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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백 Jun 09. 2023

호모 비아토르

          

너무 먼 곳까지 왔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버스는 해변가 마을을 샅샅이 더듬어 돌았다.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진 바다를 보며 감탄이 지루함으로 변한 후에도 목적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두어 시간을 달렸을까. 버스는 한적한 길에 나를 떨궈놓고 사라졌다. 


제주에서 살아보기는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일이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보름이나 한 달 살이 집들이 수두룩하다. 마음에 드는 집은 이미 예약이 끝났고, 공항과 거리가 먼 곳만 남아있다. 그 중 성산일출봉과 표선 중간 지점에 있는 ‘신천리’라는 마을이 눈길을 끌었다. 길을 따라 담벼락에 그림이 그려져 있어 벽화 마을이라고도 했다.


표지판을 따라 입구에 들어서자 무더기로 펴있는 동백꽃이 먼저 반겼다. 바람에 흔들리는 몸짓에 덩달아 마음이 달떴다. 내친김에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열기를 구멍으로 뿜어낸 화산석이 발길에 채였다. 사방으로 나 있는 도로를 끼고 집들은 하나의 섬처럼 뚝뚝 떨어져 있다. 


하귤이 탐스럽게 열린 숙소에 들어서자 노부부가 반가이 맞아 주었다. 열한 평짜리 원룸 창밖으로 키 큰 워싱턴 야자나무와 그 너머로 하늘과 맞닿은 바다가 보였다. 침대에 벌렁 누웠다. 누군가 머물렀던 흔적인지 이름모를 향내가 코끝을 스쳤다. 


콩나물을 씻다가도 불쑥 떠나고 싶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면 그물처럼 얽힌 관계 속에서 용암처럼 달궈진 열기를 뽑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딱히 무엇으로 규정되지 않아도 되는 낯선 곳이 좋다.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으려 떠나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아침이면 일출을 보기 위해 달려 나갔다. 바다에는 매번 구름이 내려앉아 떠오르는 해를 감춰버렸다. 집으로 돌아오면 앞서 달려온 해가 좁은 마루를 덥혀 놓았다. 바람이 휘몰아치면 돌변한 구름이 금세 온기를 삼켜버렸다. 나의 하루도 예측할 수 없는 일기 같았다. 종일 걸어 다닐 때도 있고 어느 날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가끔은 주인아주머니를 따라 귤밭으로 갔다. 앙바틈한 체구로 삼천 평이 넘는 밭을 혼자서 가꾼다는 그녀는 몸도 입도 부지런하다. 마을에서 처음으로 경운기를 운전한 일이며, 잘 키운 자식들 서울살이 이야기에 신바람이 났다. 대학나무라 불리던 때보다 시세는 떨어졌지만 좋은 귤을 얻기 위해 사계절을 밭에서 지낸다 했다. 아주머니는 작업을 돕게 해달라는 내 청을 매번 거절했다. 나무에 가시가 달려 익숙하지 않으면 손을 다친다고 말동무나 해달라 했다.

  “색시처럼 여행 다니면서 재미나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건데, 나는 할 줄 아는    것이 이것밖에 없어.”

아주머니는 감귤같이 말랑말랑한 말을 내게 건네주었다. 


제주사건으로 부모 형제를 잃고 부초처럼 떠돌다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는 아주머니의 사연은 끝없이 이어졌다. 살아남은 것이 기적이라고, 밤마다 쓴 글이 책 한권은 될 거라며 신문에 실린 글들을 자랑스레 펼쳐 보였다. 앞으로 자신이 겪었던 4·3 사건을 시나리오로 써서 영화를 찍는 것이 꿈이라 했다. 몸은 귤 밭에 묶여있지만 밤이면 문학의 세계로 떠나기를 꿈꾸는 그녀에게 쓰는 일이란 귤 농사만큼이나 중요해 보였다.

 

과연 제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살암직이 살암쩌’, 제주말로 사는 것 같이 산다는 아주머니 말을 되뇌어 본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간을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라 정의했다.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나는 존재라는 것이다. 나는 그런 본능으로 늘 떠나기를 꿈꾸었던 것일까. 아니면 낯선 비일상의 시공간에서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새로움을 만날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투박한 일손으로 매일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 그녀야말로 제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날 나는 살암직이 살암쪄라는 본토 말을 아주머니에게 되돌려주고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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