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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백 Apr 08. 2021

숨을 죽이다

어머니와 처음으로 만든 음식이 열무김치였다. 겨울에 식을 올리고 가족들 호칭이 익숙해지기도 전에 봄이 왔다. 열무김치 담그기는 이른 봄부터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땅에 묻어둔 항아리에 남은 묵은지를 두고 시장으로 향했다. 겨우내 묵은 맛에 싫증난 입맛을 돋우는데 이만한 음식이 없다 했다. 

어머니에게 열무김치 담그기는 일종의 의식 같았다. 통통하고 보드라운 열무를 골라 먹기 좋게 잘라 씻고 절여 버무리는데 온종일이 걸렸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한 과정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한꺼번에 많이 해두면 제 맛을 잃기 때문에 같은 번거로워도 조금씩만 담갔다. 

고향집 열무김치 담그는 날은 잔치 분위기였다. 개울 가 밭에서 솎아 낸 열무는 이파리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대궁이 빳빳했다. 대가리만 자른 열무를 절여놓고 찬밥 한 덩이에 붉은 고추, 마늘, 생강을 절구통에 넣고 쿵쿵 찧었다. 박자에 맞춰 구경꾼들 몸도 절로 흔들렸다. 커다란 통에 재료를 쏟아붓고 걸쭉한 멸치젓을 한 사발 부으면 골콘한 냄새가 진동했다. 

간을 놓고 한참 실랑이를 한 후에야 찐득한 열무 젓갈김치가 완성되었다. 줄거리를 집어 들고 고개를 뒤로 젖혀 맛을 보는 사람들 입가가 발개졌다. 밥통을 갖다 놓고 입이 째지게 숟가락질을 하고 나서야 얼굴에 포만감이 퍼져갔다. 대문을 나서는 이웃들 손에 김치보시기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도시에서의 김치 담그기는 왁자한 웃음도 없고, 흥덩한 국물에 잠긴 열무 가닥의 맛을 느낄 수 도 없었다. 나는 잔심부름을 하며 익숙하지 않은 어머니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무엇보다 대가족이 살고 있는 집에서는 정성보다는 효율적인 것이 우선이었다. 해종일 종종걸음을 쳐도 노동의 흔적은 그림자 같았다. 어머니 곁을 지키다 찻잔을 들고 마당을 거니는 옆 집 새댁이 눈에 띄면 샘나게 부러웠다. 

그녀의 신혼살림은 사진 속에 나오는 집처럼 아기자기했다. 그녀는 일층 단독에서 살았는데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책을 뒤적이거나 차를 마시며 늘어지게 하루를 보냈다. 나는 나비가 그려진 노랑 홈드레스를 입고 집안을 맴돌았다. 어디로든 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환상에 불과했다. 가끔 상상 속에서 옆 집 새댁 흉내를 내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마저도 길게 가지 못했다. 삼 년이 되어도 태기가 없던 나보다 그녀의 배가 먼저 불러왔다. 나는 독자 집안에 대가 끊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밤마다 실속 없는 태몽만 꾸어댔다. 신혼 생활은 숨죽여야 할 것들 태반이었다.

열무를 절일 때 급하다고 소금을 많이 넣으면 짜고 질기다. 반대로 조금 넣으면 제대로 숨이 죽지 않아 되살아난다.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눈대중으로 간을 해야 하는데 경험이 쌓이지 않고서는 짐작할 수 없는 수치다. 사 년 만에 태어난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쯤에야 터득하게 되었다. 눌러 두었던 내 숨도 서서히 되살아났다. 

열무가 절여지는 사이 밀가루를 풀어 불에 올렸다. 죽을 휘휘 젓다 양파와 홍고추를 믹서기에 갈았다. 쪽파도 깨끗이 씻어 썰어두었다. 잠깐 눈을 뗀 사이 풀이 부르르 끓어 넘쳤다. 엉겁결에 손잡이를 잡는다는 게 잘못해 냄비가 벌렁 뒤집혔다. 쏟아진 풀은 조리대를 적시고 바닥까지 질퍽하게 흘러내렸다. 밀물처럼 퍼져가는 모양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미끄덩한 풀기는 쉬 가시지 않았다. 나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내 조바심까지 쓸어낼 것처럼 바닥을 쓸고 또 쓸었다. 안방에 걸린 어머니의 괘종시계가 혀를 차듯 댕댕거렸다. 


풀을 다시 쑤었다. 부드러운 액체가 끈적해질 때까지 눈을 떼지 않고 정성스레 저었다. 풀이 식을 때를 느긋하게 기다려 온기가 사라진 후에야 젓갈을 넣고 양념과 섞었다. 마지막으로 손목에 힘을 빼고 여린 열무에 골고루 간이 배도록 살살 버무렸다. 답답해 보였던 어머니 방식 그대로다. 홀로 다섯 자식을 키워낸 어머니에게 밥상은 배를 채우는 것 이상의 의미였다. 손수 만든 음식에 따뜻한 밥을 해 먹이는 일이 자식들을 지켜내는 일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열무는 익을 무렵 다시 한번 되살아난다. 그대로 두면 한껏 부풀어 오르다 넘치지만 냉장고에 넣으면 찬 기운에 언제 그랬냐는 듯 가라앉는다. 그 안에서 또 한 번 숨죽인 시간을 보내고서야 제 맛을 낸다. 내 숨에도 언제쯤 여유라는 양념이 더해져 숙성이 될지, 나는 또다시 조바심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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