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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말이 Dec 21. 2022

내 딸의 연애를 몰랐던 부모

“이번 추석에 결혼할 사람 인사 올 거야.”     


 폭탄 발언이었다. 제발 시집 좀 가라고 온갖 눈치와 구박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소개팅도 맞선도 거절했던 딸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난 연애 박사로 통했지만, 집에서는 워커홀릭 딸 일 뿐이었다. 단 한 번도 부모님께 나의 연애에 대해서 노출하거나 언급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딸만 셋이다 보니 워낙에 집이 엄하기도 했고, 정말 옛날 사람인 부모님께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도 않았다.      

 

 TV에 여자가 술 마시는 장면만 나와도 노발대발하시며 여자가 밖에서 저러고 다니면 절대 안 된다고 눈을 부릅뜨시고, 담배 피우는 장면만 나와도 무슨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세상 말세라고 혀를 끌끌 차실 때면 평소에는 그렇게도 안 맞는 엄마 아빠가 어쩜 그렇게 단결이 잘 되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할머니는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담배와 소주가 최고의 벗이었다.) 

 집안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언니 역시 비밀연애를 하다가 결혼 직전에 형부를 집에 인사시켰었고, 나 역시 35년 동안 남자친구를 집에 인사시키기는커녕 남자친구의 존재조차 숨기며 살았다. 

 ‘딱 한 사람!’ 

 내가 집에 데려와서 부모님께 소개할 사람은 결혼할 사람 단 한 명이면 됐다. 


 제발 선이라도 보라고 닦달은 좀 당했지만 진작에 남자친구가 있음을 밝혔다면 대체 결혼은 언제 할 거냐고 역시나 시달림을 당했을 거다. 또 내가 좀 어린 나이에 남자친구가 있음을 밝혔다면 맘에 드는 구석, 안 드는 구석 따져서 좀 더 나은 사람을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비치셨을 수도 있었을 거다.

 혼기가 꽉 찬 상태로 만나는 사람을 인사시키면 조건은 우선 둘째치고 사람을 먼저 봐줄 거라는 계산도 있었다. 조건이 마음에 안 들어도 무조건 반대는 못 할 거라는 계산.


  “너도 술이라도 먹고 좀 흐트러져 봐라.” 

연애에 관심도 없어 보이고 결혼 생각도 없어 보이는 내게 오죽하면 엄마가 농담이랍시고 저런 말까지 하실까 싶었다.      


 결혼할 사람을 데려와 인사시키겠다는 말에 부모님은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엄마의 밝은 표정만은 숨길 수 없어 보였다.

 “어떤 사람이야?”

 “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만났어. 거기 다니는 사람이야.”

 “나이는?”

 올 게 왔다.

 “나보다 네 살 어려.”

 순간 엄마 아빠 동시에 당황하는 눈빛을 포착했다. 엄마, 아빠도 네 살 차이다.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아빠가 엄마보다 네 살 많다는 거.     

 

 그래도 일단은 숙제를 끝낸 기분이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계속 타이밍만 보면서 침만 꿀꺽꿀꺽 삼키고 있었는데 에라 모르겠다 지르고 보니 우선은 좀 살 것 같았다. 또 다른 질문이 쏟아지기 전에 아무렇지 않게 방으로 들어가 자리를 피했다. 조건보다 사람을 봤는데 부모님은 어떨지 몰랐다. 아마도 부모님은 두 가지 다 보고 싶으시겠지.      


 세상 모든 결혼하는 사람들은 이런 걸 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 인사시키고, 상견례하고, 날짜 잡고, 식장에 들어가야 하는 것까지 해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난 그 시작점에서 이제 겨우 한 걸음 발을 떼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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