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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북스 김희영 Jan 31. 2023

모든 감각이 예민한 아이

예민한 게 아닌 민감한 아이

* 촉각


순둥이인 줄만 알았던 으누가 예민함을 드러낸 건 이유식을 시작하면서부터다. 먹는 음식이 까다롭지는 않았다. 으누는 주는 대로 꿀떡꿀떡 잘 받아먹는 귀여운 먹보였다. 다만 입이나 손에 조금이라도 음식이 묻으면 불편해했다. 테이블에 음식이 흘러도 마찬가지다. 바로 닦아달라고 성화였다. 


으누와 함께하는 촉감놀이는 엄두도 안 났다. 으누는 손과 발에 무언가 묻으면 질색을 하는 아이였다. 문화센터에서 하는 온갖 재밌는 놀이들 앞에서 으누는 언제나 '얼음'이었다. 단 한 번도 촉감놀이를 즐기지 않았다.


모래나 흙, 잔디를 처음 밟을 때도 그 느낌을 유난히 낯설어했다. 한 걸음도 내딛지 않고 역시나 '얼음!'. 여러 번 접하고 익숙해져야 편하게 걸었다. 그 적응 시간이 유난히도 긴 아이다.




* 시각


으누는 시각에도 예민한 아가였다. 누워만 있던 신생아 시절에도 움직이는 모빌이나 알록달록한 놀잇감보다 책을 더 좋아했다. 책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니 편안해했다.


으누는 처음 보는 모든 것에 굉장한 거부감을 갖는 아이였다. 처음 가는 장소에서는 눈을 꼬옥 감고 뜨지 않는다. 바다나 산 등 광활한 자연 앞에서도 으누는 눈을 뜨지 않았다. 새로운 자극인 눈으로 들어오는 것에 불편해했다.


특히나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한다. 키즈카페, 백화점, 놀이공원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질색을 한다. 또래 친구들이 정신없이 많은 곳도 싫어한다. 정적인 곳을 좋아하는 아이다.




* 청각


당연히 시끄러운 자극에도 예민하다. 키즈카페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그 이유다. 또래 친구들이 시끄럽게 뛰어다니며, 온갖 종류의 장난감 소리로 가득 찬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 


놀이공원이나 테마파크에 놀러 갔다가 주차장에서 돌아온 적도 많다. 불꽃놀이를 한다고 해서 일부러 찾아간 곳에서도 역시나 입장도 못했다. 으누는 시끄러운 곳을 싫어한다.








문화센터, 키즈카페, 놀이터 등 으누가 갈만한 곳은 없었다. 으누가 유일하게 편안히 머물 수 있는 곳은 도서관이었다. 


신생아 시절부터 매주 동네 도서관을 갔다. 어린이 도서관에 영유아실이 따로 있어서 기어 다니는 아이들도 머물 수 있었다. 도서관 특유의 고요함과 정적인 분위기를 으누는 좋아했다. 열심히 기어 다니며 이곳저곳을 탐색하고, 형과 누나들을 따라다니며 신나게 누볐다.


키즈카페는 질색을 하면서 도서관은 편안해하는 아이. 우리 으누는 그렇게 특별한 아이였다. 대도시(인천)에서 으누를 키우기에는 으누는 늘 특이한 아이 취급을 받았다. 늘 시끄럽고 번잡한 곳이었으니, 아이도 나도 힘들었다.




제주살이를 하며 가장 좋은 점은 으누가 안정을 찾은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매일 동네 숲으로 산책을 갔다. 숲 속에서 새소리를 듣고, 나뭇잎이 바람 소리에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흙을 밟으며, 개미가 기어가는 모습을 하루 종일 쳐다보는 것이 일과였다. 느린 자연의 시간 속에서 아이는 예민함이 아닌 민감함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관찰했다.


오후에는 바다로 갔다. 처음에는 질색을 하던 모래였지만, 아이는 곧 모래에서 종일 뒹굴었다. 모래와 물만 있으면 아이는 오만가지의 놀이를 만들어내며 하루 종일 논다. 시끄럽고 비싸기만 한 플라스틱 장난감이 아닌 자연 속 놀잇감들도 아이는 하루를 채워갔다.


여전히 아이는 모든 감각에 예민하지만, 더 이상은 불편해하지 않는다. 자연 속 놀잇감과 책 속의 지혜들로 아이는 하루를 채워나가고 있다. 




올해 6살이 되었다. 으누는 아직 기관에 다니지 않는다. 


앞에서 말했듯이 또래 친구들이 많은 곳을 불편해하기 때문에 기관에 보내는 것을 늦추고 있다. 물론 그맘때 배워야 하는 사회성도 걱정이 되긴 한다. 하지만 으누는 숲과 바다, 놀이터에서 만나는 또래들과 잘 어울린다. 먼저 가서 말도 잘 걸고, 놀이를 같이 하자고 제안도 한다. 처음 보는 친구들에게 본인의 장난감도 양보할 줄 알고, 마음에 드는 친구에게는 집에 가서 놀자고 넉살 좋게 말도 잘한다.


유치원에서의 생활을 불편해하는 아이. 다른 이들의 기준에서 보면 사회성이 떨어져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는 사회성에 대한 걱정이 되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나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또래 친구가 많은 단체 생활을 힘들어했던 나와 완전 똑같기 때문이다.


나도 7살에 첫 유치원을 갔다. 6살까지 교육기관에 다니지 않았음에도 나의 사회성에는 문제가 없다. 적당히 리더십 있고, 적당히 친구도 사귀고, 적당히 좋은 교우 관계를 맺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으누도 남들보다는 느릴 뿐이라고 생각한다. 으누만의 '적당한' 시기가 오면, 본인만의 사회성으로 잘 살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그 단단함의 시간을 기르는 중이라고 믿는다.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아이가 아닌, 세심하고 민감한 아이로 자랄 것임을 믿는다. 나는 엄마니까, 우리 으누를 가장 많이 믿고 응원하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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