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곳이 귀신이 사는 집 같아 소름이 돋았다. 산 사람으로 들끓는 장터 한복판에 들어앉은 상엿집이 어린 눈에 이상하기만 했다. 늙수그레한 남자가 자리를 지키는 상점 한쪽에 새색시처럼 단장한 꽃상여가 놓여 있었다. 하르르 얇은 종이꽃의 화려한 색깔에 온통 눈길을 빼앗겼다. 바람에 흔들리는 모양이 나를 부르는 손짓 같아 잡고 있던 어머니 치맛자락을 놓쳤다. 장꾼들은 무심히 그 앞을 지나갔다.
사람과 차량으로 넘쳐나는 대로변에 죽음을 예약한 고층 건물이 보였다. 임사체험장이란 팻말 때문인가. 벽면에 알록달록 붙여놓은 글씨들이 상여에 매달린 꼭두 같았다. 어른들은 나무로 만든 인형 꼭두가 먼 길을 떠나는 망자의 길동무가 되어 준다고 했다.
시간이 되자 체험장에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서로 외면하고 앉은 중년의 부부, 세상을 달관한 듯 무심한 표정의 어르신, 의자 깊숙이 몸을 숨기고 있는 아가씨, 밝은 표정의 청년들. 저들은 무슨 사연이 있어 이곳에 왔을까. 나는 왜 이곳에 오고 싶었을까.
영정사진을 찍는데 사진사는 자꾸만 환하게 웃으라 했다. 나는 어정쩡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바로 인화된 사진이 검은 띠를 두르고 탁자 위에 차례대로 놓여졌다. 사진 속 주인공들은 자신의 모습이 마땅찮은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들여다보았다. 내 얼굴도 퀭한 눈에 팔자 주름이 유난히 패여 보였다.
계단을 오르니 넓은 방에 수십 개의 관이 놓여있다. 부모와 형제를 떠나보내며 나도 저렇게 떠나겠거니 했지만 막상 관 앞에 서니 섬뜩했다. 들고 온 영정사진을 옆에 놓고 수의를 입었다. 주검 옷이 낯설지 않았다. 어머니는 당신의 수의를 직접 지었는데 나는 재봉틀 앞에서 옷감을 잡아 당겼다. 노루발에 눌린 삼베가 바늘땀을 받아내며 줄줄이 딸려 나왔다. 앉은뱅이 재봉틀 건너 눈이 마주치면 어머니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주검 옷은 마루 시렁 위 긴 석작에 모셔졌다. 어머니는 궂은날이면 개켜진 옷을 펼쳐놓고 흐뭇한 표정으로 매만지곤 했다. 아직 살아있음에 대한 안도였을까. 아니면 죽음을 단지 두려움이 아닌 자연스러운 이치로 받아들였던 것일까. 나는 석작을 열 때마다 어머니가 곧 죽을 것만 같아 쳐다보기도 싫었다.
유언장을 쓰는데 여기저기서 깊은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무슨 말을 써야할지 몰라 허공만 바라보았다. 그새 다 쓴 사람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유서를 읽어 내려갔다.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지만 유언장 속에 등장한 인물들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들이었다. 사랑한다는 그 흔한 말은 들어도 들어도 물리지 않은 말이 아닐까. 돌아가며 유언장을 읽는 사이 자리마다 휴지가 수북이 쌓여갔다.
발표가 끝나갈 때까지 나는 백지를 앞에 두고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나라고 그들과 다를 것이 있을까. 무엇보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시간이 후회스러웠다. 주변의 요구와 기대에 맞추느라 급급해 내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꾹꾹 누르며 살았다.
쾅! 하고 뚜껑이 닫혔다. 탕! 탕! 탕! 못 박는 소리가 가슴까지 울려왔다. 사각의 통나무 틀 속은 내 한 몸 누이기에 충분했다. 서서히 땅속으로 내려앉는 것 같았다. 살아온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이렇게 마지막을 맞는 거구나. 항상 내 곁에 도사리고 있던 죽음의 그림자가 찰싹 달라붙는 것만 같았다. 꼭 감은 두 눈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흐느끼다 잠이 들었던가. 요령잡이의 앞소리와 상여꾼들의 뒷소리를 들으며 나는 꽃상여의 주인공이 되어 공중으로 둥실 떠올랐다.
“백년 집을 이별하고 만년 집을 찾아 가네. 어널~어널~어허이, 어화널.”
아래를 내려다보니 당산나무가 있는 고향마을이다. 상여는 당산나무를 한 바퀴 돌고 마을 앞을 지나 들판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건넜다. 휘적거리는 만장과 요령소리를 앞세우고 상여는 앞산으로 향했다.
한참을 실려 가는데 어디선가 ‘까톡’하는 소리가 울렸다. 살려달라는 신호처럼 여기저기서 관 뚜껑이 열렸다. 나는 오늘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이곳에 왔던 것일까. 여기는 휴대폰 소리가 들리는 지상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