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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북스 김희영 Mar 20. 2023

말이 느린 6살, 발달센터 상담기

검사결과 말이 느리지 않다... 그렇다면?

아이는 발달 과업의 모든 것이 느렸다. 18개월 때 첫걸음을 떼었고, 36개월에 말이 트였다. 특히나 또래 친구들보다 말이 현저히 느리다. 


최근에는 말이 느린 아이들이 일찍 언어치료를 받는 추세다. 나는 그 기준을 36개월로 두었었다. 36개월까지 엄마, 아빠라는 기본 발화도 제대로 하지 않는 아이를 보며 매일 걱정하고 애를 태웠었다. 그리고 36개월까지도 똑같은 상황이라면 언어치료를 받으려고 결심했었다. 


거짓말처럼 아이는 36개월이 되자마자 말이 트였다. 그동안 담아두었던 그 모든 언어들이 한꺼번에 터졌다. 역시나 때가 되면 잘 해내는 아이라고 생각하고 안심했다. 그 후에도 수다쟁이는 아니지만 아이만의 속도로 꾸준히 성장하며 언어가 늘었다. 또래보다 조금 느릴 뿐 아이는 분명 성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의 걱정은 접어두고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기로 했다.






그렇게 아이는 한국 나이로 6살, 만 60개월을 한 달 앞두고 있다. 여전히 또래 친구들보다 의사소통이 느리다. 그리고 다른 행동들도 조금씩 더디다. 


아직 기관에 다니고 있지는 않지만, 곧 초등 입학을 앞두고 있기에 더 이상 무던하게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언어치료센터 혹은 발달치료센터를 본격적으로 검색해 보았다.


제주의 시골 외곽에 살고 있기에 이런 센터에 다니려면 왕복 2~3시간을 각오했다.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아이를 위한 일이므로 기꺼이 해보기로 남편과 마음을 모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우리 동네에 오픈한 지 한 달 도 안 된 센터가 있었다. 운명적인 느낌!! 심지어 오픈 기념으로 무료상담 이벤트를 진행 중이라고 하셨다.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방문을 해보았다.






"또래보다 언어가 느리지는 않네요. 오히려 구사하는 언어는 또래보다 빠른 편이에요."


약 2시간가량 아이의 놀이행동을 관찰하신 선생님께서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다. 언어가 느려서 늘 걱정이었는데, 언어가 느리지 않다니? 


맞다. 그렇다. 말이 느려서 가려졌을 뿐 아이의 언어 구사력은 놀랍다. 최근에는 영어도 발화를 시작하여 문장을 만든다. 중국어도 간단한 단어를 조합하기 시작했다. 즉, 아이는 한 번 들은 언어에 대한 이해도와 기억력이 좋은 편이다. 그런데 왜 말이 어눌하고 느리다고 느껴졌을까?



"아이가 언어는 느리지 않은데 대근육 발달이 현저히 느리네요. 대근육 발달이 조화롭게 이루어지지 않아서 말이 어눌해 보이는 거예요. 아는 단어는 많은데 조합하는 게 느린 거죠."


"아 그런가요? 저는 아이가 젓가락질이나 가위질이 서툴러서 오히려 소근육 발달을 걱정하고 있었어요. 매일 쉬지 않고 뛰고, 산을 3~4시간씩 뛰어오르는 아이인데 대근육이 느릴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네요."


"그건 체력이 좋은 거고, 자기 몸을 컨트롤하는 능력이 덜 발달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 나이 또래가 할 수 있는 활동들을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어요. 한 발로 뛰기, 균형 잡고 걷기, 높은 곳 오르기, 무게 중심 옮기기 등과 같은 활동이 또래보다 느립니다. 현저히요."



아... 순간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했다. 킥보드, 그네, 정글짐 등 또래 친구들이 좋아하는 활동을 아이는 전혀 하지 않는다.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겁이 많은 성격, 아니 조심성이 많은 아이라고 생각을 했다. 사실 나도 그런 활동들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단 한 번도 운동장에 있는 정글짐에 올라가 보지 않았기에) 그저 나를 닮아 겁이 많다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의 그런 성격이 키우기에 수월한 면도 있었다.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으니 다칠 염려가 적었다. 그래서 혼자 두어도 잘 노는 아이기에 걱정이 적었다. 몸으로 노는 것보다 앉아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선비 같은 아이라고만 생각했다.



"본인이 몸 쓰는 일에 자신감이 없으니 가만히 앉아서 노는 걸 더 선호할 거예요. 이런 아이들이 책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몸을 쓰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혼자 노는 걸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요. 본인 몸을 컨트롤하는 데 자신이 없으니 어디로 튈지 모르는 또래와 노는 게 겁이 나는 거죠. 반면 예상 가능한 행동을 하는 어른들과는 잘 지낼 겁니다."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 하나하나가 다 들어맞았다. 용한 점집이라고 생각이 될 만큼 그동안의 고민들을 모두 하나씩 짚어 주셨다. 키즈카페를 질색하던 아이, 또래 친구가 많은 놀이터에서는 얼음이 되던 아이. 반면 혼자서 놀 수 있는 숲이나 바다를 더 선호하던 아이, 그리고 정적인 분위기의 도서관을 더 좋아하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적당히 무심하게 아이의 성장속도를 기다려준다고 생각했던 나의 육아관이 '방치'가 아니었을까 미안함이 몰려왔다. 아이의 불편했던 부분을 빨리 캐치하고 보완해 주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이의 자신감과 자아효능감을 떨어뜨린 게 나의 무지함 때문인 것 같았다. 아이에게 미안했다.


아동교육과 아동심리를 전공하고, 사교육에서 오래 종사하며 아이들을 가르쳤고, 육아 관련 책도 수백 권 접했는데... 정작 내 아이의 불편함을 해결해주지 못했구나. 미안하고 미안했다.



"아이에게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의 기질에 맞게 잘 케어해주고 계셨네요. 그리고 아이는 금방 좋아질 겁니다. 이렇게 어머님, 아버님이 함께 아이를 위해 힘써주고 계시잖아요!"



선생님의 응원에 다시금 힘을 내기로 했다. 그래, 맞아. 으누는 으누 방식으로 잘 크고 있었어! 이제라도 알았으니 최선을 다해 도와주면 되는 거지! 그리고 대근육 발달이 느린 대표적인 예가 바로 나 아닌가. 그 부분은 다 큰 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느리고 서툴지 않은가. 그럼에도 이렇게나 잘 크지 않았는가!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평소에 정말 궁금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묻지 못했던 질문을 어렵사리 꺼내보았다. 울컥,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선생님... 저... 혹시... 자폐 스펙트럼 같은 건 아니겠죠?"


선생님께서는 잠시 입을 꾹 다무셨다가 말씀을 이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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