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심리학> 양창순 지음
약국에서 일하기 전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다. 어느 조직에든 인간 군상은 다양하고, 나 또한 십수 년간의 조직생활에서 사람 많이 겪어봤다고 고개를 내저었으나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일했던 회사에는 '어느 정도' 정제된 인간 집단만이 존재했다는 것을. 지역 약국이야말로 단 5분 후에 누가 와서 어떤 말을 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야생이 아닌가.
그런 연유로 최근에 생긴 이상한 버릇은 '오늘의 운세'를 매일 확인하는 것이다. 그것도 한국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니 시차까지 알뜰히 챙겨 한국 자정이 지난 후에 맞춰 운세를 확인한다. 다행히 아직 유로 결제까지 간 지경은 아니나 '대인관계에 적신호' 라거나 '실수를 조심하라'는 말이 있으면 괜히 신경이 쓰인다.
이성적으로 보면 얼마나 우스운지. 한두 종류를 켜서 보다 보면 이게 마치 바이오리듬처럼 등락을 반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묘하게 어긋나면서 하나는 대길이라고 추켜세우고 다른 쪽에선 대흉이라며 입을 조심하란다. 생각해 보면 좋은 일 하나쯤 없는 날이 없고,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은 언제나 조심해야 하는 것이니 '오늘의 운세'에서 말해준들 달라질 것은 없다. 그걸 알면서도 뭐라 쓰여있는지 신경이 쓰인다는 것이 웃음 포인트다.
명리학을 공부한 정신과 의사가 쓴 <명리 심리학>에 점 보는 사람들의 이유에 대한 부분이 꼭 닮아 뜨끔하면서도 수긍하게 된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계획하는 모든 일이 내가 바라는 대로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불행을 가져오는 인생의 변수에서 자신만은 예외이기를 바란다. 자신의 사업에는 실패가 없고 자신이 떠나는 길에는 그 어떤 사고도 없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그것이 비현실적인 소망이라는 것 또한 모르지 않는다. 남에게 일어난 일이 내게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불안하고, 불안이 커질수록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욕구에서 더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p45-46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본래 불안 투성이다. 오죽하면 절친하게 지내는 정신과 전문의가 아무래도 나에게는 불안장애가 있는 것 같다며 야매 진단을 하기도 했다. 어른들이 우스갯소리로 천장 무너질까 두려운데 집에는 어떻게 들어앉았느냐 하시는데, 정말이지 가끔은 집 안에서 나는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예민해질 때가 있다. 인덕션을 사용하게 된 이후로 자다가도 일어나 제대로 꺼진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렇다 보니 약국 근무가 아닌 날에는 쉬다가 영어가 입에서 잘 안 나올까 봐 불안해하고, 약국 근무인 날에는 혹시 서툰 영어로 말실수를 할까 봐 혹은 더 심각하게는 처방전을 제대로 못 보고 약을 잘못 줄까 봐 끊임없이 불안해한다. (쓰고 보니 영어가 문제인가.) 최근에는 내 노력이 더 이상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내 신상이 검토되고, 미래가 결정되는 구간에 있다 보니 그 불안감이 더해졌다. '오늘의 운세'에 이어 '주간 운세', '월간 운세'까지 탐독할 지경이다. 아주 이참에 내가 직접 명리학을 배워볼까 싶기까지 하다. 실은 <명리 심리학>도 그러던 참에 읽게 된 책이다.
한국인을 샤머니즘의 민족이라고 말하는 것도 들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다들 불안했던 것 같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실패는 갈수록 두려우니까. 사주팔자라는 게 있다면 기왕지사 나를 알고, 남도 알고, 환경도 미리 알아 어떤 일에든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싶은 욕구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나라 사주팔자에만 있다는 유연하고 다채로우며 기발하기까지 한 각종 비방만 봐도 그러하다.) 이왕 정해진 사주 (태어난 생년월일시)는 바꿀 수 없고, 누구나 알듯 미래는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불안감은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 <명리 심리학> 저자는 이렇게 조언했다.
팔자를 바꾸려고 할 때 노력만큼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다. 심상, 즉 내 마음의 흐름과 그 영향을 살피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사주를 타고나도 그것을 갈고닦으려는 심상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 좋은 사주의 운을 다 발휘하지 못한다. (...) 그 기본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사는 심상을 가지면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p264-265
매일 다른 사람을 만나며 보람차게 써먹으려고 열심히 공부했는데, 그런 날들은 몽땅 까맣게 잊어버리고 내 판단이 틀렸을까 불안해하다니. 내가 더 이상 아무 일도 할 수는 없지만 그 자료 다 제출하기까지 최선을 다해 준비했는데 홀랑 잊어버리고 매일 불안하다니. 날마다 비슷한 시간에 화장실에서 몰래 애플리케이션을 켜는 나를 합리화하던 이유들에서 내가 나를 신뢰할 수 없었던 시간을 본다. 명리학을 공부할까 하다가 결론이 엉뚱하게 났지만, 누가 썼는지도 모를 글줄 몇 자에 휘청이던 마음과는 이제 작별이다. 그 대신 내 마음을 깨끗이 닦으며 노력을 더해야 할까. -'오늘의 운세' 안 보겠다는 뜻은 아님. 그건 그것대로 참고가 아니겠냐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