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인공지능은 협력할 수 있을까?

<아이, 로봇>/아이작 아시모프 - 인문살롱 독서모임 기록

by 약방서가

때때로 부지런하게 독서모임의 기록을 생성해 내는 상상을 한다. 함께 나눈 이야기가 소모되는 것이 아쉬울 때 나 자신의 역량과 영향력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된다. 그러니까 이것은 나를 위한 기록.


독서모임 인문살롱에서 우리는 인공지능 (AI)에 대해 탐구 중이다. - 분기별로 주제를 정해서 문학과 비문학을 함께 읽는다. - 첫 번째 책인 살만 칸의 <나는 AI와 공부한다>를 통해 장밋빛 청사진을 엿보았다면 이번엔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로 넘어가기 전 공존, 상생, 협력, 그리고 윤리에 대해 고민해 볼 시간. 책에 등장하는 '로봇 공학 3원칙'이 논의의 토대가 되어주리라 기대했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작고하신 지 오래되어 대부분 80년대 후반-90년대 중반 태어나 자란 책벗들에게 생소한 이름이라는 점도 선택의 이유였다. 1940년대에 쓴 소설이 이렇게나 현재에 가깝다니 다들 놀라워한 한편 인간 상상력의 끝이 어디인가 하는 점에서 불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책은 9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고 7명(?)의 로봇과 불확실한 로봇인간 1명, 그리고 슈퍼컴퓨터가 등장한다. 초기 로봇은 때로 감정을 가졌으나 '로봇다웠'고 가끔 귀여우니 하나쯤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면 후반부로 갈수록 -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마음을 읽고 고차원적인 고민을 해내고, 인간이 도달하지 못하는 영역을 사고실험만으로 넘어섰으며, 본인이 인간보다 우월함을 느끼고 자존심을 세우기도 하는 등 현재 우리가 느끼는 AI에 대한 거부감을 이입하며 읽을 수 있다. 책벗님 들은 큐티라는 로봇을 인상 깊게 기억했는데 아마 큐티의 이런 발언(?)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에게는 이성적인 존재에 합당하게 기본 명제에서 진실을 추론할 능력이 있습니다. 반면 당신은 아는 건 많지만 이성적인 판단력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당신에게 주입된 존재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인님이 책을 만드신 거지요. 먼 곳에 다양한 세상과 많은 사람이 있다는 우스꽝스러운 생각을 주인님이 당신에게 주입한 건 당시로서는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당신들은 너무 천박해서 절대적인 진실을 파악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당신이 책을 믿는 것 역시 창조주가 바라는 것이기 때문에 이 문제에 관해 더 이상 논쟁하고 싶지 않습니다.”
큐티는 나가려다가 돌아서며 다정하게 말했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요. 주인님의 거대한 계획 속에는 당신들을 위한 계획도 있으니까. 당신네 불쌍한 인간도 참여할 공간이 있고, 소박하긴 하지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면 그만한 상도 받을 겁니다.” p108

소설의 가장 중요한 윤리적 전제이자 쟁점 역할을 하는 로봇 공학 3원칙은 이렇다. - AI를 주제로 한 책에서 반복하여 등장하고 있어서 한 번쯤 들어봤을지도.

제1원칙,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해서도 안된다.
제2원칙, 제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제3원칙, 제1원칙과 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로봇 자신을 지켜야 한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수잔 캘빈 박사는 이 3원칙을 절대 신봉하는데 반해 독자인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로봇을 믿지 못한다기보다는 개발자인 인간에 대한 신뢰가 덜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분명히 누군가는 모종의 이유로 변형을 가하고 싶어 할 텐데 그랬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책에서 사고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양전자두뇌는 특정 한 개 회사가 독점 개발하는 것으로 등장하는 것 또한 이상적인 가정으로 비쳤다. 당장 휴머노이드형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회사만 해도 10개가 넘는데, 이들을 누가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인간은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인간을 가장 닮은 휴머노이드 인공지능 개발에 열을 올린다. 말 그대로 인간을 대체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인간이 하는 작업에 이족보행에 두 손을 가진 형태가 가장 적합하다고- 두렵지만 앞으로 갈 수밖에 없는 건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답답하다. 그러다 한 책벗께서 요즘 그런 이유로 실존주의 철학을 더 열심히 파고드신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목적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라면, 더욱더 치열하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현실에서 고민해 보게 된다고 하셨다. 우리는 한국사회가 유독 인공지능 개발로 인해 '밥그릇' 빼앗길 걱정을 많이 하는 것 같다고도 짚었다. 경쟁적인 사회 분위기 탓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북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인공지능이 생산성을 도맡게 될 때 인간 역할과 소득 및 복지 보장에 대해 일찍부터 논의 중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가짜노동>이라는 책도 같이 읽었다.)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은 '맥락 없음'이라고 했다. 나는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의견을 덧대어가며 고민의 틀을 깨는 대화를 들으며 그 '맥락 없음'에 대해 생각했다.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에서 자연자원 개발을 꿈꾸었던 화학자가 쓴 로봇 이야기를 읽고, 도대체 이제 무엇을 상상하며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는지 아무도 모를 것 같은 현재를 사는 우리가 이곳에서 그렇다면 앞으로 인간은 무엇이어야 할 까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맥락 없음에 대하여. 이것이 정말 '실존'이 아닐까? 미래 인간의 모습은 다시 고대로 돌아간 듯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존재를 고민하는 것이지 않을까? (음, 생산적이라는 단어는 잠시 넣어두고.) 그렇다면 아주 최악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해 주신, 언제나 발제보다 훌륭한 답을 내어주시는 책벗님들께 무한한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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