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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방서가 Sep 21. 2023

프롤로그- 캐나다에 삽니다.

커리어 2막을 캐나다에서 시작한 이야기

직업은 약사입니다만.

한국에서 면허를 취득한 약사이지만 직업을 이야기할 때면 늘 면구스럽다. 나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 계속 제약회사에서 근무했다. 그나마 시간제로 용돈벌이를 하던 대학원 시절에도 병원 약국만 전전하였으니 지역 약국에서 약사들이 하는 일은 풍문으로만 들었을 뿐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인생의 어떤 큰 방향을 설정할 때, 설피 셈해놓은 미래가 있기는 했다. 회사라는 게 내가 원한다고 천년만년 근무할 수 있는 곳도 아니고 언젠가는 나도 약사 면허를 쓰기는 해야겠지 싶었다. 남의 나라에서 면허를 전환하여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캐나다에서 약사로 일을 하려면.

한국에서 캐나다 소재 약대와 동등한 학위를 취득하고 약사 면허를 받았다는 것을 인정받기만 하면, 캐나다 약대를 졸업한 학생들과 같은 조건에서 국가고시를 치를 자격을 준다. "캐나다 약대를 졸업한 학생들과 같은 조건"에서 이미 숨이 턱 막혔다. 우여곡절 합격은 하였으나, 시험만 치면 끝인 줄 알았는데 인생사 그렇게 쉬울 리가. 합격은 그저 가시밭길의 시작일 뿐이었다. 모국을 떠나 외화벌이 하기가 쉬우리라 생각하지는 않았어도 각오했던 것 이상으로 매일 가슴이 졸아들어 어디 글줄 하나 남기기도 어려웠을 정도였다. 캐나다에 온 지 2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에야 새로운 곳에서 근무할 기회를 얻어 첫 근무일을 기다리는 중이다. 


도대체 왜, 캐나다에 왔느냐면.

인생의 큰 결정이었다. 한두 가지 이유로 축약이 된다면 더 이상할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한국에서처럼 학원 돌리며 아이들 키울 자신이 없다거나 하루가 다르게 심각해지는 미세먼지 수치를 보라며 에둘렀다. 아이들을 위한 것도 분명 있었겠지만 실은 나 때문이었다. 어쩐지 한국에서는 일을 해도 하지 않아도 괴로울 것 같았다. 육아와 일 사이 그 어떤 것도 놓기 싫어서 아등바등 갈등하며 보낸 회사 생활 마지막 몇 년은 되새김질하기도 싫은 것이면서도 그랬다. 멈춰 서 볼 요량이면 차라리 비행기라도 타고 바다 건너 저 먼 나라에서 쉬어가보자는 계산이었다. 나 혼자만 괜히 느끼는 압박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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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한 기대와 냉혹한 현실 사이의 어디쯤에 지금의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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