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통장에 있는 금액과 나의 통장에 있는 금액을 합치니 딱 떨어지게 1억이었다.(2015년 10월 기준입니다)
빠듯한 금액인 만큼 계획을 잘 짜서 낭비되는 금액이 없어야 했다. ‘한 번뿐인 결혼식‘이라는 문장을 마음에서 삭제하기로 했다. 어차피 결혼식은 내 손님보다 부모님 손님이 많을 거고, 친구들 중 가장 마지막 결혼이라 유부녀들 눈에 드레스 입은 내 모습 안중에 없을 거였다.
주말에 인천에서 하는 작은 결혼박람회에 가보기로 했다.
각 결혼식장 사진을 탭으로 보여주면서 설명해 주셨고, 스. 드. 메도 200만 원 정도에 맞춰서 할 수 있는 스튜디오를 소개해 주셨다. 머릿속으로 재빨리 계산을 해보았다. 셀프 촬영을 하려면 장소도 빌려야 하고, 소품과 드레스도 직접 사야 하고, 촬영해줄 사람도 섭외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결혼식 당일에 입을 드레스와 헤어, 메이크업은 별도로 알아봐야 했다. 차라리 200만 원 정도에 스. 드. 메를 해결할 수 있으면 이편이 더 합리적일 것 같았다. 앉은자리에서 바로 계약했다.
같은 날 오후엔 바로 식장을 보러 갔다. 다른 조건 다 필요 없고 1호선 라인으로 역에서 도보로 5분 이내에 있는 식장을 골라 인천에 한 곳, 서울에 한 곳 가보기로 했다.
인천의 식장은 역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위치하고 있었고 건물을 통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식대도 적당했고, 주차도 괜찮았다. 어두운 느낌의 홀이지만 별빛 모티브 조명 덕에 아기자기한 식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손님을 대략 200명 정도 예상했을 때 홀과 식당도 적당했다. 다만 1~2월은 비수기요금이 적용되고, 3월부터는 성수기 요금이 적용된다고 했다.
회사 업무를 따져보았다. 1월에 부가세 신고 마치고 2월에 연말정산+급여 정산까지 해야 하니 2월 안에 결혼은 무리였다. 3월에 법인 결산과 세무조정까지 마쳐야 맘 편히 식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온 힘을 끌어내서 2월 안에 법인 결산까지 마쳐 보기로 나 자신과 타협을 보았다.
“회사 업무 일정 때문에 2월 안에 결혼은 좀 무리고요, 3월부터 성수기라고 하셨는데 3월 첫 주에 하고 2월 요금에 맞춰 주실 수는 없을까요?”
“신부님, 그건 조금 어려운 일이긴 한데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계약하시면 그렇게 맞춰 드릴게요. ”
“저희가 지금 예식장을 처음 본 거라서요. 당장 계약은 좀 그렇고, 대신 오늘 안에 결정해서 연락드릴게요. 오늘 안에 계약금 입금하면 2월 금액으로 계약서 써 주시는 거죠?”
그렇게 합의를 보고 서울에 가보기로 한 식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인천에서 멀지 않아서 지하철로 30분 이내에 올 수 있었고, 역과 지하보도로 연결되어 있었다. 식장이 단독 건물은 아니라 극장도 붙어 있어서 주차가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예식홀을 보는 순간 온 마음이 사로잡혔다.
길고 긴 버진로드와 한눈에 봐도 웅장하고 고급스러운 홀이었다. 호텔 결혼식이 부럽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400명 정도의 하객을 맞이할 수 있는 홀만 남아있었기에 식장 안이 너무 휑~ 해 보일 것 같았다.
“신부님 버진로드 걸어보셔도 돼요. 한번 걸어보세요.”
그날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이 버진로드를 걷는다면 세상 부러울 게 없을 것 같았다. 정말 완벽하게 그날의 주인공이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도 처음에 봤던 식장보다 이곳을 더 마음에 들어 했다.
다만 남아있는 홀 조차도 3월에는 이미 예약이 다 되어 있어서 2월에 진행해야 한다는 점과 처음 보았던 식장보다 비용적인 부담도 조금 더 발생한다는 단점도 있었지만 이곳에서 결혼할 수 있다면 모든 상황을 감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지막으로 하객들을 생각해 보았다. 2/3 이상이 인천에서 오시는 손님들이었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한 번뿐 인 결 혼 식’이라는 문장을 마음속에서 삭제하기로 했다…. 그 문장 하나 마음에서 내보내는 게 이토록 아쉬운 일 이라니.
정말 놓치기 아까운 식장이었지만 이곳은 다른 신부에게 양보하기로 하고 처음 보았던 인천의 식장에 계약금 입금을 했다. 2월 예약 혜택은 식장 사용료 무료, 꽃장식 무료였다. 아마도 식장에선 식대로 수익을 내겠다는 뜻이겠지. 어차피 식대는 들어오는 축의금으로 정리하면 될 일이라 예식 도우미 비용 정도만 부담하면 된다는 뜻이었다.
하루 만에 결혼식 날짜를 잡고, 식장을 예약하고, 스. 드. 메 계약까지 마무리했다. 모든 게 부모님께 그를 소개한 지 일주일 만에 정리된 일이었다. 이런 추진력이면 못할 게 없었다.
이제 난 식장만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집은? 어디에서 살지?
결혼식까지는 앞으로 정확히 5달이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