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만신창이들의 삶 속에서 희망을 이야기한다
[친근한 초과이익 토끼 :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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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신창이의 승자는 작가가 영화 속 인물 다섯 명의 삶을 통해 고통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의미와 가치관을 사유한 짧은 에세이이다. 작가는 이 ‘만신창이’들의 삶을 비추며 결국 자신의 삶의 태도와 신념을 독자에게 전한다.
1. 불안의 시대, 경제적 자유
작년, 한 유튜버의 추천으로 한병철의《불안사회》는 읽어보았다
신자유주의 체제 안에서 우리는 늘 불안하다. 현재의 지위를 잃을까, 미래가 불행할까 전전긍긍하며 그 유일한 해법으로 ‘경제적 자유’만을 맹신한다. 나 또한 이 강박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확신하기 어렵다.
그 막막한 질문 끝에 영화감독 최종필의 에세이 《만신창이의 승자》를 만났다. 작가는 영화 속 다섯 명의 ‘만신창이’를 통해, 고통과 불안을 지우는 대신 그것을 삶의 자양분으로 삼는 다른 길을 보여준다.
2. 고통과 절망을 대하는 태도
- 철학과 문학이라는 무기
책은 재닛(내 책상 위의 천사)의 파괴된 삶을 비추며, 고통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게 해주는 ‘천사’로 문학과 철학을 제시한다. 실존의 고통은 언제나 삶의 본질에 대한 물음보다 강렬하게 우리를 덮치지만, 작가는 그럴수록 기쁨을 쌓는 일에 매진하라고 조언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영화 〈레벤느망〉을 통해 자신의 절망을 고백하는 부분이다. 여성차별적 사회안에서 낙태를 선택해야하는 절망 앞에 선 주인공 안의 고통을 보며, 작가는 자신의 공황장애와 상실의 경험을 투명하게 드러낸다. 남성 작가가 여성의 실존적 고통을 다룬 영화에 공명하며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을 꺼내 보일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은 감탄이 일었다. 그에게 절망은 제거해야 할 적이 아니라, 삶을 새롭게 감각하게 만드는 안내자였다.
3. 내 안의 ‘환희’와 ‘강’을 마주하는 법
작가는 〈파이란〉의 강재를 통해 ‘아난다마야 코샤(환희층)’를 말한다. 조건 없는 평온과 존재 자체의 기쁨. 삼류 건달 강재가 얼굴도 모르는 아내의 편지에서 느낀 그 감정은 자본주의가 가르쳐준 승리의 공식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그저 ‘인간으로 살아남음’으로써 얻는 존엄한 승리였다.
또한 〈행복한 라짜로〉의 마을 사람들 앞에 놓인 ‘건널 수 없는 강’은 우리 각자가 지닌 두려움의 실체와 닮아있다.
나에게도 삶의 곳곳에 만신창이가 되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 당시엔 죽을 것 같은 절망이었지만, 돌아보니 그 상처들은 마음이 자라는 자양분이 되어주었다. 강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용기. 그것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자유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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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매 장마다 질문을 던진다. 질문을 마주할 때마다 “빨리 답을 알려달라”고 조급해질 만큼, 그 질문들은 내 마음 깊은 곳의 고민과 맞닿아 있었다.
이 책은 단순히 영화를 소개하는 에세이가 아니다.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고통을 견디는 법’이 아닌 ‘고통과 함께 승리하는 법’을 건네는 따뜻한 처방전이다. 나는 경제적 자유라는 유일한 탈출구 대신, 죽음과 공허를 들여다보며 내가 진정 추구해야 할 가치를 사유한다. 비록 만신창이가 될지라도, 내 인생이라는 영화의 엔딩만큼은 내가 선택한 가치로 충만하길 바라며
[다이어터 치즈냥 : 아빠]
표지/문체 : 여러개의 콩깍지를 붉은 바탕 표지 전면에 내세워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기위해 가면을 쓴 나를 표현하였는데, 표지를 가만히 쳐다보니 콩깍지가 입체적으로 보이는 것이 그 질감이 느껴짐. 표지에서 콩깍지의 다양한 각도를 시각적으로 볼 수 있음. 콩깍지는 알겠으나 그 뒤의 의도는 모르겠음.
다른 책과의 차이 : ‘인생이 영화가 되고, 영화가 인생이 된다’는 영화감독의 모토를 담아 영화와 인생과 소설을 함께 설명함.
영화가 누군가의 삶을 기록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 있는가? 시간과 배경과 주인공이 다를 뿐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는 모두 비슷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는가? 영화와 소설 속 주인공의 삶을 들여다 보다 내 삶이 오버랩되어 보인 적이 있는가?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할 때면 ‘생각하는 것을 영상으로 담아내는 직업’, ‘상상력이나 감정이 풍부하고 표현하는 법을 정확히 아는 사람들’, ‘프레임 이라는 현실의 한계 속에서 이 모든 것을 표현하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 이라 생각한적이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본질적인 무언가가 빠졌던 것 같다. ‘사람들의 삶을 면밀이 관찰하여 그 삶 속에 있는 희·노·애·락을 기록하고, 그 삶의 의의를 생각하고 찾아내는 사람들. 그 의의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사람들.’
처음 책을 마주할 때는 5개의 이야기가 개별·독립적이었다, 정신병동에 오진으로 감금된 사람의 이야기가 위장 결혼한 3류 건달의 이야기와 달랐고, 택배기사, 프랑스 여성, 이탈리아 사람들의 이야기와는 같을 수 없었다. 각자의 삶 속에서 그 인생의 의미를 물었고, 그 의미를 작가 나름의 시각으로 소설을, 고서를, 경험을 통해 풀어냈다고 생각했다. 이런 접근 방식이 신선해서였는지, 그 생각의 방향이 합리적이여서인지, 작가의 생각을 엿보는 것 만으로도 읽는 내내 재미있었다.
사람들이 살아온 다양한 이야기들을 모아놓고 차례로 읽다보니 어쩌면 ‘산다는건 본질적으로 예나 지금이나 같은 행위를 하고, 비슷한 의미를 지닌게 아닌가?’ 삶의 의의를 한번 되새겨 보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가 만든 삶의 고통굴레 속에서 살아간다. 고통은 개개의 삶을 갉아먹다가 절망속에 빠뜨리지만, 벗어날 길 없이 고통을 감내하면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 우리 일상의 모습이다. 우리 일상의 모습이지만 인생은 나에게는, 나에게만 항상 더 가혹하다. 하지만, 그 어찌 할 수 없는 칼날 같은 부조리라도 정면으로 맞이하다 보면 기쁨과 환희와 희망의 순간은 언젠가 반드시 일어난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과 기쁨으로 가득찬 순간에 느꼈던 인간본연의 진정한 자아를 포기하면 안 되기에, 포기할 수 없기에, 일상이 위태롭고 황폐한 전쟁통 속일지라도, 내 마음 안에서 창조되는 행복과 꿈, 삶의 진실된 아름다움을 지키면서 일상의 풍경을 되찾아야 한다.
사람들은 각자위심을 가지고 각자도생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잘먹고 잘살기 위한 나의 생은 흘러가는 동안에 수많은 선택지를 펼치며 존재할 것이고 수많은 갈등과 슬픔을 극적으로 연출할 것이다. 그 속에서 나는 만신창이가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서히 엔딩으로 다가갈수록 그 극적인 요소가 나의 생을 더 완벽하고 아름답게 만들 것은 자명하다.
누릴 자격은 충분하다. 남은 삶의 시간을 더 깊이 사랑해보자. 만신창이의 승자.
# 현실적인 존재의 문제는 본질적인 삶에 관한 의구심보다 더 즉각적이고 강력하다 #삶의 기쁨. #삶에 대한 가치와 의미 #기쁨과 행복과 고통의 본질 #끊임없이 나아가야 하는 사람 #각자위심 각자도생 #환희 아름다운 신의 광채와 천상낙원의 딸 #시지프스의 형벌 #하나의 희망이 무너지면 또 다른 희망을 만듭니다 #행복의 모양 #고독한 늑대가 아닌 함께 사는 존엄한 인간 #운명이라는 부조리 #자유의지 #죽음에 이르는 병 절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