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사회를 얼마나 바꿀까.

<먼저 온 미래>/장강명

by 약방서가

약국 시스템이 업데이트 중이다. 처방전은 자동으로 스캔될 거고, (캐나다에 아직도 흔히 쓰이는 수기 처방전마저) 사람을 거치지 않고 입력될 거라고 한다. 소식을 전한 디렉터는 "excited"라고 했지만 같이 일하는 직원들 얼굴을 쳐다볼 수 없었던 날, 내 손바닥 만 한 세계도 언제든 낯설게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가가 인공지능에 관한 책을 썼다고? 의외의 조합이지 않나. 책에서 "나는 외국어를 잘 못하는 대신 기획력은 어느 정도 있다고 믿으니까. 사실 나는 내가 보는 현상들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구체화시키는 작업을 무척 좋아한다."라고 쓰셨는데, 거짓말은 아니었다. 설령 앞으로는 인간보다 그런 류의 작업을 월등히 잘 해낼 것이 분명한 AI가 패턴분석의 영역을 탈취할지도 모르지만, 일단 이 책은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두 번 거푸 이긴 현상'이 우리에게 남긴 의미를 꼭꼭 씹어 이해할 수 있게 해 줬다.

나는 바둑을 모른다. 심지어 알파고가 이긴 것이 이세돌인가 이창호인가 고민하다 다시 찾아보았을 정도. 바둑에는 '기세' 혹은 '형세'라는 모호한 영역이 있다고 했다. 설령 게임에서 졌더라도 돌을 둔 기세가 끝까지 좋았으면, 이름하여 '졌지만 잘 싸웠다' 혹은 '예술적이다'는 평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겼을 때, 바둑이 가진 예술과 스포츠의 경계를 무너뜨렸다고 했다. 이기는 게임이 재미있으니, 이제는 누구라도 바둑을 '이기려고' 둔다. 기세든 형세든 그 의미조차 불분명한 수식어는 설 자리가 없어졌다. 바둑을 해설할 때도 AI가 알려준 '승률'을 토대로 하게 된다. 전처럼 '저 형세는 대범하다' 거나 '뾰족하게 달려든다'라고 말할 수 없다. 스승을 통해 대를 이어가며 배우던 기보도 이제는 의미가 없고, AI와의 대국을 통해 발돋움하는 신예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혹시 이것을 보며 엘리트 바둑만이 살아남던 시대를 지나 모두에게 기회가 왔다고 여길지 모르겠으나 AI가 상용화될수록 정상만 살아남을 것 같다. 평범은 인공지능에 묻혀버릴 테고, 시작하는 이에게는 기회가 돌아가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내가 비범하지 않다는 사실을 빠르게 알아차릴 개인이 얼마나 될까? 곱씹을수록 입이 쓰다.


소설가는 왜 이런 현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물론, 소설가 역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창의성에 기대는 영역에는 바둑처럼 의미가 모호한 말들이 넘쳐난다. 이를테면 '인간적이다' 같은. 그 의미를 명확하게 말할 수 없다면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대작'이란 무엇일까? 대단한 문학작품에 요건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요건을 갖춘 작품이 하루에 2166편 쏟아진다면 어떻게 될까? 창의적이란 무엇일까? AI가 <안나 카레니나>가 <주홍글씨>보다 34% 창의적이라고 '분석한다면' 어떻게 될까?


저자는 AI의 시대가 공허의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고 썼다. 탁월함을 지향하지 않는 글쓰기가 작가에게 남기는 의미는 무엇일까 고민해 보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모든 직업군에서 일어날 것이다. 어느 통계에서 84% 대체될 거라고 말한 내 직업도 마찬가지다.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말한 그 모든 것들의 뒤에도 실은 AI가 있으면서 그 의미가 퇴색할 것이다. 아무렇게나 글을 쓰더라도 일정하게 지급되는 기본소득이 나의 생활을 보장한다면, 그래도 글 쓰는 일이 의미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하얀 가운을 입고 서 있되, 나를 만나는 누구라도 내가 AI의 도움을 받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내 직업의 의미와 보람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글의 절반이 물음표인 이유가 있다. 아직은 누구도 질문에 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제약업계와 건설업계의 예를 들어 공리주의에도 제약이 필요함을 설파했으나 마무리에는 힘이 없다. 이미 '특이점'을 넘어섰다는 것을 본인도 잘 아셔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싶다. 책을 다 읽으면 '먼저 온 미래'에 대해 고민을 해보게 될 줄 알았는데 읽고 나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닥치면 닥치는 대로 살아가야겠지만, 내가 밥 먹고 살 동안에는 영향을 덜 받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직은 우리가 의식이 주인'인 시대를 조금이라도 더 즐기면서. -그러고 보면 SNS 글쓰기도 클로드라는 AI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는데, '아직은' 그러고 싶지 않다. 엉망진창으로 쓰더라도 끝까지 지킬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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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바둑계에서 사용해 온 ‘기풍’이라는 단어는 현실 세계의 특정한 현상에 대한 모호한 비유였다. 따지고 보면 ‘성격’이나 ‘철학’이라는 단어 역시 그렇다. 인간은 그런 개념어와 비유에 기대어 세계를 파악한다. 언어는 도구다. 그 도구에 기대지 않는 인공지능이 언어라는 도구에 기대야만 하는 인간들보다 더 훌륭하게 과제들을 수행할 때, 언어에는 균열이 생긴다. 우리는 ‘그 말이 무슨 뜻이냐’를 비로소 제대로 묻게 된다."


"그러나 뒷좌석에 승객이 있을 때 택시 기사가 내비게이션의 제안을 거부하기 어렵듯이, 인간 의사도 AI 진단 도우미의 ‘제안’을 거부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그런 때 그의 수입은 장기적으로 어떻게 변할까? 그리고 그의 자부심은? 그의 권한과 책임은?"


"나는 AI 시대가 공허의 시대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상상한다. 평범한 인간들이 가치를 잃어버리고, 가치로부터 소외되는. 현대인은 종교로부터 멀어지면서 인간 외부에 객관적 가치가 있다는 믿음에서 멀어졌다. 현대 주류 경제학이 노동가치설을 폐기하면서 우리는 어떤 일에 내재적 가치가 있다는 믿음에서도 멀어졌다. 이제 무신론자와 자유시장주의자가 함께 합의할 수 있는 가치는 시장 가격인데, 그것은 도덕적 규범이나 사회적 가치와는 상관없는 개념이다. 이제 우리는 가치가 없다고 느끼는 일을 하면서도 적당한 급여를 받을 때, 그 일에 왜 가치가 없다고 느끼는지 잘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가 새로운 가치의 원천을 찾아내지 못하면 인공지능에 기반한 사회는 거대한 ‘죽음의 집’이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급여와는 상관없다."


"분명한 것은 현실감이라는 가치가 훼손되리라는 점이다. 우리는 현실감을 잃어버린 뒤에야, 기술로 인해 객관적 현실이라는 개념이 무색해지고 증강현실 기기 이용자들이 모두 주관적 현실 속에서 사는 때가 되어서야 현실감이 어떤 가치였는지 이해하게 된다. 2020년대는 ‘공통 현실’이라는 게 존재한 마지막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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