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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방서가 Feb 08. 2024

거기서 사니까 좋으세요?

Life is trade-off

영화 <스텝맘>의 마지막 즈음에 나오는 이 대사를 오래 기억한다.

“Life is trade-off."

담배를 자유롭게 피웠더니 폐암에나 걸리고 인생 참 재미있지,라는 뉘앙스의 한 문장. 캐나다에 오면서 대략 (나름 좋았던) 직장, 물리적이고 시공간 의존적인 사회적 관계와 한국 사회의 편리한 인프라를 포기했다. 이쯤 되면 나도 계산기를 두드려 보아야지.


너와 나의 밀도 있는 시간


캐나다에서 내가 얻은 하나는 이것이다. 아이들과 나, 관계의 밀도. 한국 집의 절반도 안 되는 공간이라 진즉 잠자리 독립에 성공한 큰아이까지 방 하나에 모여 잤다. 언제까지일지 기약이 없으니 침대 프레임도 사치였던 시기, 우리는 매트리스만 옹기종기 붙여놓고 낯선 나라에 등 따습게 잘 공간이 있음에 감사하며 서로서로 손을 잡고 잤었다. 야근도 많고 출장도 많은 직장에 다닌 덕분에 큰애가 열 살이 되도록 나랑만 잠드는 일이 드물었다. 둘째는 아예 태어나서부터 캐나다에 오기 직전까지 나와는 자본 적이 없어 아빠의 부재로 애를 먹었다. 아이들이 어떻게 해야 잠이 잘 드는지 며칠을 살펴보고야 알았다. 물론 돌쟁이 아기는 아니었으니 아이들도 부단히 노력했으리라. 이곳에서 우리는 낯선 나라를 탐험하는 전우이자 탐험동지가 됐다.


이제와 풀어보지만 둘째를 낳고 나의 육아는 파란만장했다. 복직 전, 친정엄마와 함께 지낼 육아 도우미는 천지에 없기에 열 명 가까운 이모님들과 눈물의 면접을 보고는 완전히 포기했다. 복직은 못하는 건가 했을 때 시어머니 등장!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가 한집에서 두 아이를 양육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런데 구세주인 줄 알았던 시어머니는 나의 엄마 됨을 끊임없이 지적하며 인생의 큰 스승 역할을 자처하셨다. 엄마가 왜 퇴근이 늦느냐, 엄마가 왜 점심시간에 운동을 하느냐 (점심시간에도 일하고 더 일찍 퇴근하라고 하심. 그게 되냐고요..), 엄마가 왜 책을 읽느냐 (책 읽을 시간에 국 하나를 더 끓이라는 뜻), 기타 등등. 내가 한 반찬은 아이들이 먹지도 않으니 형님 (시누이)에게 반찬조리를 배워 바지런히 대여섯 가지 만들어두고 출근하라거나 회의가 밤에 있어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아이 보기가 싫어 늦게 오느냐고 타박했다. 글로 다 옮겨지지 않는 기억들이 한가득이다. 그러지 않아도 둘째가 나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아 불로 덴 것 같은 마음을 수도 없이 들쑤셨다. 아이 두 돌 되기 직전 3월에 부랴부랴 어린이집에 넣고 우리의 동거는 끝이 났지만 그때의 상흔은 지우기가 어렵다. 원죄를 따지자면 그러고도 일을 나간 내 탓이나, 두 번 다시 동거는 없으리라 눈물로 다짐했으니 어머님께도 그리 좋은 결말은 아니었을 텐데 그날들을 어찌 기억하시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여하튼 이렇게 둘째를 키우다 보니 둘째는 말 트이자마자 "엄마는 나가고 없어"라는 말부터 배웠다. 그게 또 얼마나 나를 한 맺히게 했는지.


실정이 이러하니 나는 아이들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았다. 아이들을 앞에 두고는 객관성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시야도 한몫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아이들을 나에 비추어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이것은 나를 닮았고 저것은 아니라며. 나의 아이로 태어났을 뿐 개별 존재인 것을 잊고 살았다. 가만 보니 첫째고 둘째고 참 다른 아이들이었다. 엄마 아빠의 어린 시절에 없던 모습도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기질도 다르고 성향도 다르니 반찬도 맞춤이요 케어도 맞춤이 필요했던 거였다. 학교 앞에 늘 엄마가 가고, 놀이터 지킴이로 언제나 엄마가 서있는 날들을 아이들도 바랐을까. 한국집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공간에서 제한된 놀잇감만 가지고 놀아도 그저 좋다고 했다. 어느 날엔 Home sweet home이라고 써붙이고 엄마가 있는 집이라 스위트한 거라며 신난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친정엄마가 한국에 가시고 나 혼자 애들을 보느라고 After school에 등록했을 때는 친구들은 다 집에 간 저녁에 숨이 턱에 차서 달려갔는데, 그래도 아이들은 엄마가 데리러 오는 것이 행복하다고 했다. 이것을 왜 이제껏 모르고 살았는가.


캐나다의 근무시간은 정규직 기준 주당 35시간이다. 한국은 주당 40시간으로 고작 5시간 차이이니 이것이 저녁 있는 삶을 가능케 하는 요인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여기서는 퇴근시간이 되면 모두 분주하다.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니까 서로서로 1분도 늦지 않는다. After school 선생님들도 누군가의 엄마이기에 그들도 배려하는 것이다. '당연히 아이를 돌보며 일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인프라를 포기하고 내가 얻은 것이라고 하면, 개인적인 기준에선 플러스 마이너스 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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