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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말이 Dec 28. 2022

혼기가 꽉 차면 되도록 프리패스

 꼴깍하고 침 삼키는 소리마저 조심스러운 긴장감이 맴도는 밥상이었다. 

    

큰 키에 호리호리한 체형의 훈남인 그가 한 손에 어른들이 좋아하신다는 정관* 홍삼 쇼핑백을 들고 긴장한 모습으로 우리 집에 방문했다. 어색한 긴장감 속에 다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식사를 했고 그나마 분위기를 좀 만회해보려는 형부의 노력으로 몇 마디 대화가 오갔다. 평소에도 꽤 조용한 성격인 그는 어른들이 말씀하실 때 어색하게 살짝 웃어 보이거나 차근차근 대답하는 걸로 식사 시간을 채웠다. 


 “저희 결혼하고 싶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경직된 모습으로 그가 말했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오글거리는 장면이 시작되었다. 사는 곳은 어디인지, 부모님은 어떠신지 몇 가지 질문과 답변이 오가면서 아빠의 얼굴이 어두워져 갔다.

 “아버님이 혼자 자네 키우느라 고생 많이 하셨겠어.”

 4살이나 어린 가난한 남자와 남자가 책임져야 하는 홀아버지까지 있으니, 문답이 오가는 짧은 시간 동안 남자는 마음을 졸였을 거고, 아빠는 이 결혼 허락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갈등을 하셨을 거다.

 “근데 왜 우리 처제랑 결혼하려는 거예요?”

 역시 형부다운 질문이었다. 분위기를 조금 바꿔보려는 시도도 있었을 거다.

 “사랑하기도 하고, 너무 괜찮은 사람 이라서요.”

 나중에 형부의 말에 의하면 원하는 대답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사랑해서’ 결혼한다는 대답이 필수 요소였다고 한다. (귀여운 형부)


 대화 끝에 아빠가 말씀하셨다.

 “상견례는 그냥 생략하는 걸로 하고, 날짜랑 식장은 둘이 알아서 좋은 날로 정하게.”

 예상외의 답변에 나는 놀랐다.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합리적인 사람이었던가. 우리 아빠 엄청 쿨 하시네.      

  그가 돌아가고 난 후 아빠가 벌게진 얼굴로 말씀하셨다. 

  “너는 아빠가 그렇게 선보라고 할 때는 그렇게 싫다고 한 번을 안 보더니...!!!”    

선 보라고 할 때마다 매번 거절했던 게 속상하셨나 보다. 아빠가 만나보라는 사람 한 번이라도 만나 봤으면 싶으셨나 보다. 그렇지만 아빠가 맞선을 주선할 때마다 거절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아빠는 몰랐겠지만 늘 연애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왕 결혼할 거면 올해 안에 해라.”

 화를 내는 아빠와 달리 엄마는 오히려 더 서두르고 싶어 했다.

 “엄마! 올해 이제 세 달도 안 남았는데?”

 “두 달이면 어떻고, 세 달이면 어때. 네 나이 생각하면 지금도 늦었는데. 애 하나라도 낳으려면 더 늦기 전에 가야지.”     


  반대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적극적으로 이 결혼을 막지 못할 거라는 예상은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날 그 자리에서 결혼 허락을 받아서 좋은 건 나 하나뿐이었다는 사실도 충격이었다. 

 상견례는 생략하고 알아서 날짜랑 식장을 잡으라는 아빠의 말씀은 결혼을 반대한다는 뜻이었다는 것도 동생이 알려줘서 알았다. (아.. 정말 알 수 없는 충청도식 화법!)     


 “아빠, 그렇게 말하면 언니는 반대한다는 뜻인 줄 못 알아들을걸?”

 “내 딸이 그 정도 눈치도 없을라고! 그렇게 모지리는 아닐 텐데!!”

 “언니 눈치도 없고, 모지리 맞아! 데려간다는 사람 있을 때 반대하지 말고 빨리 보내. 두 달 뒤면 언니 서른여섯인데 지금 헤어지면 언제 사람 만나서 언제 연애하고 언제 결혼해. 그러다가 나중에 머리 벗어진 40대 아저씨 데려오거나, 한번 다녀온 사람 데려오면 그땐 어쩌려고 그래. 보낼 생각이면 그냥 빨리 보내”

 그때는 아빠도 남편을 처음 본 거라 혹시 내 딸이 외모만 보고 혹해서 이 남자 선택했나 생각도 하셨다고 한다.      




 “우리 집에 처음 인사 왔던 날, 아빠가 자기 반대하는 거 알고 있었어?”

 “응 알고 있었지. 나라도 마음에 안 들었을 거야.”

 “와.. 어떻게 나만 몰랐지? 언니도 아빠가 심기 불편해하셔서 자기도 불편 할까 봐 빨리 보냈다고 하던데 그중에 나만 혼자 생글거리고 있어서 쟤만 또 분위기 파악 못하고 있구나 혼자 생각했데. 난 아빠가 되게 쿨 하게 허락하셨다고 생각했거든!”     


 그 시기에 동생은 매일 같이 시름에 빠져계신 아빠 옆에 붙어서 아빠를 설득했다고 한다. 그 결과 어차피 시킬 결혼이면 아들 하나 생겼다고 생각하기로 하셨다고. 나랑 네 살 차이 나는 동생은 남편과 동갑내기인데 동생도 오빠 한 명 생긴 걸로 생각하기로 서열 정리를 끝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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