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에 꼬리를 단 색색의 불빛들이 떠다녔다. 대보름날 깡통을 들고 뛰어다니던 들판 같다. 친구들과 뒤섞여 내지르던 함성이 들리는 것도 같고…나는 홀린 듯 그들 속으로 끼어들었다. 발이 밟히고 어깨가 부딪혔다. 두꺼운 방패가 거추장스러워 온몸을 뒤틀었다. 자네와 난 보약 같은 친구야~~~리듬에 맞춰 몸이 흔들렸다.
친구들과의 대면은 매번 어색했다. 그들은 나를 두 팔 벌려 끌어안지도, 그렇다고 밀어내지도 않았다. 모임이 있는 날이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숙제하듯 눈도장만 찍고 돌아왔다. 그리웠던 것은 그들이 아니라 떠나온 곳에 대한 아쉬움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들과의 추억은 열두 살까지가 전부다. 초등학교 동창모임에 나를 부른 건 그들이었다. 졸업사진에는 없지만 동창으로 받아주겠노라며 초대했다. 감나무집 딸, 말이 없던 아이, 전학 간 후 소식이 끊긴 아이, 그래서 궁금했단다. 누구랄 것 없이 살던 마을과 집안 내력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터라 삼십여 년이란 세월의 덮개가 일순간 벗겨졌다. 고무줄을 끊던 머시매도, 코 찔찔이도, 짧은 단발 가시내도 모두 모여 있다.
오래전부터 만나오던 그들은 왁자그르르하게 웃고 떠들었다. 서울 한복판이 남도 끝자락으로 변해갔다. 술기운으로 격앙된 목소리와 억센 사투리가 음식점을 통째로 삼켜 버렸다. 나는 자리를 잘 못 찾아온 사람처럼 새초롬하게 앉아 옆 테이블 손님들 눈치를 살폈다. 한껏 멋을 부리고 나타난 나를 보며 도회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그들도 알았을 것이다. 촌티를 벗어내느라 얼마나 부대꼈는지, 꿈속에서 너희들을 만나다 깨어나면 울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분위기가 달아오를수록 그리웠던 유년의 기억으로부터 도망쳤다.
선을 그은 건 나였는지 모른다. 아니, 나였을 것이다. 그들이 다가오면 물러서고 먼저 다가가려 애쓰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도시로 온 나는 어수룩하게 보이지 않으려 차지게 굴었다. 나를 지키기 위한 방패 같은 것이었다. 그들을 만나면서 내 모습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사투리를 뱉어내고 같이 술잔을 부딪쳐도 쉬 섞여들지 못했다. 태생대로 자신을 드러내는 그들 곁에서 나는 자꾸 주눅이 들었다. 내 속내를 들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바심이 났다.
그런데 그들은 병원 신세를 질 때 응원 메시지를 보내오고, 애경사가 있을 때마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주었다. 내 수필집을 받아 들고 제 일처럼 뿌듯해한 것도 그들이다.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라도 득달같이 달려갈 위인들이다. 친구가 곧 고향이라고 입으로만 내뱉는 번지르한 나의 겉말을 그들은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지난가을 고향나들이에 따라나섰다. 그들은 오랜만의 여행에 들떠 음식까지 푸짐하게 장만했다. 관광버스 사정은 예전과 달랐다. 마스크와 안전벨트에 묶여 꼼짝달싹 할 수 없었다. 여기저기서 고장 난 몸 타령이 길게 이어졌다. 자식걱정에 언제 끝날지 모를 밥벌이의 고달픔까지 곁들여져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무거워진 공기를 바꾸려는 듯 누군가 학교변소 낙서사건을 들먹였다. 내게 그 애와 진짜 뽀뽀는 했느냐, 그 때문에 전학을 갔느냐며 새실댔다. 그들은 그동안 궁금했던 의문을 풀려는 듯 일제히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는 뜸을 들이다 실은 벽에 휘갈겨 쓴 것처럼 손도 잡고 뽀뽀도 했다고 농말을 던졌다. 일순간 폭소가 터졌다.
그사이 버스가 휴게소에 이르렀다. 버스기사는 문은 열지 않고 별안간 신나는 트롯을 틀더니 볼륨을 한껏 높였다. 쿵쾅쿵쾅, 꿍짝 꿍짝. 커튼을 친 어두운 실내에 오색 조명이 휘돌아 쳤다. 그들은 안전벨트를 풀어 제치고 스프링처럼 통로로 튕겨져 나갔다. 세파에 치이고 세월에 삭은 몸을 둠칫 두둠칫 흔들기 시작했다. 그들을 따라 나도 두 팔을 휘둘렀다. 꼬리를 물고 떠도는 불꽃들 사이로 상기된 초로의 얼굴들이 두둥실 떠올랐다. 그만 놀고 들어오라는 엄마의 부름이 들려온다 해도 돌아설 수 없는 짜릿한 순간이다.
얼마나 뛰었을까. 남은 열정을 다 태워버린 후 버스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목적지를 향해 질주했다. 나는 좌석 깊숙이 기대고 앉아 깡통을 돌리던 시간 속으로 역주행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