고 있는 중이다. 과연 그 이유가 무얼까?




첫째, 내 아이를 낳고 나니 전달해 주고 싶은 가치가 달라졌다.


미혼일 때에는 "왜 공부를 해야 하죠?"라는 질문을 받으면,


"너희 직업은 학생이잖아. 학생이면 공부를 해야지. 그게 너희가 사회에서의 역할을 하는 거야."

"공부를 잘하면 좋은 학교를 가고, 그러면 좋은 직장을 얻고, 너희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어."

"세상이 아무리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학벌 위주의 사회야. 어쩔 수 없어."


라는 틀에 박힌 말을 해주는 선생님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 부끄럽다. 하지만 아이를 낳은 후, 나의 답변은 완전히 달라졌다. 내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담아서 해주게 되었다.


"선생님이 공부를 해보니, 열심히 해서 몇 등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더라고. 그런데 내가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해서 성적이 많이 오른 경험, 그때의 뿌듯함과 성취감은 아직도 잊히지 않아. 그 경험은 성인이 된 후에도 선생님의 자산으로 남아 있단다.


공부를 꼭 잘 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나도 무언가를 노력하면 해내는 놈이구나!'라는 경험은 학창 시절에 꼭 해 볼 필요가 있어. 그 경험을 위한 공부를 하면 되는 거야."


이렇듯 공부 자체보다는 무언가에 몰입해서 사력을 다해본 경험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내 아이에게 공부보다는 다른 것에 몰입할 경험을 줘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둘째, 현재 우리나라 교육제도에 대한 회의감이다.


교육업에 종사를 하다 보니 우리나라 교육과정이 바뀌는 것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관심을 갖고 대처를 했다. 사회는 정말 빨리 바뀐다. 내가 학원에 처음 발을 들인 07년도와 지금 23년도는 천지차이다. 07년도에는 스마트폰 자체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태어나자마자 스마트폰을 보는 시대다.


하지만 교육과정과 제도는 아직도 07년도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과연 그 교육과정으로 미래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을 길러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과 회의감이 생겼다. 굳이 학교를 보내지 않아도 별 탈이 없을 것 같다. 아니 오히려 학교를 다니는 게 아이에게 시간 낭비가 될 것 같았다.



셋째, 실제 교육 현장에 아쉬운 점이 많다.


수업 시간에 손들고 질문하는 아이에게 하나하나 대응을 해줄 수 없다. 솔직히 말하면 질문하는 아이들이 방해될 때가 있다. 수학은 특히나 사람마다 푸는 방법이 다를 수 있는데, 아이들의 모든 생각을 수용해 줄 수 없다. 수업 시간은 제한적이고 가르쳐야 할 내용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질문을 묵살하는 경우가 많다.


비교적 인원이 적은 학원에서도 이런데, 학교는 어떨지 눈에 뻔히 보인다. 아이들의 창의력을 키워주기보다는 아직까지는 주입식 교육을 하고 있다. 선생님들의 열정이 없어서가 아닌, 어쩔 수 없는 교육 현장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나는 작은 것에도 호기심을 품는 아이, 궁금한 점이 생기면 주저 없이 질문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넷째, 아이는 물과 모래만 있어도 많은 것을 배운다.


제주에 살면서 아이와 여름이면 매일 바다에 간다. 아이는 작은 삽만 들고 온 해변을 헤집고 다닌다. 이리저리 멋진 길을 만들고, 우연히 만나는 바다생물과 친구가 되고, 그 안에서 우주의 법칙을 배운다. 제주살이를 하며 '자연 육아'의 위대함을 깨닫게 되었다.


아이는 교육 현장에서보다 자연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는 걸 깨달았다.



다섯째, 아이에게는 심심해서 몸부림치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가 기관에 다니지 않으니 하루 종일 심심해한다. 엄마, 아빠가 많은 시간을 보내주는 편이지만 한계가 있다. 그래서 아이는 스스로 노는 법을 터득한다. 아이 스스로 만들어낸 놀이를 통해 무한한 상상력을 기른다.


그렇게 혼자 놀기도 지치면 아이는 심심함에 몸부림을 친다. 머리를 벅벅 긁고, 하품을 쩌억 하며, 방바닥을 구르며 멍을 때린다. 나는 아이에게도 멍 때리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 동안 아이의 창의력이 자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에게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심심해하는 아이는 스스로 학습을 한다. 혼자서 구구단을 외우고, 한글과 영어를 익히고, 숫자 공부를 한다. 무학습을 지향하며 뜯어말릴수록 아이는 배움에 대한 욕구가 샘솟는다. 심심해하는 시간 동안 아이는 많은 것을 배운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섯째,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아이가 6살이 되도록 단 한 번도 한글이나 영어, 숫자 등을 가르친 적이 없다. 책을 읽으라고 강요한 적도 없다. 그저 엄마인 내가 매일매일 묵묵히 책을 읽었다. 집 안의 티비를 없애고, 미디어 기기를 최소화했다. 6살까지 가정 보육 하는 집치고 미디어를 적게 보여주는 편이다. 대신 책은 원 없이 사주고 있다.


낮 시간 동안 자연에서 신나게 뛰어논 아이는 저녁 내내 책을 본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이는 그날의 호기심을 책으로 풀어낸다.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는 내면의 단단함으로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기관에 다니지 않으니 시간적으로 자유롭다. 취침시간과 기상시간도 비교적 여유롭다. 아이의 심심한 시간을 책으로 채워나가는 지금이 좋다.




내가 기관에 보내지 않고 '무학습 홈스쿨'을 하려는 이유를 정리해 보았다. 물론! 아이의 사회성이라던가 돌봄 문제 등 현실적인 고민 역시 많다. 아이의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가 홈스쿨을 결정하는 것도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가 좀 더 크면 이 문제에 대해서 깊은 대화를 나눠보고 결정을 할 예정이다.


우선은 내 아이의 성향에 맞는 홈스쿨을 선택한 것에 후회는 없다.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시간을 행복하게 만들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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