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니카는아니지만 #죽기로결심하진않았으므로
읽기에 대해 쓰기를 시작하면서 너튜브 영상 소개로 말문을 여는 발칙한 짓을 해봅니다. 누구에게나 관심 있는 영역의 컨텐츠가 먼저 눈에 뜨이게 마련이지요. 친절한 알고리즘님께서 관심사를 따라 맞춤 추천을 해 주시니까요. 저에게는 각종 '북튜버' 영상들이 상위권에 들어옵니다. 그러다, tvN 인사이트 채널을 통해 "책의 운명"이라는 영상을 볼 수 있었어요. 전체를 보고 나면 책, 특히 종이책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김영하 작가의 훌륭한 나레이션은 덤입니다. ^^
어느새 종이책의 지위는 '지식의 선봉'에서 그저 '아날로그 감성'으로 쇠락하였습니다. 지금은 완연한 영상의 시대, 영상으로 접하는 정보가 비교우위의 시선을 끄는 시대에 누가 책을 읽을까. 혹여 누군가는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전자책과 각종 매체가 활발한데 누가 굳이 종이책을 읽을까. 갖가지 담론이 오가는 한복판이니 책의 운명도 영상으로 논하는 장면이 아주 어색하진 않습니다.
김영하 작가가 출판사가 위치한 언덕을 오르며, "출판업은 분명 사양산업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해마다 줄고 있다. 그런데 오히려 책에 관한 컨텐츠는 늘었다." 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에 시선을 빼앗깁니다. 사람들은 책을 덜 읽는데, 책을 읽는 모습은 많이 '보여준다'는 뜻이겠지요. '책의 운명도 영상으로 논하는'것 역시 그런 맥락이 아닐까요. 본래 관심있는 컨텐츠를 계속 보게 되니 당연한것이라 생각하나 유독 책에 대한 컨텐츠가 자꾸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나까지 한 술 보태려니 괜히 작아지는 마음에 보여주는 것은 그만, 조용히 읽기나 하자고 마음 먹곤 했었습니다.
'세상에 나쁜 책읽기란 없다'고 믿는 저같은 책벌레에게 읽는 행위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한다는 것은 새로운 시도입니다. 그럼에도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나는 뭐 하는 사람이지?" 마흔이 가까워 정체성 고민이라니 설핏 부끄러운 마음도 드는군요. 저는 약사이고, 제약회사에서 허가등록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근무시간 중에는 데이터를 보고, 생각보다 자주 '설득하는 글'을 씁니다.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엄마사람 노릇을 좀 하고, 그리고 남은 대부분은 책을 읽거나 뭔가를 끄적대며 보냅니다. 그러모으면 대략 하루의 1/6쯤 되겠습니다. '주로 무엇을 하며 보내느냐'는 물음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정체성의 다른 이름일 수 있거든요. 그러니, 제게 '읽고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붙여봅니다. 암만 혼자서 슬쩍 붙여본 정체성이라해도 아무 기준도, 생각도 없이 그저 읽기만 한다니 저 스스로에게 의아해졌습니다. 아니 분명 뭔가 생각을 하고 읽는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진게지요.
시작하며 미리 고백하건대, 저는 다독가가 아닙니다(tmi). 절대적인 시간도 부족하거니와 빠르게 읽힐만한 책보다 묵직한 녀석을 좋아하는 탓입니다. 솔직히 까발리자면, 그런 묵직한 책들은 빠르게 못 읽는다는 뜻입니다. 그저그런 내공의 다른 이름이고요. 다독가의 포스가 넘치는 어떤 특이한 기준을 가지고 책을 읽느냐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그때의 관심사에 맞는 아이들을 굴비처럼 꿰어가며 읽는 것 정도가 특징이랄까요. 책 읽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겠지요. 별 시덥잖은 지극히 개인적인 '읽기에 대한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다면 즐거울 것 같습니다. 너의 개똥철학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댓글도 괜찮겠습니다만은, 이왕이면 이런 책 이야기는 어떠냐고 저의 생각을 다정히 물어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임시저장 글을 풀어낼 용기가 샘솟는 날 다시 오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