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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백 Apr 07. 2023

왜 오지 않는가

   

집 부근 공원을 걷다 보면 매일 만나는 부부가 있다. 혈색 좋은 아내가 팔을 휘적거리며 길을 터주면 남자는 숨 가쁘게 뒤를 따랐다. 부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으면서 무슨 얘기를 그리 나누는지 연신 발씬거리며 웃었다. 그들은 일직선으로 나 있는 공원 끝과 끝을 쉬지 않고 몇 바퀴 돌고 사라졌다. 


우리 부부는 운동은 뒷전이고 손을 꼭 붙잡고 공원 소롯길을 거닌다. 남편의 따뜻한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내 손을 녹여주는 난로다.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보온용품들이 허다하지만 사람의 온기만 한 게 있을까. 


공원에서 우리가 빼놓지 않고 찾는 장소는 외진 곳에 있는 벚나무 아래다. 가지가 많고 튼실한 두 그루가 마주 보고 서 있는데 유난히 서로를 향해 기울어 있다. 봄이 되면 벚나무의 두근거림이 꽃으로 피어난다. 어느 날 환하게 열린 나무아래 부부가 서 있었다. 이참에 아는 체를 해볼까.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망설이는 사이 그들은 자리를 떴다. 


한동안 집 근처 병원에서 가족 병간호를 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병실 복도를 지나가는 남자가 보였다. 공원에서 운동을 할 시간인데 무슨 일일까. 남자는 맨 끝에 있는 병실 앞에서 멈칫하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부인과 걸을 때면 하얀 이를 드러내던 남자의 입이 무겁게 닫혀 있었다. 다음날도 같은 시각에 복도를 지났다. 혹시 아내가 아픈 걸까?


얼마 후 부부를 공원에서 다시 만났다. 아내는 예전과 다름없이 공원을 활보했다. 그러면 그렇지. 병약해 보이는 남자라면 몰라도 건강해 보이는 아내가 아플 리 없었다. 안심하고 지내는 사이 또다시 남자는 혼자가 되었다. 한 달, 두 달, 석 달…. 아내가 보이지 않는 날이 길어졌다.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우리는 저녁마다 아내를 찾아내기라도 할 것처럼 공원을 배회했다. 나는 남편이 혼자 남겨질 뻔했던 기억 때문에 자꾸만 남자에게 마음이 쓰였다. 


몇 해 전 나는 암 진단을 받았다. 병원 문을 나서는데 눈을 뜨고 있어도 멀어버린 듯 앞이 캄캄했다. 내 앞에서 뚝 끊겨버린 것 같은 세상은 아랑곳 않고 무심히 흘러갔다. 팔 차선 도로에서는 차들이 지나가고 사람들은 유령처럼 내 곁을 스쳐갔다. 나라는 존재가 바람에 팔랑거리다 내려앉은 꽃잎처럼 금방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살아온 날이 물거품 같아 전신에 힘이 풀렸다. 더 이상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길 한가운데 우뚝 멈춰 섰다. 늘어선 벚나무에 매달린 꽃들이 화사한 봄볕에 온몸을 흔들며 반짝였다. 나는 살고 싶었다.


수술을 마치고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다닐 때는 한겨울이었다. 서른세 번의 치료를 받는 동안 우리는 맞잡은 손에 서로를 의지하며 벚나무 밑을 지나갔다. 몸뚱이는 떨어져 있지만 하늘 위에서 가지로 맞닿은 나무는 벗은 몸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서 있었다. 우리는 손을 놓치게 될까 전전긍긍했다. 나무의 검은 몸뚱이에서 꽃이 피고 잎이 돋기를 기다렸다. 그쯤이면 내 몸에도 봄바람이 불지 않을까. 


남자는 오늘도 혼자다. 우리는 여전히 알아도 모르는 사이다. 엇박자로 걷는 남자가 혹시 넘어질까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다본다. 벚나무는 한껏 꽃을 피우고 있는데 그의 아내는 왜 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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