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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백 May 25. 2022

태도가 (    )이 될 때

박보나의 《태도가 작품이 될 때》


                          

눈을 뗄 수 없다. 너무 슬퍼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그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다.  남자의 얼굴에 내 얼굴이 겹쳐진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은, 아니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일순간 차오르는 호기심에 책장을 넘긴다.  


지리산 반달가슴곰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지리산에 48마리의 곰을 방생해 개체수를 늘리는 사업을 하는데 그중 KM-53이라는 이름을 가진 곰은 팔십 킬로나 떨어진 김천 수도산으로 계속 도망을 친다는 것이다. 잡아다 지리산에 풀어놓으면 매번 다시 탈주를 시도한다. 그 이유가 더 나은 서식조건을 위함인지, 단순히 재미 때문인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새로운 곳을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러다 철학자 아사다 아키라가 《도주론》이라는 책에서 언급한 인간형을 끌고 온다. 과거의 모든 일을 짊어지고 적분처럼 통합하는 편집증형 인간과 매번 새로운 제로 시점에서 미분의 차이를 가지는 분열증형 인간으로 구분하는데, 자신은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 분열증형 인간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정해진 곳에서 얌전히 살고 있는 곰들보다 낯선 곳을 향해 다른 길을 달리는 한 마리의 곰에 마음이 끌리는 이유일 것이다. 시작부터 재미지다. 


저자 박보나는 영상, 사운드,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미술가다. 전시와 예술 작품을 전통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관객들에게 새로운 관람 태도를 제안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태도가 작품이 될 때》는 첫 미술 에세이로 동시대 열일곱 명의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바스 얀 아더르(책 표지 인물)의 ‘놀고, 떨어지고, 사라지려는 의지’. 조이 레너드의 ‘나는 레즈비언 대통령을 원한다’. 박영숙의 ‘미친년들이 만개할 세상’. 얀 보의 ‘시적인 것의 섬뜩함’ 등. 작가들의 작품 제목을 그대로 올려놓아 목차부터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그렇다한들 아무 정보 없이 이들의 작품을 마주 했다면 무엇을 읽어낼 수 있었을까. 저자는 자신만의 명확한 태도로 세상과 예술을 바라보고 다양한 각도로 작품을 해석한다. 이를 거울삼아 낯선 시선들에 흠뻑 빠져 작품을 접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는 짜릿함을 맛보았다. 


저자는 말한다.  

책에 나오는 작가들은 익숙하고 편안한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작업을 시작한다. 작업을 통해, 일반적이고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모든 것을 의심스럽게 바라보며 질문을 던진다. 이들의 작업 방식은 분열증적 삶의 형태에 가깝다. 그렇게 세상을 비껴보는 태도가 이 작가들 작품의 큰 중심이다. 태도가 작품의 내용과 형식을 구성한다.


상식이라는 질서를 거부하는 그들의 몸짓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얼마나 허점투성이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삶에 대한 애착 어린 관심과 남다른 통찰력으로 일상의 균열을 알아차리는 예술가들이야말로 시대의 대변인이 아닐까.      


나도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 KM-53이 좋다. 그를 따라 탈주를 시도한다면 괄호 안을 채울 낱말들이 무궁무진해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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